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 현대사" 7 - 제3장 (3) 한국형 경제성장의 비결
제3장 경제발전의 빛과 그늘: 절대빈곤, 고도성장, 양극화
제3장은 총 6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다.
한강의 기적, 이륙에서 대중소비사회로, 경제개발 5개년계획
한국형 경제성장의 비결, 외환위기 원인과 결과, 양극화의 시대
오늘은 3장의 세번째 시간으로 '한국형 경제성장의 비결'을 살펴본다.
한국형 경제성장의 비결
경제성장은 국가의 부富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부는 무엇인가? 국민이 해마다 생산하고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을 가리킨다. 이것을 측정하기 위해 국민총생산, 국내총생산, 국민총소득 같은 지표를 쓴다.
국민총생산을 늘리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더 많은 노동력을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인구가 늘어야 한다. 인구가 늘지 않는다면 고용률을 높여야 한다. 둘째는 더 많은 자본을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가 많으면 그다음 시기에 생산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셋째는 생산기술의 수준 향상이다. 기술수준이 높으면 같은 양의 노동력과 자본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다. 합리적 규칙이 있고 각자가 모두 그 규칙을 지키면서 남들 역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해 더 많은 부를 생산할 수 있다.
갑자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면적과 인구에 대한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싶었다.
국가별 국토 면적 순위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A%B5%AD%EA%B0%80%EB%B3%84%20%EA%B5%AD%ED%86%A0%20%EB%A9%B4%EC%A0%81%20%EC%88%9C%EC%9C%84
오늘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 캐나다, 미국, 중국의 순서다.
러시아가 가장 넓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음이 중국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미국이 더 넓고, 그보다 캐나다가 더 넓었다.
주요 국가들의 순위를 살펴보면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보도록 한다.
50 프랑스 543,965, 53 스페인 505,992, 57 스웨덴 450,295
63 일본 377,915, 64 독일 357,022, 67 베트남 331,689
68 말레이시아 329,847, 69 노르웨이 323,802, 73 이탈리아 301,318
74 필리핀 300,000, 77 뉴질랜드 270,467, 81 영국 242,900
10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20,538
111 대한민국 100,339
113 포르투갈 92,090, 134 덴마크 43,094, 135 네덜란드 41,543
북한이 100위, 대한민국이 111위다.
국가의 영토가 넓다는 것은 그만큼 큰 경쟁력을 갖는다.
우리나라의 영토는 북한과 남한을 합쳐도 86위 밖에는 안된다.
이제 인구를 살펴보자
국가별 인구 순위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A%B5%AD%EA%B0%80%EB%B3%84%20%EC%9D%B8%EA%B5%AC%20%EC%88%9C%EC%9C%84
중국,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파키스탄까지
상위 6개 나라가 전세계 인구의 약 50%를 차지한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27위다.
북한 인구는 우리의 반으로 52위, 북한과 합칠 경우는 세계 20위.
인구가 5천만을 넘는 나라는 세계에 단 28개국 밖에는 없다.
1959년의 대한민국에는 노동력만 있었고 자본과 생산기술이 없었다. 부정부패와 독재가 판치는 세상이라 신뢰가 형성되기도 어려웠다. 장면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최초의 경제개발계획을 만들었다. 장면 정부가 이 과제를 하지 못한 것을 논거로 삼아 5·16쿠데타를 옹호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 일을 하려고 최초의 경제개발계획을 세운 상황에서 쿠데타로 권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영토와 인구를 왜 살펴본 것인가?
우리의 영토는 생각보다 너무 작고, 인구는 의외로 생각보다 많다.
물론 인구는 조금 다른 측면이 존재한다.
경제 성장으로 인해서 인구도 따라서 늘어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인구가 증가해서 경제가 성장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을 난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적의 모습을 만든 것에 '박정희'의 역할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단하게 생각하지도 감사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
분명한 기적을 만들었지만 그것이 온전히 박정희의 공일수도 없고
기적의 반대 측면인 온갖 적폐들도 온전히 박정희의 과일수도 없을 것이다.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사실상 무제한으로 돈을 빌려 유통시키는 방식으로 물가인상을 유발함으로써 현금과 예금을 보유한 국민을 착취하고 부채가 많은 금융기관과 기업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었다.
인플레이션이다.
경제라는 말을 하기에도 부끄러운 당시의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인플레이션을 국가가 주도해서
더욱 더 심하게 만든다면 국민들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정부에서 그렇게 국민을 착취하려고 의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의 상황은 어쩌면 그렇게 흘러갈수 밖에는 없는 필연적 모습이 아니었을까?
