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나기'와 5.18민주항쟁 이야기(각색 소설) #3

in #kr-newbie7 years ago


원작 - 황순원

각색 - 채성현


(일부 시각에 따라서 편향적으로 비춰질수도 있습니다. 일부 인물은 실존인물이며, 가상의 상황으로 이뤄져있습니다. 이해부탁드립니다.)


#3
 


그래도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야했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소녀를 찾아 데려가야만 했다. ‘어디에 있을까.’, ‘너도 저기에 쓰러져있는 건 아닐까.’ 달려가면서 끊임없이 걱정만 쌓여갔다. ‘넌 정말 어디에 있는 거니?’ 그 순간 교문 앞에서 홀로 울고 있는 한 소녀를 볼 수 있었다. 나의 소녀 설희였다.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소녀 옆에 웅크려 앉아 울음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소녀가 고개를 들었고 나에게 물었다. “너는 여기 왜왔어. 나한테 말도 못하는 겁쟁이가. 친구들도 못 지키는 바보가 여기 왜 왔냐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하지 못했고, 다시 울음이 터진 소녀를 안아주는 것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소녀가 느낀 슬픔, 공포, 자책감, 억울함 중 어느 하나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했다. 친구들도 지키지 못했고, 소녀조차 지켜주지 못했다. 정말 나는 정말 겁쟁이였다. 눈물을 닦고 소녀는 일어섰다. 집으로 간다고 한다. 나는 걱정이되 뒤를 종종 따라 가본다.

소녀도 내가 따라가는 것을 눈치 챘는지, 골목길 모퉁이를 돌때마다 뒤를 힐끗힐끗 처다본다.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나 끝까지 데려다 줄거면 내 손 좀 잡아주라.” 나는 그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뛰어가 소녀의 손을 잡았다. 소녀가 웃었다. 그런데 차가웠다. 설희의 손이, 그리고 하얀 가루가 묻어있었다. “손에 묻은 이 가루 같은 건 뭐야?” 소녀는 내 질문에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미소를 뛴 고개를 저으며 내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그렇게 손을 잡고 걷다보니 어느덧 소녀의 집 앞에 이르렀다. 늦은 시간에 안 들어온 소녀를 걱정했는지 신문기자를 하셨던 아저씨께서 밖에 나와서 소녀를 기다리고 계셨다. “설희야 지금이 몇 신데 지금오니!, 걱정했잖니 얘야.” 아저씨가 화냄 반, 걱정 반 말씀을 하시고난 후 소녀가 말했다.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셨던 바른 일을 하고 오는 길이에요. 저는 아빠 같은 겁쟁이는 되지 않을 거에요.”

그렇게 소녀는 집으로 들어가 버렸고, 소녀가 말한 겁쟁이 둘만이 덩그러니 집 앞마당에 남게 되었다. 나는 그때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라일락 생각이 났다. 그리고 결국 아저씨에게 물어보고 말았다. “아저씨 라일락의 꽃말이 뭔지 혹시 아시나요?” 아저씨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나에게 말해주었다. “내가 아내와 사별하기 전에 가끔 따다주던 꽃이란다. 왜냐하면 아내가 나의 첫 사랑이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첫사랑은 아프더구나,” 아저씨는 말을 마친 후 소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집으로 걸어가면서 깨달았다. 나의 첫사랑 그 소녀, 그 소녀의 첫 사랑은 이 소년이란 걸... 나는 생각했다. 난 아프더라도 첫사랑을 지

다음날. 계엄령이 선포됐고, 나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우리 고등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소녀와 함께 휴교령철폐시위에 참가하게 됐다. 나는 더 이상 겁쟁이가 되기 싫었다. 오늘 내손에는 연필과 휴지가 아닌 피켓과 돌멩이가 들려있었다. 우리의 자유를 박탈하러온 공수부대 앞에서.

나는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남대 앞에서의 일을, 혹은 몰랐었을 지도 모른다. 시위 진압이 얼마나 잔인하고 파괴적일 수 있는지.

우리들은 단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를 원했을 뿐이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는 일을. 평화적으로 구호를 외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폭력적인 진압이 시작됐다. 사방에서 최루탄이 쏟아지고 하얀 가루세상이 되었다. 내가 전에 소녀의 손에서 보았던, 바로 그 하얀 가루였다.

