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한과학] 의외로 천문학자 칸트의 우주 vs 어쩌다 천문학자 섀플리의 우주
제가 이래뵈도 명색이 과학그림책 작가이다보니..오늘은 우주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특히 우주 이야기는 삶의 템포가 느린 저 같은 저속인들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라고 섕각해요.
의외로 천문학자 칸트의 우주 vs 어쩌다 천문학자 섀플리의 우주
두 사람 모두 천문학자였지만 그들이 생각한 우주는 굉장히 대조적으로 달랐죠. 그리고 그 생각의 차이는 훗날 천문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논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왜 똑같은 밤하늘의 우주를 보며 둘의 생각이 그렇게 극과 극을 달렸을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죠.
오후 세시반이 되면 어김없이 150센티미터 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키의 한 남자가 집을 나서 산책을 떠납니다. 생각에 잠겨 거리를 걷는 그 남자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 같은 철학사에 길이남을 저서를 쓴 유럽 최고의 철학자, 칸트. 그런데 칸트의 박사학위 논문은 철학이 아니라 천문학이었습니다. 일반자연사와 천체이론이라는 논문이었죠. 당시는 철학과 천문학의 경계가 모호하긴 했지만 어쨌든 칸트는 천문학 박사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칸트가 당시 관점으로 우주에 대해 놀라운 주장을 하는데 바로 섬우주론입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섬우주는 은하를 의미하는데요.
우주에는 그런 섬우주(은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거 같단 말이야.
지금 생각하면 초딩도 아는 당연한 얘기지만 그 당시, 1755년 무렵에는 태양계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때였습니다. 태양계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천동설의 우주버젼이랄까요. 그러니 칸트는 차원을 뛰어넘는 주장을 한 겁니다. 그것도 희끄므레한 얼룩처럼 보이는 은하의 모습만 보고 말입니다. 아무래도 기술이 많이 아주~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지금처럼 선명하게 은하 속의 많은 별들을 볼 수가 없었거든요. 그러니 칸트가 참 대단한 거죠.
반면 거의 200여년 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망원경과 연구성과들을 가지고도 천문학자 섀플리Harlow Shapley는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합니다. 바보도 아니고 인정받는 뛰어난 천문학자였는데도 말이죠. 그럼 섀플리를 만나보겠습니다.
1907년 22살의 청년, 섀플리는 대학교에 입학해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정보학과 설립이 1년 지연되는 바람에 전공을 바꿀 수 밖에 없었고 별 고민 없이 전공 목록 중에서 제일 처음에 있는 걸로 결정하기로 하죠.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은데 또 웃긴 건 목록에 첫번째 전공 이름이 고고학, 영어로 Archaeology 였어요. 근데 이게 철자가 어려워서 어떻게 읽는건지 모르니까 그 다음으로 넘어간 겁니다. 그 다음이 Astronomy, 천문학이었죠. 그래서 그는 천문학자가 됩니다. 근데 또 웃긴건 이렇게 어쩌다보니 선택한 전공이었음에도 연구를 잘해서 뛰어난 천문학자가 됐고 하버드대 천문대 대장까지 올라가죠. 그런데 이 뛰어난 사람이 이런 주장을 합니다.
놀라운 것은 섀플리뿐만 아니라 당시에 많은 천문학자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고 섀플리는 그 중 대표적인 학자였다는 겁니다. 칸트는 왜 시대를 앞서 갔고 이 천문학자들은 그러지 못했을까요… 거참 희한하죠.
사실 과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적 근거입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근거가 있었습니다. 널리 존경 받는 천문학자였던 반 마넨Adriaan van Maanen의 연구결과 때문이었죠. 반 마넨은 바람개비 성운(은하)을 관측했는데요. 요개 보면 딱 우리가 생각하는 소용돌이 치는 은하의 표준적인 모습을 딱 가지고 있어요. 정말 바람개비처럼 생겨서 잘 돌아가게 생겼죠. 물론 실제로도 돌아가긴 하죠. 회전운동을 하는데…
그러나! 절대로!! 사람이 돌아가는 걸 관측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이게 거의 1조개나 되는 별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은하기 때문에 한바퀴 회전는데는 수억년씩 걸리거든요. 우리 은하는 무려 2억2500만년이 걸리죠. 아무리 몇십년을 지켜봐도 0.0000000001mm도 안움직입니다. 저속의 끝판왕이죠? 만약 움직였다면 그건 은하 속 별들이 광속보다 빠르게 움직여야되는 거니까 말도 안되는 거구요. 아인슈타인 박사님(광속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없다고 하신 분)께서 깜짝 놀라시겠죠?