물론 필연이었다고 해서 그 '죄'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인플레이션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인플레이션이 없어도 망하고 과해도 망한다.
참으로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경제의 상황이 극도로 초보적인 단계의 국가에서
세금을 제대로 걷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돈을 마구 찍어내는 것이다.
방식이 한국은행에서 빌리는 형태를 취했을 뿐 그냥 돈을 찍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통화량은 급증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고... 이게 인플레이션이다.
부채가 많은 기업은 상대적으로 부채의 가치가 떨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자산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진 기업 역시 당연히 이익을 본다.
급여를 받아서만 생활해야하는 노동자들의 삶만 팍팍해지는 것이다.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국내자본을 산업화에 동원하기 위한 극비작전을 편 적이 있다. 미국 대사관도 모르게 영국에서 신권을 인쇄해 들여온 다음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을 선포한 것이다. 1962년 6월 9일 밤 10시의 일이었다. 화폐 단위를 10대 1 비율로 환에서 원으로 바꾼 이 작전의 목적은 음성자금을 노출시켜 투자 재원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화교들이 가진 구권 현금만 1,000억 환이 될 것이라는 보고를 믿고 화폐개혁 조처를 했는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화교자금은 뜬소문이었다. 부작용이 매우 심각해서 중소기업 가동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정도였다. 화폐개혁 실패를 통해 박정희 의장은 국내 자본으로 산업화를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 장면에서 얼마전 북한에서 실시한 화폐개혁에 대한 부분이 오버랩된다.
사실 이러한 정부주도의 화폐개혁이 성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의 욕심을 정부가 섬세하게 제어하는 것이 가능할까?
한국은행 총재도 모른 1962년 6월 10일 화폐개혁
http://muchkorea.tistory.com/741
<1962년당시발행된1원, 10원, 100원(출처:한국은행)>
야심차게 극도의 비밀을 유지하며 수행했던 화폐개혁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사실 엄청난 지하자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멍청한 것이다.
대부분의 지하자금은 모두 '금'으로 바꿔서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 정부는 『공산당선언』에서 "현대 국가는 부르주아지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한 마르크스의 견해가 최소한 진실의 일면을 포착한 것임을 증명해 보였다. 1972년의 8.3긴급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것은 실패한 화폐개혁보다 더 노골적인 사유재산 침해 행위였다. 과도한 사채 규모와 높은 금리 때문에 부도 위험에 빠진 기업이 늘어나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사채를 동결하고 금융기관 대출로 전환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건의를 받아들여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을 선포했다.
8.3긴급조치에 대한 많은 역사가들의 평가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
물론 그랬을 수도 있다. 많은 기업들이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71년 미국의 금태환정책 포기 선언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세계는 불황이 닥쳤고, 많은 차관을 빌려썼던
우리의 기업들은 사면초가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 조치가 없었다면 정말 모두 망했을 것이고 이후의
대한민국 경제는 황폐하게 무너져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박정희 정권 ‘8·3 조치’가 재벌 탄생의 기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242137165&code=960201
1969년 10월 사후관리 대상업체 즉 부실기업 명단에 올랐던 제일제당, 제일모직, 한국비료, 금성사, 현대건설, 대한항공, 효성물산 등은 8·3조치 이후 급성장했다. 또 1970년 어느 은행의 10억원 이상 대출자는 최종건·정주영·이병철·구자경·조중훈·신현확 등이다. 박 교수는 “금리 인하의 사채동결로부터 이들 기업이 많은 이득을 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저 명단을 보면서, 현재까지 이들의 후예들이 모두 건재함을 알수 있다.
만약 그때 8.3긴급조치가 없었다면 저들은 살아남기 어려웠을 수 있다.
그랬다면 과연 대한민국이 망했을까?
부실기업 명단에 올랐던 이들 기업이 과연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이었을까?
당시 부실했다는 것은 그만큼 과도한 부채를 빌렸던 것을 의미할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과도하게 부채를 지지 않았던 기업들은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지금의 재벌 지도는 달라졌을 수 있다.
