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의 영어 이야기] #09. 어떤 내용을 받아쓰기하는 게 좋을까?
효율적인 받아쓰기란?
지난 시간에는 영어 듣기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받아쓰기'에 대해 알아봤다. 그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짧은 분량으로 시작한다.
2. 처음엔 그냥 듣는다.
3. 본격적인 받아쓰기 시작
4. 대본 확인
5. 대본 공부
6. 다시 들으며 직청직해 연습하기
7. 따라 말하기(shadowing)
그런데 아무리 효과가 좋다고는 하지만 이 과정을 전부 다 거쳐야 하는 걸까?
사실 받아쓰기란 별 게 아니다. 자기가 들은 내용을 적어보면서 얼마나 제대로 들었는지, 내용을 맞게 이해했는지, 놓친 건 무엇인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들은 내용을 직접 받아써보면 자기가 어떤 걸 못 듣고 놓치는지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에 더 공부가 된다. 하지만, 받아쓰는 작업은 생각보다 더디고 어렵다. 위에 적혀 있는 대로 다 따라 하다가는 작심삼일로 끝날 확률이 높다.
맘에 드는 대로 믹스 & 매치!
이럴 때는 융통성을 발휘해보자. 일일이 받아쓰는 게 너무 힘들다면 받아쓰는 건 빼고, 그냥 영어로 한번 들은 다음 바로 대본을 보며 공부해도 좋다. 즉, 위에 적혀 있는 방법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만 그때그때 취사선택해도 좋다는 뜻이다.
너무 여러 번 들으면 금방 지루해져서 싫을 것 같다면 2번은 빼고, 3, 4, 5, 6번 순서로 공부해보자. 직청직해 공부하는 것도 싫다면 3, 4, 5번만 해도 된다. 사실 받아쓰기의 핵심은 3, 4, 5번이니까.
어느 정도 실력이 뒷받침되는 상급자라면 받아쓰기는 건너뛰고 5, 6, 7번만 공부하는 것도 좋다. 기본 실력이 확실히 다져져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듣기와 말하기 실력이 향상될 것이다.
실력은 초급이지만 받아쓰기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힘들다고? 걱정 마시라. 그렇다면 받아쓰기는 빼고 2, 4, 5번만 해도 좋다. 받아쓰기만큼은 아니겠지만 영어로 듣고, 대본을 공부하는 것으로도 실력은 높아질 수 있다. 중요한 건 꾸준히 공부하는 거다.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지 말고, 자신의 컨디션이나 공부할 자료에 따라 여러 가지 조합으로 받아쓰기를 해보자.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받아쓰기를 하는 자신만의 패턴이 생길 것이다.
노트북과 이어폰만 있으면 어디에서건 쉽게 받아쓰기를 할 수 있다.
어떤 내용을 받아쓰기해야 할까?
그럼 어떤 내용을 받아쓰기하는 게 좋을까? 내 생각에 제일 좋은 건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재미있어하는 걸 받아쓰기하는 것이다. 앞서 읽어봤으니 알겠지만, 받아쓰기를 하려면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돌려봐야 하고, 안 들리는 부분은 이어폰을 귓속 고막까지 닿도록 밀어 넣은 채 수십 번 들어야 한다.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내용을 그렇게 반복해서 듣는 건 정말 따분하고 지겨운 일이다. 그러니 가급적 보고 봐도 또 보고 싶은 걸 공부할 자료로 선택하는 게 좋다.
일단 여기에서는 뉴스, 영화, 드라마 등에 대해서 받아쓰기를 할 때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자신에게 맞는 자료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1. 뉴스
장점:
뉴스라고 하면 어려울까 봐 지레 겁부터 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의외로 도전하기도 쉽고, 노력한 만큼 효과도 좋은 게 뉴스다.
패턴이 일정하기 때문에 단어만 알면 듣기가 쉽다. 사건/사고, 정치, 경제 등 분야에 따라 뉴스에 나오는 내용은 사실 거기에서 거기다.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만 알면 오히려 받아쓰기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사건/사고: 교통사고, 붕괴, 총기난사, 사망자, 부상자.
자연재해: 지진, 홍수, 폭우, 태풍, 화산 폭발, 대피.
정치: 선거, 투표, 경질, 당선.
경제: 주가, 부동산, 폭등, 폭락.
매일 수십 수백 건의 기사가 쏟아져 나오지만, 각각의 기사에 실리는 사건과 단어들은 큰 테두리 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망 기사에는 "00계의 큰 별이 지다", 사고 기사는 "매년 반복되는 xxx 이대로 괜찮은가", 자연재해 기사라면 "안이함이 키운 대참사", 정치면은 "국민과 소통하는...", 경제면은 "부동산 폭등, 주가 폭락, 더블 딥 오나" 등등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패턴들이 있다. 따라서 기본적인 패턴 문구와 단어들을 공부하면 받아쓰기가 더 쉬워질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세상 물정과 시사에 밝아진다는 점, 아나운서나 기자들은 대개 발음이 아주 좋기 때문에 정확한 발음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단점:
패턴이 일정하다는 건 지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맨날 어디에 사고가 나고, 뭐가 폭발했고, 어디엔 전쟁이 났고, 그런 얘기니까. 수십 번 반복해가며 듣기에는 좀 지겨울지도 모른다.
