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구절/리뷰] 딸에 대하여. 딸의 동성 연인과 한 집에서 산다면?

in #kr-life7 years ago (edited)

 딸에 대하여  /  김혜진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중 하나인 '딸에 대하여'를 읽어 보았다. 

처음엔 나와 같은 '딸'이라는 타이틀에 끌렸고

그 내용이 동성연인을 만나고 있는 딸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끌렸다.

다 차치하고서라도, 내게 '엄마'라는 말은 내 모든 문을 개방하는 하나의 자물쇠 같은 단어라

사지 않고는 못 배겼던 책인 것이다.  심지어 엄마가 떠오르는 상황과 표현들까지.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는 돈이 궁해 집으로 돌아온 딸과 그의 연인과 함께 살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엇나가는 딸과 마찰을 빚게 되고 멀어지지만, 딸이 세상에 어떻게 내던져져 있는지 누구보다 가깝게 지켜볼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 딸의 동성애, 기적적인 화해는 이루어질 수 있는가.

시점이 엄마의 시점이라 젊은 독자층의 입장에서 봤을 때, 오히려 이런 생각으로 동성애를 부인하시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답답한 마음이 없잖아 생기지만, 보다 개연성을 느낄 수 있는 구조였다고 본다.


내가 한 거라곤 연단이 올려다보이는 이곳에 앉아 남들이 엿들을지도 모를 말들을 가만히 손으로만 매만지면서 침묵을 키운 것뿐이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 할 수 없는 말, 해서는 안 되는 말. 이제 나는 어떤 말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이런 말을 도대체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누가 들어 주기나 할까. 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말. 주인이 없는 말들._54
그게 뭐든. 언제나 받는 사람은 모르는 법이다. 그건 다만 짐작이나 상상으로는 알 수가 없는 거니까. 자신이 받는 게 무엇인지, 그걸 얻기 위해 누군가가 맞바꾼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그 돈이 어떤 빚깔을 띠고 무슨 냄새를 풍기며 얼마나 무거워지는지 결코 알 수 없다. 그런 귀중한 걸 누군가에게 줘야 한다면, 줄 수 있다면, 가족이 유일하다. 숨과 체온, 피와 살을 나눠 준 내 자식 하나뿐이다._74  
마음은 왜 항상 까치발을 하고 두려움이 오는 쪽을 향해 서 있는 걸까._129
그러고 보면 나는 매사 너무 나이가 많은 사람처럼 굴고 있는지도 모른다. (...) 이제 다시 뭔가 시작하고 맞서고 싸우고 이길 만한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면서 무료하지만 안전하고 무력하지만 차분한 일상을 유지하고 싶은지도 모른다._130
나와 마주 앉은 그 애들이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다. 손을 뻗으면 언제나 닿을 수 있는 거리. 그러나 나는 이 애들이 나로부터 얼마나 먼 곳에 어떤 모습으로, 어디를 딛고 서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뚜렷해진다. 이 애들은 삶 한가운데에 있다. _149
오늘날 일이란 행위는 모두 훼손되고 더럽혀졌다. 그것은 오래전에 우리 세개에게 자긍심과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던 역할을 잃은 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제 일의 주인이 아니고 그것에 종노릇을 하며 소외당하고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한다. 그리고 끝내는 일 밖으로 밀려나고 쫓겨나고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_160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나는 간신히 삼킨다. 내 잘못이 아니지. 너의 잘못이 아니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 그렇게 말한다면 세상의 수많은 피해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사과를 받아야 할까._162


이 책은 여성인 주 인물만으로 사건을 진행해나간다.

따라서 단순히 한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의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 여성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책을 읽고 나서 김신현경 님의 작품해설을 보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아들 부재의 상황으로부터 시작된 어머니-딸의 이야기, 여성인 딸이 공부를 잘하고 아들 부럽지 않을 만큼 사회적으로 성공하면서 결혼에도 성공하는 삶을 원하는 어머니. 아들과 딸에 대한 기대를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남근적' 딸이라는 표현이 와닿았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더라도 현실은? 가능한가?

소수의 입장에서, 약자의 입장에서 바라는 것. 결국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각자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만한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것.

동성애, 언제든 내몰릴 수 있는 대학강사, 여성

모두 한 만큼 돌려 받고, 기대한 만큼 이룰 수 있도록

편견없이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는 것. 평등.

우리 사회에서 또 전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한 부분이다.

(스포일러) 소설의 화자는 동성애에 끝까지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지만,

희망의 여지를 남기며 마무리한다. 

언젠가 '기적같은 이해'가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소설 밖의 세상도 꼭 그러리라 믿는다.


p.s. 이 책을 읽어보셨던 분이나 읽어보고 싶으신 분은 코멘트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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