이 명령의 핵심은 기업과 사채권자의 채권채무관계를 즉각 무효화하고, 채무자가 사채를 신고하면 3년 거치, 5년 분할로 시중 사채 이자의 3분의 1수준인 월 1.35퍼센트의 이자율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사채권자가 원할 경우 사채를 출자로 전환해주고 2,000억 원의 특별자금을 조성해 기업의 단기성 대출금을 장기저리 대출금으로 바꾸어주도록 했다. 정상적인 자본주의 사회라면 상상할 수 없는 조처였다. 일주일의 신고기간에 기업들은 은행대출금 총액의 42퍼센트나 되는 3,456억 원의 사채를 신고했다. 그중 기업인이 자기 회사에 사채를 빌려준 것처럼 꾸며 회사자금을 착복한 '위장사채'가 1,137억 원이나 되었다.
회사자금을 착복한 '위장사채'가 1,137억 원이나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무려 총 신고된 금액에서 1/3의 액수가 '위장'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범죄이고 도둑질인 것이다.
44년전 그날, 8·3조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http://news.joins.com/article/20390913
대통령을 찾아가 “고리사채로 기업이 다 망할 판”이라고 읍소하던 대기업 경영자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당시 신고된 사채 중 1137억원(33%)은 기업주가 자신이 소유한 회사에 사채놀이를 한 돈이었다. 위장 사채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에 대한 조치와 처벌을 미뤘다. 기업들은 환호했다.
이들은 도둑질을 통해서 자신들의 배를 불렸다.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 국민의 안정을 위해서
말도 안되는 조치지만 '어쩔수 없는 선택'으로
기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편것으로 이해해 줄수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액수조차 파악된 이들 '위장사채'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도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도저히 이해해 줄수 없다.
박정희가 욕을 먹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채권자의 사유재산을 빼앗고 거기에 국민의 세금을 얹어 기업에 제공한 8·3긴급조치가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효과를 낸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 경제는 시장경제체제가 아니었다. 시장의 원리에 따르면 자본은 저절로 수익성 높은 투자 프로젝트를 가진 산업과 기업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산업화 이전의 대한민국에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외국이나 한국은행에서 돈을 빌려 만든 투자재원을 정부가 기업에 직접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정부의 실체는 박정희 대통령과 측근 참모들이었다. 아무리 수익성 있는 투자 프로젝트를 가진 사람이라도 정부에 줄을 대지 못하면 자금을 받을 수 없었다. 특혜가 있는 곳에는 정경유착과 부패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재벌체제가 탄생했다.
정경유착과 부패, 이것이 적폐의 시작이고
그 적폐의 시작과 함께 재벌도 탄생하는 것이다.
재벌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E%AC%EB%B2%8C
위 그림을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는다.
여기에 정치권과 언론, 법조계, 종교계까지
그들의 맥을 모두 연결해 놓으면 그림이 어떻게 변할까?
이 그림속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경유착과 부패'라고 꼬리표를 달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의 이 거대한 카르텔을 부수지 않고는
대한민국호가 더이상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그 시작을 수행하려는 것이고 당연히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삼성그룹 이병철, 현대그룹 정주영, 선경그룹 최종현 등 거대 기업집단을 만든 재벌 창업자들... 정부는 재벌 대기업이 수출을 해서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도록 자금과 세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재벌 총수들은 대통령과 권력실세들에게 통치자금 명목의 뇌물을 넉넉하게 바쳤다. 5.16 직후 군사혁명정부는 재계 서열 10위권 기업인들을 모두 구속했다. 구속되어 있던 기업인들은 '조국근대화사업'에 협력하기로 맹세하고 모두 풀려났으며 각자 일정액의 추징금을 납부했다. 이병철 회장은 박정희 의장을 다시 만났을 때 기업인들에게 벌금을 물리기보다는 공장을 지어 정부에 헌납하게 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이 제안을 수용해 정부가 기업에 투자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률을 만들고 국가기간산업 시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정부가 기업에 '투자명령'을 내린다는 방식처럼 멋진 것은 없다.
사실 개인도 그렇지만 기업을 하는 사람들의 가장 어려운 결정은 바로 '투자'이다.
어느 곳에 얼마만큼의 자금을 투자할 것인가?
과연 이 투자는 실패하지 않고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인가?
그런데 이러한 어려운 투자 결정을 정부가 대신 해준다.
그리고 그 투자에 대해서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세금부터 판로까지 모든 곳에서 도움을 준다.
이보다 더 멋진 사업이 있을 수 있을까?
이를 해주는 정부에 돈을 갖다 바치지 않을 기업이 있을까?
5·16 직후 체포되었다 풀려난 기업인들이 만든 단체가 바로 '전국경제사범연합회'라는 비아냥을 듣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다. 아예 기소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지만 범죄 혐의가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난 경우에도 기껏해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그나마 시간이 조금 지나면 대통령은 '국민경제 활성화와 기업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그들을 사면해주었다.