뉴스 듣기로 입문해서 받아쓰기에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면 다른 분야에 도전해봐도 좋을 것이다.
2. 영화/만화/드라마
장점: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만화/드라마를 고를 경우 수십 번 반복해서 보더라도 질리지 않는다. 실생활 회화를 배울 수 있고, 미국의 문화를 익힐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언어를 배울 때 그 나라의 문화를 모른 채 단어만 익히는 건 반쪽짜리 배움이나 다름없다. 미국에는 크리스마스 때 천장에 달아놓은 '겨우살이' 아래에 우연히 두 남녀가 서게 되면 뽀뽀를 하는 문화가 있다. 이런 문화를 모르면 사귀지도 않던 남녀가 갑자기 뽀뽀를 하는 모습이 뜬금없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현지인의 생활 습관과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화나 드라마는 아주 좋은 교재가 된다.
단점:
반면, 위에서 말한 장점이 오히려 단점이 되기도 한다. 미국 문화를 잘 아는 사람(선생님이나 교재 등)의 설명이 없다면 이 장면에서 왜 주인공이 화를 내는 건지, 이게 왜 웃긴 장면인 건지 알 수가 없다. 대개 받아쓰기는 혼자 공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르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며 공부하기보다, 그냥 넘어갈 확률이 높다.
또한 영화나 드라마는 말이 빠르다. 뉴스는 정보 전달이 목적이기 때문에 정확한 발음으로 비교적 또박또박 알아듣기 쉽게 말을 하는데, 일상 회화는 그것보다는 말이 빠른 편이다. 게다가 배경 잡음이 있다. 영화는 뉴스처럼 조용한 스튜디오에서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집, 거리, 카페, 회사 등등 장소에 따라 다양한 잡음이 들려서 대사를 알아듣기 힘들 때도 있다.
게다가 영화나 드라마에는 다양한 인종이 등장한다. 미국식/영국식/호주식 영어뿐만 아니라 백인, 흑인, 인도계, 남미계, 아시아계 등 여러 사람들의 발음을 접할 수 있다. 한 가지 발음에만 익숙해지기도 바쁜데 온갖 억양과 발음이 난무하면 알아듣기가 힘들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나운서 발음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만 만날 건 아니니까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3. 팝송
장점:
받아쓰기한 예문을 외우기가 쉽다. 노래를 외워서 부르면 되니까. 문장 외우기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전반에 걸쳐 영어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데, 노래 가사를 외워 부르면 수많은 문장을 어렵지 않게 외울 수 있다.
단점:
말과 달리 음이 이어지기 때문에, 원래 말할 때는 연음이 안 되는 곳이 이어진다거나, 이어질 곳에서 떨어진다거나 할 가능성이 있다. 아래 노래를 불러보자. (읭?)
I'm so sorry but I love you 다 거짓말!
이야~, 몰랐어. 이제야 알았어.
빅뱅의 노래 "거짓말"의 가사다. 노래의 마디가 나뉘는 것에 따라 가사를 배열하면 저렇게 된다. 글만 읽어보면 '이야'가 마치 감탄사 "이야~!" 같다.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될 것이다.
I'm so sorry but I love you.
다 거짓말이야. 몰랐어. 이제야 알았어.
'거짓말이야'를 한 번에 붙여서 읽지, 절대로 '거짓말/ 이야몰랐어'라고 읽지 않는다. 팝송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을 수 있다.
Mr. Big의 노래 "To be with you"의 노래 가사 한 구절이다.
Just to be the next TO be with you!
노래를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저 뒷부분을 부를 때 'next TO be with you'처럼 to를 강조해서 부른다. to의 음이 높기 때문에 그렇게 들리는데, 실제로 이 문장을 말로 할 때는 TO를 크게 강조해서 말하지 않는다.
또한 노래 가사가 잘 안 들리거나, 가수의 발음이 안 좋은 경우도 부지기수다. 우리나라에서도 발음이 특히 안 좋아서 놀림을 받는 몇몇 가수들이 있는데, 팝송도 예외는 아니다.
오래된 노래이긴 하지만, 임창정은 자신의 노래 "날 닮은 너"를 부를 때 "두려워 겁이 나"를 "두려워 겁시 나"라고 불렀다. 제발 이 노래로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은 없기를. 팝송도 마찬가지로 가수의 발음에만 의존하게 되면 잘못된 발음과 연음을 익히게 될 수 있다.