근데 반 마넨은 이 바람개비 성운(은하)이 회전하는 걸 관측했다고 했어요. 그러면 이건 거대한 은하가 아니게 되는 거죠. 거대한 은하는 인간이 회전하는 걸 관측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존경 받는 천문학자가 그걸 관측했다고 하니… 다른 천문학자들은 그걸 신뢰한 겁니다.
그럼 반 마넨은 왜 회전운동을 관측했다고 했을까요. 한마디로 잘 못 본 거였습니다. 제가 찾아본 바로는 정확하진 않지만 광학적인 빛 번짐? 이런 효과 때문에 움직이는 것처럼 찍힐 수가 있데요. 물론 그런 오류가 생길 가능성까지 철저히 따졌다면 그런 잘못된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았겠지만 아마도 반 마넨 역시 당시 일반적인 생각처럼 우리 우주에 은하는 우리 하나다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철저하게 따지지 않고 넘어갔던 것은 아닐까...라고 제가 찾아본 자료에서는 그러더라구요.
그러니… 생각의 벽을 깬다는게 정말 쉽지 않은 겁니다.
그 존경 받는 천문학자도 그런 실수를 했던 것처럼 말이죠. 근데 이해가 되긴 해요. 우리 은하만 해도 그 크기가 너무너무 크거든요. 구지 우주가 이것보다 더 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지구를 1cm라고 하면 달은 30cm 멀리 있고 태양계는 해왕성까지 크기가 한 500미터되요. 500미터면 버스 한정거장이고 걸어서 아무리 천천히 가도 5분이면 가죠. 근데 그에 비하면 은하는 1억km 에요.
태양계조차도 너무 커서 빛의 속도로 가도 횡단하는데 몇시간씩 가야될 정도로 큰데, 은하는 빛의 속도로 가도 10만년이 걸리니까요. 근데 이렇게 큰 은하가 또 엄청 멀리 한두개도 아니고 여기저기 막 흩어져있다니까. 진짜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에 나와서 세상을 처음 보는 그 충격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러다보니 반 마넨 같은 천문학자도 그런 실수를 했던게 아닌가 싶은 겁니다.
그럼 칸트는 어째서 그 벽을 그렇게 과감히 뛰어넘었을까요. 칸트는 처음부터 그랬어요. 자기 생각의 논리가 세워지면 기존의 인식이 어떻든, 벽이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칸트는 이 우주에 뭔가 특별하고 하나만 있는 그런 건 없다고 생각했죠.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저 별들 역시 태양이 행성들을 거느리듯, 행성들을 거느리고 있을 것이고, 외계 생명체들이 다른 별의 행성들에도 있을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죠. 태양만 특별해서 행성을 거느릴리 없고 지구만 특별해서 생명체가 살리 없다는 거에요.
“나는 모든 행성들에 다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한 이것을 굳이 부정하는 것도 불합리하다. 태양의 티끌에 불과할 정도로 황량하여 생명체가 없는 지역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천체들이 미처 완전한 형태를 다 갖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거대한 천체가 확실한 물질상태에 도달하기까지는 수천 년에 또 수천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나아가면 별들과 행성을 가진 우주, 즉 은하가 특별히 하나만 있겠냐, 여러개 있을 거다. 저 희끄므레해보이는 얼룩이 바로 그 우주, 즉 은하일 거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죠. 물론 생각만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 관측적 근거가 있긴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칸트의 생각과 섀플리, 반마넨의 생각 중 누가 옳았는지에 대한 결론은 다들 아시다시피 그 유명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내려주게 되죠. 천문학자들도 모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근거를 내놓거든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또 시간되면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여튼 전 이래서 우주가 좋더라구요. 그런 논쟁거리를 만들어준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맨 처음엔 지구가 전부인 줄 알았다가 그 다음엔 태양계, 그 다음엔 은하, 그다음엔 그런 은하가 모인 우주가 전부인 줄 알았더니 이젠 그런 우주가 또 여러개인 다중우주까지. 재미있잖아요. 그쵸? 너무 강요하나요? ㅎㅎ 전 기대합니다. 그 다음 생각의 벽은 어떻게 또 깨질지. 어떤 과제를 우주가 우리에게 내어놓을지 어떤 논쟁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말이죠.