나는 순간 미친 듯이 소녀를 찾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내 옆에 있던 소녀가 지금 내 옆에 없었다. 친구들이 맞는 소리, 아파서 지르는 비명소리, 알 수 없는 욕지거리들을 뒤로한 체 나는 소녀를 찾아야만 했다. 이번에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미친 듯이 뛰어가는데,  한 공수부대원이 날 가로막았다. 갑자기 나를 빨갱이라 욕하며 곤봉으로 사정없이 팬다. 그냥 아무이유 없이. 그런데도 나는 아프지 않았다. 단지 소녀를 찾지 못할까하는 불안감, 자책감이 날 사로잡을 뿐이었다.

성에 차도록 때리지 못했는지, 공수부대원은 쓰러진 나를 뒤로한 채 다른 사냥감을 찾으러 뛰어갔다. 쓰러졌어도 나는 소녀를 찾지 못해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아플 자격이 없었다. 항상 옆에 있어주겠다고 소녀에게 선생님 앞에서도 다짐했는데.. 그런데 그런 내가 말이다. 너무 아팠다. 손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정신을 잃어버렸다. 나의 소녀를 찾지 못한 채. 나의 윤설희를 지키지 못한 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순간 허망했다. 우리는 올바른 일을 했지만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다. 후회할 것 같았다.

소녀의 집으로 향하는 길. 거리에 모든 문과 창은 굳게 닫혀있고 모두가 공포의 질려있는 듯싶다. ‘소녀는 괜찮을까?’, ‘많이 다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끈이지 않는 마음을 붙들고 걷고 있을 때 굵은 빗방울을 쏟아 내는 소나기가 왔다.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고 다급해지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질질 끌리는 발을 이끌고 도착한 소녀의 집 앞. 하지만 나는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집안에서 들리는 곡소리에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도망치듯 집으로 달려갔다. 아직 나는 겁쟁이였고 너무 어렸다.

다음날. 나는 집에서 나가지 못했다.

그 다음날. 나는 집에서 나갈 수 없었다.

그 다음날도. 나는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 다음날이 되도록 내가 방에서 울고만 있을 때 부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말이 들렸다.   

어머니는 아침을 준비하다가 아버지가 부엌에 오시자 말을 거시는 듯 했다. “글쎄 윤 씨네 설희가 어제 죽었다네요..”

아버지는 한숨을 쉬시며 말하셨다. “하도 성한대가 없어서 바로 장례도 못 치렀다고 하구려.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아팠을 고. 그런데 마지막에 라일락나무를 꼭 심어달라고 했다고 유언 아닌 유언을 했다고 하던데 왜 그런 거지는 음... ”

이게 내가 기억하는 설희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리고 18살이었던 나는 2017년 55살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절대 잊을 수 없다. 겁쟁이였던 나를, 나의 첫사랑 이였던 그 소녀를 앗아간 5.18항쟁을.

 2017년 5월 18일 나는 그날을 생각하며 당신 앞에 서고 당신을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임을 위한 행진곡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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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시각'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실 것 같습니다. 역사의 모든 사안마다 파시스트의 시선을 고려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소설 잘 읽었습니다.

좋은 의견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의견 교류했으면 좋겠습니다. 팔로우 하겠습니다.

잘 읽었어요~ 저는 소나기는 좋아하는 소설이라 흥미가 있었는데, 5.18 민주항쟁 이야기가 나온다 해서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어요. ^^;;

일부러 무겁게 만드려 넣은건 아니었는데 ㅠㅠ 충분히 그렇게 느낄 소지가 있는건 맞습니다. 앞으로는 더 신경쓰도록 할게요~!

어머니는 아침을 준비하다가 아버지가 부엌에 오시자 말을 거시는 듯 했다. “글쎄 윤 씨네 설희가 어제 죽었다네요..”

와 이부분 볼때 감정이 ㅠㅠ흐흑
정말 좋은 글 잘봤습니다!

마지막에 신경쓰던 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언급해주시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ㅠㅠ

카페 보고 왔습니다. 팔로우했습니다. 저와 공통점이 많은 느낌이 나네요. 저도 소설 씁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에도 관심이 많고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여기서 보네요.

좋은 작품 구경하러 자주 갈게요~!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2018년에는 두루 평안하시길!

감사합니다~!!

좋은 글이네요~! 우연히 들와서 본글때문에 눈시울이 뜨거워져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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