팝송으로 공부하기의 또 다른 단점. 그건 바로 공부하다 말고 춤추게 된다는 거 아닐까? ㅎㅎㅎ
지금까지 영어 듣기 실력 향상 프로젝트의 마지막인 받아쓰기에 대해 알아봤다. 받아쓰기로 공부를 하면 듣기 실력이 확실히 향상되기는 하지만, 이게 그리 쉽지는 않다.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로 공부를 한다 하더라도 받아쓰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라 쉬이 지치기도 한다. 한동안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듣기 실력이 생각만큼 빨리 늘지 않아서 속상할 수도 있다. 그래도 조바심을 내거나 실망하지 말자. 눈에 띄지는 않지만 당신은 영어의 곳간을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는 중이니까. 지치지 말고 꾸준히 공부를 하면 분명 듣기 실력이 향상되어 있을 것이다.
배가 고플 때 라면을 끓여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배는 고파 죽겠는데 냄비의 물은 끓지를 않는다. 라면 봉지도 미리 뜯어놨고, 같이 먹을 김치도 꺼내놨는데, 정작 물이 끓지를 않는다. 하지만 아직 100도가 되지 않아 속에 담아 두고만 있을 뿐이지 냄비 속 물은 이미 열을 받고 있다. 물이 끓지 않는다고 그냥 불을 꺼버리고 생라면만 우적우적 씹어먹으면 맛있는 라면을 먹을 수 없다.
영어공부도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아무리 공부해도 도통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을 때가 있다. 받아쓰기가 좋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영어가 안 들리는 것 같아서 속상할 때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 겉으로 표시는 안 날 수도 있지만 여러분은 자신의 영어 냄비에 계속 불을 지피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 불을 꺼뜨리지 말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공부를 하자. 언젠가는 분명 그 영어 냄비가 끓어 넘칠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계란 하나 탁! 깨서 넣고, 라면 맛있게 끓여 드시길.
[불이의 영어 이야기] 지난 글들 최근 5개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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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의 영어 이야기] #04. 영어는 왜 이리 안 들릴까? - 1편
[불이의 영어 이야기] #05. 영어는 왜 이리 안 들릴까? - 2편
[불이의 영어 이야기] #06. 영어 듣기 실전에 적용하기 - 1편
참 영어는 왜이리 어려운지 ㅠㅠ 수많은 좋은 방법들을 알아도 꾸준히 흥미를 갖는게 힘든거 같아요 ㅠㅠ
요즘 일주일에 2번씩 회화 공부하고 있는데 이것도 다음주면 끝나서 이제 또 스스로 해야되는데 걱정이네요 ><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연관시켜서 공부하는 게 흥미 잃지 않고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길인 거 같아요. ^^
끓어 넘칠때까지! 매일! 꾸준히!
넵. 매일 꾸준히 하는 게 답입니다. ^^
역시 언어는 꾸준히가 답이네요. 예전에는 미드보면서 공부도 하곤 했는데 확실히 관심있는 쪽이 공부하기엔 편하더라구요
맞아요. 요새는 예전과 달리 미드를 보는 채널도 많아졌으니,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손쉽게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어요.
빨리 고수가 되서 5,6,7만 하고 싶네요!! 그리고 브리님은 예시가 너무 재밌어요. :-)) 오늘도 잘 배워갑니다 ^^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뭔가 좋아할 만한 주제를 받아쓰기 하는게 좋을 것 같아보이네요.
자꾸 작심 하루만 하고있네요 ㅋㅋ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을 때, 아, 이젠 공부가 좀 하고 싶다, 싶을 때 시작해 보세요.
성급하게 시작했다가 금방 포기하는 거보다 낫지 않을까요? ^^;
미드랑 영화보았는데 .... 공부한다는게 미드랑 영화만 집중한거 같아요 ㅎㅎㅎㅎ
뉴스로 한번 도전해봐야겠어요 ㅎㅎ
브리님 즐거운 목요일되세요^^
일단 미드나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요. 두 번, 세 번째 보면서 다시 공부하면 되는 거죠.
그러니까 두세번 봐도 재미있을 만한 그런 미드/영화를 고르는 게 중요하고요.
물론, 뉴스로 공부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
뭐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게 좋을것 같네요. ^-^
그렇죠. 좋아하는 걸로 공부해야 꾸준히, 지치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거든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억지로 공부하면, 나중엔 꼴도 보기 싫어지고, 결국엔 다 잊혀지더라고요.
안녕하세요.
이번에 스팀잇 시작하게 된 초보 스티머 @Heeingu 입니다 :0
저는 책과 강아지와 일상을 블로깅하려고 하는 뉴비에요.. ㅎㅎ
댓글 보고 들어왔어요. :D
팔로우와 보팅할게요!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
잘 알았어요.. 이제 시작만 하면 돼요..ㅎㅎ
시작이 반이니까, 나머지 반만 어떻게 하면 돼요.. ㅎㅎㅎ
역시 머리속에 쏙쏙 들어오는 예시네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