오늘은 칸트의 묘비명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것은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속에 있는 도덕률(법칙)이다.
참고자료
섀플리-커티스 논쟁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B%85%BC%EC%9F%81_(%EC%B2%9C%EB%AC%B8%ED%95%99)
애드리안 반 마넨 Adriaan van Maanen
https://en.wikipedia.org/wiki/Adriaan_van_Maanen
섬우주 이론
https://ned.ipac.caltech.edu/level5/March02/Gordon/Gordon2.html
Cheer Up!
어머나! 밤지기님 이건 풀보팅을 해야되는 글인데!!
제 보팅파워가 너무너무 약합니다 ㅜㅜ
정말 재미있게 한번에 쑤욱 읽었어요!!!
칸트는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요! 저까지 답답 -______-
중간중간 그림도 너무 재밌어요, 특히 "봤어요!" 이부분ㅋㅋㅋㅋ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허블의 근거는 다음기회에...ㅜㅜ
글과 그림에서 밤지기님의 애정과 정성이 느껴집니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꼭 다음편도 부탁해요!! :D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뿌듯하네요 ^^ 이 맛에 글 올리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요. 커밍순!!
글 재밌게 봤습니다~:D
kr-science 태그 기대해보고 싶습니다~ㅎㅎㅎ
감사합니다~ kr-science의 대박을 기원해봅니다!
우리는 언제쯤 외국인들을 만나게 될까요 ㅎㅎㅎ
언젠가는.. 희망을 잃지않는다면... ㅎㅎ
과학책 그림작가라니!!!신기해요ㅎㅎ 언뜻언뜻 보이는 과학자들 캐리커쳐에서.. 예사롭지 않은 터치가 느껴지네요ㅎㅎ 좋은 글과 그림 감사합니다!
이제 첫발 내딛은 초보작가일 뿐인 걸요 ㅎㅎ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기대해주세요 ^^
호옥시 야공만 작가님이신가요?? 비슷한 느낌이 많이 나서요...ㅎㅎ
어쨋든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칸트와 케플러 둘 다 수업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네욤
그럴리는 없구요. 야공만에 대한 오마주 정도로 봐주심 좋겠습니다 ㅎ
그렇다면 스팀잇의 야공만이 되어주시죠
넵 노력해보겠습니다
저도 야공만과 뭔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화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ㅎㅎ
뉴비라 좋은 컨텐츠에 많은 보팅을 못드려서 죄송합니다ㅠㅠ
무슨 말씀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야공만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ㅎㅎ
에드윈 허블은 저도 언젠가 써먹으려고 했는데ㅠㅠ 양보하겠습니다~ ㅎㅎ
허블이 제 것도 아닌데 ㅎㅎ 저도 양보하겠습니다 ^^
아니에요ㅋㅋㅋ 그림을 곁들이면 보시는 분들도 훨씬 좋아하실 겁니다.^^
멋진 글입니다. 천천히 읽고 갈게요. 팔로우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팔로우하겠습니다.
멋진 글이네요 이해는 다 할 수 없지만 재밌게 읽었습니다. 발로우 하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이네요. 다음글도 기대해주세요 ^^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확률적인 고려는 공간적으로 보면 높고 시간적으로 보면 아주 낮아지죠ㅎㅎ
과학글에 그림도 같이 그려주시니 너무 좋습니다!
팔로우하고 갑니다~~!!
정말 그렇겠네요! 만나려면 엄청난 운명적 행운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