중국어에 관한 한 마디: (4) 북경말은 중국 표준어가 아니다.
(출처- 百度)
현재 북경은 세상 각처에서 중국어를 배우려고 몰려 드는 곳이다. 물론 한국인 중에 중국유학을 하려고 하거나 중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은 일단 북경을 염두해 둘 것이다. 우리나라가 1992년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하기 전에는 주로 대만에 가서 유학을 하거나 중국어를 익혔다. 하지만 중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나서는 많은 한국인들이 북경을 방문하고 이곳에서 표준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소위 표준 중국어란 중국인들이 말하는 보통화(普通話)이고, 대만에서는 국어(國語),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지에서는 화어(華語 )라고 부른다. 스텐다드가 되는 중국어를 부르는 명칭은 다르지만, 모두 중국어 방송에서 아나운서들이 사용하는 공용 중국어를 표준 중국어로 여긴다. 한데, 현대 표준 중국어는 북경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표준으로 삼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서울 말을 표준으로 삼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 중국어가 이렇게 된데에는 나름 복잡한 역사와 변곡이 있다.
중국은 주류 언어(세력을 가진 언어)가 각 시대마다 달랐다. 대부분의 경우,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의 득실에 따라 변화하였는데, 당나라 땐 수도인 장안(長安) 언어가, 원 나라 땐 몽골어가 중국어에 영향을 끼쳤으며, 명나라 땐 수도가 남경이기 때문에 남경어(南京語 )가 주류언어였고, 청나라 땐 만주족의 언어인 만주어(滿洲語)가 중국어에 영향을 끼쳤다.
현대북경어의 대변혁기는 명나라 영락제( 1360~1424) 때 발생하였다. 영락제는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 의 네번째 아들로 이름을 주체(朱棣)라고 하는 명성조(明成祖)를 말한다. 명태조 주원장이 몽골족의 원나라를 무너뜨린 후 남경을 수도로 정하고 정치, 사회의 중심지로 삼았다. 주체는 연왕(燕王)이라는 봉왕(封王 - 다스릴 땅과 왕(王)의 칭호를 황제로 부여 받아 해당 지방을 다스리는 왕을 말한다)의 칭호를 아버지인 명태조로부터 받고 지금의 북경지방을 봉지(封地)로 받았다. 그 당시 북경 지방은 북방의 적으로부터 지켜야 할 군사 요충지로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명태조의 각별한 신임이 없었다면 주체에게 그런 요직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명태조 주원장의 주체에 대한 또 다른 의도는, 그를 황제의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기에 수도인 남경으로부터 멀리 떼어 놓은 측면도 있었다.
주원장은 장자(長子)인 주표(朱標)를 황제의 자리를 이을 후계자로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요절하였고, 주표의 아들인 손자를 황제로 앉힌다, 그의 이름은 주윤문(朱允炆), 바로 명나라 두번 째 황제인 건원제(建元帝1377—1402)이다. 그의 재위 기간 25년간 실시하였던 여러 가지 정책은 할아버지 주원장이 남겨 놓았던 폐단과 실책을 보충하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주원장의 아들들이 각 지방을 봉지(封地)로 할거( 割據)하면서 나라 전체의 세력이 분할되는 상황에서 황제 자리에 야심이 많았던 주체는 줄곧 북경 지방에서 세력을 공고히 하면서 후일을 도모하였다. 주체는 결국 남경을 공격하고 조카 건원제를 내쫓고 황제 자리에 앉게 된다. 그 당시 주체는 여러 가지 내외 상황을 고려해서 수도를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기는 천도(遷都)를 결정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천도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의 세종시 하나를 만드는데도 번거로운 일이 많은데, 한 나라의 수도, 더군다나 중국과 같은 큰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일이란 엄청난 일이였을 것이다.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명성조 주체는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고 지금의 북경 천안문 앞에 있는 자금성(紫禁城)을 건조하였다.
