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류의 적, 파시즘을 지지한 교황?

in #kr-history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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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교황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정의의 사도'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실겁니다. 물론 저도 그렇고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바티칸 시국의 군주인 교황은 전 세계에서 테러와 각종 사고, 전쟁이 있을때마다

인도주의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애도와 추모를 아끼지 않아 왔습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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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역대 교황들이 정의와 평화, 사랑을 표방해온 반면

그렇지 않은 교황도 한 명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인물은 바로 259대 교황 비오 11세 (Pius PP. X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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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비오 11세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파시즘의 대표주자인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저지른 범죄는 너무도 많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히틀러만 해도 인종 청소론에 기반하여 각종 인체 실험과 대학살을 자행하고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죠.

제 2차 세계대전은 이들과 민주주의 진영의 투쟁이였으며

당시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조차도 민주주의 진영에 합세하여 맞서 싸우고 많은 희생을 치뤘습니다.

그런데 교황 비오 11세는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도록 옆에서 거든 우수한 공로자(?)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는 무솔리니를 '신의 뜻을 부여받은 인물' 이라 칭하며 교황 임기 기간동안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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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비오 교황은 대체 왜 이런 잔혹한 독재자를 지지했던걸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바티칸 시국의 상황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756년부터 1870년까지, 교황청의 지배하에 있던 영토는 로마를 포함하여 이탈리아 북부지방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현 바티칸 시국의 영토보다 훨씬 넓은 면적을 자랑했죠. 그림으로 보시면 더욱 실감이 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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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교황령(좌)과 1929년에 국가로서 정식 인정받은 바티칸 시국의 국경(우)
출처 : 위키피디아

교황령(Papal state)이라 칭하는 이 영토는 1870년 이탈리아군(軍)의 침략으로 인해

오른쪽 사진과 비슷한 정도로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렇게 교황령의 대부분을 점령한 이탈리아는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기 위해 의회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종교에 대한 교육과 종교적 색채가 있는 결혼을 금지했습니다

교황청도 이에 대항해 이탈리아를 정당성이 없는 국가로 선전하는 등 대립을 계속하였는데요.

이때 양측 진영에 각각 등장한 무솔리니와 교황 비오 11세가

이 삐걱대는 관계를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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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솔리니와 교황 비오 11세의 기묘한 관계

무솔리니는 본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가톨릭 교도들을 동물만도 못한 인간으로 치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1921년에 치뤄진 선거에서 의회 351석 중 35석만을 차지하여 참패를 당하고 맙니다.

가톨릭 교도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이탈리아에서 어떻게보면 당연한 결과였죠.

무솔리니도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이때부터 가톨릭교에 대한 대우를 180도 바꾸어

파시즘을 통해 크리스쳔의 사회를 다시 회복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교황 또한 이를 이용하여, 교회의 봉건성을 비판하는 모더니즘의 싹을 없애고

교회의 절대적인 권위를 되찾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황이 왕이였던 그 옛날 중세시대처럼요.

또한,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의미에서도 교황은 파시스트에 대해 관대했는데

민족적 우월주의, 사상 탄압 등을 내세우는 파시스트보다는

신을 부정하는 공산주의가 더욱 위험한 존재로 보였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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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순간이였습니다.

그렇게 무솔리니는 교황의 권위를 등에 업고 대중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다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게 되는데

교황청은 그 대가로 1929년, 이탈리아로부터 바티칸 시라는 독립 국가를 인정받음과 동시에

세금 면제와 각종 보상금 등 엄청난 경제적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33년에는 또 나치스 독일과 상호 특권을 존중한다는 조약까지 맺습니다.

이로 인해 또 막대한 돈이 바티칸으로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돈과 권력에 취한 교황 비오 11세는 임기 내내 누가 뭘하든 그저 방관자로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반유대인법을 제정하든, 가톨릭교 국가를 침공하든 나 몰라라 하는 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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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비밀문서고(Vatican Secret Archives)의 내부 모습

이 이야기는 2002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바티칸 비밀문서고의 내용을 일부 개방하면서 세상에 더욱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5천만 명의 사망자를 낳은 제 2차 세계대전과 인종 대학살을 부추긴 인물이

다름아닌 교황이라는 사실은 세상을 놀라게 했고 오늘날까지도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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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사실이네요.
좋은 글 많이 써 주세요.
감사합니다.

넵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혀 다른세상의 소식을 들어서 신기합니다. 고맙습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ㅎㅎ 조만간 또 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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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알고가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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