분명 집행유예 제도에도 장점은 있을 것이다.
그가 없을 경우 생계를 이어나가기 힘든 가정도 있을 수 있고
단순한 실수에 의한 것이 분명할 경우, 재범의 가능성도 없을 경우에
굳이 실형을 살게 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손해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재벌은 집행유예···‘3·5 법칙’을 아시나요?
http://h2.khan.co.kr/201708281431001
집행유예는 징역 3년 이하를 선고할 때만 가능하다.
즉 3년을 초과하는 징역을 선고할 경우는 반드시 형을 살아햐 하는 것이다.
여기에 꼼수를 동원한다. 바로 1심에서 5년을 선고하는 것이다.
2심에서는 이를 3년으로 감형하고 집행유예를 판결한다.
‘양승태 대법원’ 민낯 드러나…법원행정처 문건 추가 공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60487&ref=D
땅에 떨어진, 아니 완전히 지하실로 들어간 사법부의 신뢰는 회복될 수 있을까?
모든 사안은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의심가는 모든 재판은 모조리 '재심'에 들어가야 한다.
의심되는 재판의 판결을 수행한 모든 판사들은
모든 수사 결과가 드러나기 전까지 그 어떤 재판에도 참여하면 안된다.
이것이 바로 국민 감정이고, 그것이 바로 '헌법'이다.
농지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어서 더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도 생산량이 별로 늘지 않았다. 이른바 '한계생산력 체감의 법칙'이 작용한 것이다. 먹고살기 힘든 농민들이 가족을 데리고 농촌을 떠났다. 새로운 삶을 원하는 젊은이들은 일자리와 더 나은 삶을 찾아 혼자 도시로 이주했다. '무작정 상경’ 열풍이 불어 농촌 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도시 인구는 급증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와 주변지역에 빈민가와 달동네가 형성되었다.
농사는 이제 먹을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니었다.
이전까지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먹고살기 힘들었어도 농사를 지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도시에 나간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한계생산력 체감의 법칙
https://m.blog.naver.com/green83green/140036598466
'한계생산력 체감의 법칙'이라는 어려운 말을 쓸 이유도 없다.
결국은 희망이다. 왠지 도시에 나가면 희망이 있을 듯한 마음
'무작정 상경’은 바로 그 마음이 몸으로 표현된 것 뿐이다.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는 것은 최악의 반사회적·반국가적 범죄로 간주했다. 여러 가지 소문이 있기는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해외에서 받은 차관이나 기업인들에게 받은 통치자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공공연하게 스위스 비밀계좌로 돈을 빼돌린 20세기 지구촌의 숱한 개발독재자들과 달랐다. 이것은 한국형 개발독재의 문화적 전통이 되어 후임자들에게 계승되었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은 재임 중 재벌 총수들에게 밝혀진 것만 해도 1조 원이 넘는 뇌물을 받아 통치자금으로 썼는데, 잔금을 해외로 내보내지 않고 국내 금융기관에 예치해두었다가 꼬리를 잡혀 구속되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예로 들면서 그들이
해외로 돈을 빼돌렸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로 해외로 빼돌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완벽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박정희 스위스 비자금 수조원대…최순실이 세탁”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84013.html
위 기사가 일부러 악의적인 일방적 주장을 보도한 것일 수 있다.
진실은 그 누구도 알수 없을 것이지만
난 숨겨놓은 재산이 많을 것이라는 의심이 보다 합리적이라 판단한다.
삼성그룹의 역사는 한국 경제의 발전과정 전체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이병철 회장은 일제강점기에 정미업과 운수업을 했다. 이승만 정부 때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했으며 한국전쟁으로 대구에 피난해 있으면서 제조업 진출을 준비했다. 가장 먼저 제일제당을, 그다음에는 제일모직을 세웠다. 그는 소비재 독과점 공급자의 지위를 활용해 벌어들인 돈으로 국내 은행 주식의 절반을 취득해 금융업 기반을 만들었다. 5·16 이후에는 일본 자본을 끌어와 울산에 한국비료를 세웠으며 동양방송, 용인자연농원 등 미디어와 레저산업에 도전했다. 1970년대에는 전자산업, 조선업, 플랜트사업, 석유화학, 방위산업에 손을 뻗었고 생명보험, 백화점, 호텔사업에도 진출했다. 반도체와 컴퓨터산업은 1983년에 착수했다.