주체가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 후, 나라 권력의 이동에 따라 남경에 있는 사람들이 북경으로 옮겨갔다. 그 당시 북경으로 옮겨 간 남경 사람의 수는 북경의 인구를 초과하였다고 하니, 북경의 언어에 영향이 끼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에서 보자면, 남경 사투리가 북경 표준어에 섞이는 형국이나, 그 당시로 말하자면, 남경 표준어가 북경 사투리에 섞여 들어가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그야말로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의 자리를 차지하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명나라를 거쳐 청나라 만주족이 북경을 점거하게 되는데, 이 때 다시 만주족의 언어가 중국어에 영향을 주게 된다. 지금의 중국어에 만주어가 얼마나 녹아 들어가 있는지는 언어학적 고증이 필요한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라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위에 역사적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북경 지역에서의 지방 언어로 인한 혼혈 상태는 발음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또한 북방 언어 중에 존재하는 "이화음(兒化音)" 은 중국어를 발음하는데 있어 모호한 요인을 제공했는데, "이화음"이란, 예를 들어 "노인 네"혹은 "영감"이란 뜻인 老头儿(lǎotóur - 라우토우 -얼), "아이"라는 뜻인 孩兒(hai'er -할-), "토란"은 芋兒(yùr -월 -) , "돈"은 錢兒 (che'er - 철 -) 등으로 발음한다. "이화음"을 발음할 때는 앞 글자를 발음하면서 뒷 글자의 兒(er -얼 )의 "얼" 발음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발음이 입안에서 동시에 소리를 낼 때는 혀를 꼬부려서 하는 권설음(捲舌音)을 내면서 앞 글자의 고유 소리와 합쳐지기 때문에 결국 모호한 발음을 하게 된다. 이런 단어들이 대화 중에 섞여 들리면 대화 불가능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북경의 덩치가 크고 허파의 기운이 넘치는 남성이 내는 소리는 일반인들에 비해 입안에서 울리는 소리가 더욱 크기에 말을 듣고 나면 귀에서 윙 --- 하는 소리만 남게 된다. 덩치의 위압감과 폭음을 듣고 난 뒤의 불쾌감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그야말로 멘붕이 초래된다.
이런 현상은 비단 외국인이라 그런 것은 아니고, 중국인 자신들이 듣기에도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만약 지금의 표준어처럼 孩子(hai zi - 하이쯔), 芋頭(yu tou - 위토우(토란)) , 錢(qian - 첸) 등으로 발음한다면, 훨씬 듣기 편안하고 발음하기도 수월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원인으로 인해 지금의 북경어를 표준어로 삼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지방을 표준어의 근원지로 삼았을까? 중국어의 표준을 찾으려면 북경에서 310km 동북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河北省 承德市) 지역을 현대 중국어의 표준으로 삼고 있다. 이곳은 북경에서 3시간 반에서 4시간 쯤 차로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중국 관영 매체의 아나운서, 방송 근무자 들 뿐만 아니라, 중국 각 지역의 모든 미디어 매체에 종사하는, 특히 일반 대중과 중국어로 교류하는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곳을 훈련기지로 삼고 있다. 한 나라의 국어 발음은 첫째 말하기와 듣기 모두 편리하고 또렷해야 한다. 특히 중국어처럼 성조(聲調)가 있는 언어는 더욱 그렇다. 중국어처럼 동음이자(同音異字)가 발달한 언어는 성조가 분명한 발음을 해야만 듣는 사람이 무슨 뜻인지 파악할 수 있다. 중국어의 발음은 한국인 뿐만 아니라, 중국인 자신도 아나운서처럼 발음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각 중국 지방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발음은 표준 중국어를 발음을 하는데 상당한 장애를 초래한다. 특히 방송에 노출이 적은 시골 지방일 수록 학교에서 배운 표준어는 항상 어딘가 모자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표준어를 사용하면 다른 지방 사람들은 그 발음만을 듣고도 대충 어느 지방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다.
대만 사람의 토착언어는 민남어(閩南語 - 중국 복건성 지역의 말)인데, 대만 사람이 말하는 중국어에는 아무리 잘하는 표준어라 할지라도 민남어 발음이 섞여 있다. 그래서 중국 길거리서 우연치 않게 들리는 대만인이 말하는 중국어는 쉽게 출신 고향을 노출하게 된다. 이게 대만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중국어를 익히는데 몇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한국인에 있어서 제일 힘든 부분이 중국어 성조(聲調)이다. 갑자기 말하는데 높낮이가 있는 중국어 세계로 들어가면, 거의 청용열차를 타듯 정신을 못차리게 된다. 어쩌다 대충 성조를 무시한 중국어가 중국인에게 먹히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렇게 해도 통한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중국을 잠깐 여행한다면 그런대로 괜찮을 것이나, 만약 사업을 한다거나 하여 마지막에 계약서에 싸인할 때 잘 못 배운 성조가 사업을 망칠 수 있다. 그러니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중국어의 성조(聲調)이다.
내공이 느껴지는 깊이가 있는 글이군요. 중국의 표준어가 북경어가 아니라니 재미있는 사실을 꼼꼼하게 설명을 잘 해주셨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배우고 또 배웁니다.
간혹 TV에서 나오는 중국드라마를 보면 우리가 쓰는 말과 유사 또는 동일한 경우가 있어 놀라곤 했습니다. 한자 문화권이라 당연할수도 있겠네요.
글 흥미롭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