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의 백조 갑질 기사를 보며.
인상적인 기사가 있었습니다. 백조 갑질이라는 내용입니다. 백조가 갑질을 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한때 고니를 심볼로 삼았던 조! 패밀리가, 옛 로고가 그리웠는지는 몰라도 멸종위기 희귀종 울음고니를 두 마리 들여와 전담직원을 두고 관리하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백조 상태가 시들하면 조인트 까이기 일쑤였다네요. 한 마리가 죽었으니 누군가 짤렸을지도 모릅니다.
“목장에선 임원보다 백조의 지위가 높으니 부회장급이나 다름없다는 농담까지 퍼졌다.”
엘레강스의 대명사인 고니가 쌈마이한 부회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기사를 읽으니 생각나는 글이 있었습니다. 백조를 다룬 가장 멋들어진 문장일지도 모릅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의 “밤에 고북구를 나서며”입니다. 혹자는 5천 년래 최고 명문으로 꼽기도 합니다.
박지원 일행이 베이징에 도착해보니, 일흔 노인 건륭제는 만리장성 너머 열하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부리나케 열하로 쫓아가기에 열하일기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만리장성을 고북구라는 전쟁터 지점에서 지나게 됩니다. 북방민족과 한족간의 수 없이 많은 싸움이 일었던 현장을 지나며 연암은 감수성이 충만하여 벼루에 술을 붓고 글을 씁니다. “서생의 몸으로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야 장성 밖을 나가 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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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북구 장성 아래는 바로 날고 뀌고 베고 치던 전쟁터였으니, 지금 사해는 전쟁을 하지 않지만 여기 사방의 산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골짜기는 음산하며 매우 어두침침하다.
때마침 달은 초승달인지라, 고개에 걸려 떨어지려 했다. 그 빛이 싸늘하고 예리하기가 칼을 숫돌에 갈아 놓은 것 같았다. 잠시 후 달이 더욱 고개 아래로 떨어졌으나 뾰족한 두 끝은 여전히 드러나 있더니 갑자기 시뻘건 불처럼 변해서 두 횃불이 산에서 나오는 듯 했다.
북두칠성이 관문 안으로 반쯤 꽂히자 벌레 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긴 바람이 으스스 불자 숲과 골짜기가 함께 운다. 그 짐승 같은 가파른 산과 귀신 같은 봉우리들은 창을 늘어놓고 방패를 한데 모아 서 있는 듯하며, 강물이 두 산 사이에서 쏟아져 사납게 울부짖는 것은 철갑 입은 기병들이 징과 북을 울리는 듯하다. 하늘 너머에서 학의 울음소리가 대여섯 차례 들린다. 맑고 곱기가 피리 소리가 길게 퍼지는 듯하다. 누군가 말했다. 이것은 천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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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가 글 어디에 있을까요. 열하일기 번역본마다 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천아가 전쟁 나발이라 하기도 하고, 고니의 울음소리라기도 하죠. 고니의 울음소리가 궁금해 한참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고니중 가장 멋드러진 소리를 내는 것이 Trumpeter swan. 등빨이 있어 울림통이 크고, 구불구불한 목이 섹소폰같은 공명을 내는지 관악기의 청아한 음색을 냅니다. 부부젤라같이 시끄럽기도 하지만요.
연암은 으스스한 전쟁의 역사를 풍경에 빗대어 보는 듯 묘사하다가, 뜬금없이 고니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현실로 싹 빠져 나오죠. 얼마나 엘레강스합니까. 우아한 백조의 명예가, 한진 일가 때문에 살짝 상한 것 같아 잡생각 몇 줄 적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