이제 삼성은 공룡이 되버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가 범죄인지 아닌지는 누가봐도 명백하다.
아주 비열한 저질스러운 범죄행위이자 미국 같았으면
온 나라가 들고 일어나서 주동자는 몇십년의 징역형을 받아야 할 중범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인 뉴스에 관련 뉴스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검색으로 뉴스를 찾아보려해도 너무나도 힘들다.
온통 분식회계가 맞는가 아닌가 하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쏟아낸다.
삼성의 발전이 곧 대한민국의 발전이었다.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제 좀 비열한 짓은 좀 그만하면 안되겠니? 많이 묵었다 아이가...
철강, 금속, 자동차, 화학, 플랜트 같은 중화학산업과 전자, 통신, 반도체, 항공 등 첨단산업에는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하다. 그 투자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주체는 국가와 재벌밖에 없었다. 국가독점자본주의도 민간독점자본주의도 바람직하다고 하기 어렵다. 둘 다 거부하면 주력산업의 교체 속도가 느려진다. 결국 우리는 콜레라와 페스트 사이의 선택에 직면했던 셈이다.
'콜레라와 페스트 사이의 선택'
대한민국은 어쨌든 선택을 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평가된다.
내가봐도 이것은 기적이라는 말 말고는 표현하기 힘들다.
하지만 늘 가슴 한켠이 아린다.
국가가 재벌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재벌이 국가를 관리하는 세상이 되었다. 산업화의 성공은 정부와 재벌의 관계를 바꾸어놓았다. 처음에는 정부가 갑이고 재벌이 을이었다. 고도성장기를 거쳐 재벌이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고 정치적으로도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정부가 권력으로 기업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재벌이 돈으로 정치권력을 관리하게 되었다. 재벌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으며 어쩌면 우리의 미래마저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재벌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헌법 위에 군림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국가권력을 통한 정치적·민주적 개입과 통제뿐이다. 나는 이것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본다.
우리가 '콜레라와 페스트 사이의 선택'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난 그 모습이 늘 궁금하다.
이제라도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해야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래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청산'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처리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13일 선거의 투표가 더 중요하다.
지난 글 목록
"나의 한국현대사"를 펼치며...
"나의 한국 현대사" 1 - 서문과 프롤로그
"나의 한국 현대사" 2 - 제1장 역사의 지층을 가로지르다
"나의 한국 현대사" 3 - 제2장 (1/2) 4·19 혁명
"나의 한국 현대사" 4 - 제2장 (2/2) 5.16 군사쿠데타
"나의 한국 현대사" 5 - 제3장 (1/3) 한강의 기적
"나의 한국 현대사" 6 - 제3장 (2)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박정희가 돈을 빼돌리지 않았다면, 전두환도, 박근혜도 스위스계좌를 어떻게 트는지 몰랐을 겁니다. ㅎㅎ 그럴리가 ....
미국에서 그런 비밀 정보가 공개된적이 없나요? ..MB야 워낙 창조적인 인물이지만 말입니다.
하루빨리, 경제 민주화를 기다려봅니다.
경제 민주화 이제 첫 걸음을 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재벌의 악폐습이 알려진지는 좀 됐으나 경제민주화의 길은 왠지 멀어져만 가는 듯 하네요
재벌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만... 이제 삼성은 좀 철저하게 건드려줘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딱 이재용이 한 짓거리네요 1심에서 5년 2심에서 집행유예... 삼성은 골리앗이 되었고 삼성을 팔고 그 뒤를 봐주던 우리 사회의ㅜ민낯들은 아직도 득실대고... 보도가 많이는 안되더라도 요즘은 그런 뉴스미디어만 채널이 아니니 정당한 벌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양승태 사태를 계기로 젊은 법관들의 미래를 보더라도, 땅에 떨어진 사법부를 바로 새우기 위해서라도 명명백백 밝혀질 것은 밝혀지고 진정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기를 바랍니다.
이번 양승태 건은 정말 철저하게 파헤쳐야 합니다.
정말 이가 갈리는 사건입니다.
더 늦기전에 정말 탈탈 한번 털어야할텐데말입니다...
법의 최후의 보루가 재판정인데 그곳에서까지 이렇게 더러운 짓거리를 아직까지 하고 있었다는게 정말 분노를 금할수 없습니다. ㅠㅠ
알면 알수록 답답한 역사입니다...
이 답답함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할텐데... 참 갈길이 멉니다.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아직 확인 되지 않는것도 있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김재익 수석이 아웅산테러때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우리나라 경제의 초석을 확실히 다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