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수다] "나의 아저씨"- 나이듦에 대하여(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를 곱씹으며)

in #kr-join7 years ago

uncle.JPG

봄이란 묘한 계절입니다.
훈풍에, 봄꽃 가득한 풍경에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론 문득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게도 합니다.

요새 tvn에서 "마더" 이후에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하는데
처음엔 흔해 빠진 키다리 아저씨 얘기겠지, 싶었습니다.
아저씨가 셋이나 있으니 주인공은 고난을 겪다가 잘 풀리겠지, 뭐 그런 예상을 했더랬지요.

그런데 (물론 아직 4회까지만 전개되었지만) 예상 밖이더라구요.

드라마를 보다보니 동훈과 지안의 관계나 회사 내에서 암투보다는
동훈의 3형제(제목처럼 '아저씨들')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더군요.

1.JPG

박호산이 분한 동훈의 형 상훈은 한 직장을 오래 다니다가 퇴직하고
사업을 여러 번 하다가 그나마 있던 퇴직금마저 모두 날리고
빚까지 지게 된 인물입니다.

2.JPG

그리고 송새벽이 분한 동훈의 동생 기훈은 한 때 영화계 샛별이었다가
현재는 상훈과 함께 어머니 집에 기거하며 백수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선균이 분한 동훈은 대기업 부장이지만,
버는 족족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돈을 쓰느라
자신은 정작 단기카드대출을 받으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모르는 어머니와 형제들은
동훈이 대기업 부장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또 부러워합니다.

드라마는 삶의 중심부에서 조금씩 가장자리로 밀려난 인물들을 보여주며
이들이 각자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어 가는지 보여주는데요.
상훈은 낙천적인 마음가짐으로, 기훈은 객기와 당당함으로
그리고 동훈은 묵묵함과 성실함으로
시간을 견디고 권태와 지겨움과 나이듦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삶의 중심부에 있으면서(혹은 있다고 믿으면서),
계속 그 자리를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동훈의 3형제들보다 더 행복하거나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시시때때로 불안하며 긴장을 놓지 않고 주위를 경계하죠.

그렇기에 소소한 술자리를 열어
서로에게 위로와 축제가 되어주는 동훈의 3형제를 보며
별 것 아닌 삶을 사는 저 역시 위안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20180330_152144.jpg

드라마를 보면서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의 다음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사람한테 찾아오는 가장 큰 놀라움은 늙는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게 누구였더라?"
몰라,하고 내가 말했다. 그런 말은 들어본 적 없다. 하지만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늙는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에게 죽음보다 더 뜻밖의 사건일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다.
자신이 이 세상에 생물학적으로(그리고 사회적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느 날 누군가가 또박또박 알려주는 것.

  • "기사단장 죽이기", 2권, p190

또박또박 알려주는 그 사실을 감추지도, 피하지도 않고
되도록 추하지 않게, 그래도 스스로에게는 괜찮았다고 위로하길 바라며
올해의 단 한 번뿐인 봄을 만끽하려 합니다.

Sort:  

기사단장 죽이기는 처음 들어 보네요!
요즘 하루키에 관한 관심이 많이 떨어져서...
읽을만 한가요 하루키 책중에서도?

기사단장 죽이기는 이야기가 현실과 비현실이 얽혀 있어서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하루키가 워낙 이야기꾼인지라 술술 읽히긴 해요.
다만 소설 양이 상당해서 완독까지 좀 시간이 걸렸어요.
하루키스런 소설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하루키 소설은 술술 읽히는게 참 장점이죠!
혹시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고 싶네요 ㅎㅎ

저도 이 드라마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아직 시작도 못했네요...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 꼭 봐야지 했는뎅...

네^^시작한지 얼마 안됐고 재방송도 꽤할 거라 언제든 보실 수 있을 거에요.^^

마더 마음아프게 재밌게 봤었는데 끝나고 나의 아저씨를 하는군요-
요새 드라마는 왠지 전보다 인물 한 명 한 명의 삶을 면밀히 보여주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아리면서도 참 좋아요 ㅎㅎ

맞아요. 마더도 참 괜찮은 드라마였어요. 특히 이혜영의 연기는 압권이었고,
어머니 혹은 모성이란 무엇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죠.
완성도나 전개의 탄탄함은 좀 떨어졌지만 한 회도 놓치지 않고 봤습니다.

요즘 tvn드라마가 소재나 인물설정에 있어서 한국드라마의 저변을 넓히고 있는 것 같아요.^^

짱짱맨 부활!
Kr-gazua태그에서는 반말로만대화한대요^^ 재미있는 태그라서 추천드려요

감사합니다. 짱짱맨님^^
저는 스팀잇 초짜라 잘 모르지만 짱짱맨께서 뉴비들을 챙겨주시는 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반말은 낯설지만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도 재밌겠네요.~~~

Coin Marketplace

STEEM 0.21
TRX 0.27
JST 0.040
BTC 102419.62
ETH 3707.14
USDT 1.00
SBD 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