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아들과 부산-인천 자전거 국토종주의 기억

in #korea7 years ago

2013년에 국토종주를 한 게시물을 카페에 올려두었다가 이곳에도 옮깁니다.

몇년이 지나도 아들과 단둘이 함께 7박8일을 달린 기억은 소중하게 남아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인생에 기억남을만 한 일입니다.

지금은 중3이 된 아들도 나중에 자신의 자녀와 이같은 경험을 한번 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600킬로가 넘는 길에서 만난 여행자들의 따뜻한 응원과 호의, 아들 마음 속에도 평생 사람에 대한 따뜻함으로 간직되길 바랍니다.

10세 박장혁 국토종주의 기록입니다.


기억이 잊혀지기 전. 기록을 위해 올립니다. 아이의 컨디션에 맞춰서 달리기 위해 사전에 숙박업소를 예약하지 않았습니다. 예약해두면, 괜히 그 지점까지 무리할 수도 있어서...(절대 게을러서 그런 게...-_-;;) 그래서 16시 무렵부터 숙박을 찾아야 했습니다. 기억과 카드 전표를 더듬다보니 부정확한 것도 있고... 그럴 것 같습니다.

  1. 부산으로

9월 14일(토) 18시 : 강남터미널에서 부산 터미널로 가는 고속버스 탑승. 고속버스 기사님은 원래 버스에 자전거 실으면 안된다고 뭐라 하시던데...
부산에 도착하니 밤 10시 반. 지하철로 하단역까지 이동할 계획이었으나, 아이가 빨리 자고 싶다고 해서 자전거로 좀 이동 후, 범어사 근처에서 숙박.
(부산 터미널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터미널만 덩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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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터미널 도착>

1일차 을숙도~삼랑진

9월 15일(일) 8시쯤 기상. 아침식사 후, 지하철로 이동. 거의 끝에서 끝이다보니 한참 걸립니다. 하단역에서 내려서 1km 남짓 가니 을숙도 인증센터. 수첩을 사고, 편의점에서 육포, 에너지바, 물, 등등을 사고 출발 준비. 출발하기 전 무덤덤한 인증샷.

양산 물문화회관 지나서 삼랑진쯤 가니 17시 무렵. "더 갈래? 아니면 여기서 쉴까?" 얼마 안달렸지만, 첫날이라 피곤한지 쉬자고 함.

중간에 만났던 다대포에서 휴대폰 대리점 운영하신다는 분. 응원해주시고, 이후 며칠간 아들에게 문자와 통화로 격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숙박 : 삼랑진 낙동장 모텔 . 자전거를 창고에 보관해주시고, 탈수기 있느냐는 질문에 옷도 세탁기에 돌려주심.
  • 식사 : 김해횟집. 모텔 근처 큰 공터가 있는 곳. 매운탕이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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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덤한 국토종주 출발 인증>

2일차 삼랑진~적포교

낙동장모텔에서 일찍 나와서 달린다.

전날 가려고 했던 수산리에서 감자탕으로 아침식사. 남지 부근 마을 입구 정자에서 쉬는데 아저씨가 말씀하신다.

"좀 더 가면 산 하나 넘어야 되는데, 넘어온 사람들은 이명박 찍은 사람도 이명박 욕하게 되더라고. 고생해."

아들이 묻는다. "아빠, 고생해~ 라는 말이 왜 응원이야? 고생하지 마~ 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뭐 어쨌든... 낮은 언덕 넘어서 달리는데 갑자기 큰 고갯길이 나타난다.

끌바로 넘고 나니 이런 풍경이. 내려오니 영아지마을이었나? 이쪽도 우회 코스가 있다고 나중에 들었음.

박진교 쪽은 우회코스를 택해서 달린다.

어둑해질 무렵 숙소에 도착. 삼겹살로 배를 채우고 숙박.

부산 고향에 내려가신다는 분께서 아들에게 만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만원짜리는 종주 내내 인증수첩 맨 앞장에 꽂혀 있었습니다.

  • 숙박 : 적교장모텔
  • 식사 : 서울식당 (적포교 근처에는 식당이 몇군데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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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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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 부근 영아지마을 고갯길>

3일차 적포교-남구미대교

가장 일찍 나온 날. 5시쯤 모텔을 나와 라이트 켜고 새벽길을 달리다보니 어느덧 동이 터온다.

창녕합천보. 아침은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고, 점심은 강정고령보 근처에서 먹었다.

이제 별 감흥이 없지만, 달리다보니 석양이 멋지다.

12살-10살-8살 꼬맹이들 셋이 꽤 멀리까지 나와서 함께 달렸다.

12살 아이는 아들에게 기어변속 등의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숙박 : 중리 모텔촌
-식사 : 중리 인근 달감치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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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가 많다보니 무슨 보인지 기억이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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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낙동교 아래에서 멋진 석양을 담는 아들의 뒷모습>

4일차 남구미대교-점촌역 (위기)

낮이 뜨거웠다.

낙동강 물에 발도 담그고 오후에 쉬엄쉬엄 가다보니 해가 져오는데 근처에 숙소가 없다. 점촌까지 가야 하는 상황.

점촌을 10여킬로 남기고 아들이 힘들어한다. 무리시키고 싶지는 않아서 콜밴에 전화했다.

그런데 문경 콜밴이 왜 서울에서 받는지.... 콜밴이 없다. 자전거를 두고 택시를 타고 갈까, 히치하이킹을 할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휴식 후 천천히 남은 10km를 갔다.

-숙박 : 랑데뷰모텔. 원형 침대에서 처음 자봤다. 아줌마는 친절했다. 탈수기를 돌려서 가져다 주었다.
-식사 : 치킨 배달로 대신함. 그 동네 두마리 치킨이었는데, 양이 어마어마했다. 그 다음날 개들에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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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물에 발담그고 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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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보이면 쉬었다 간다. 멍멍이 브레이크타임>

5일차 점촌역-수안보

전날 힘들었고, 추석날이기도 하여. 알람도 끄고 충분한 휴식 시간을 주었다.

집에서 보내온 차례상 사진에 절 두번 하고 출발.

아들은 잠자고 나니 다시 쌩쌩해졌다.

오늘은 이화령을 넘는 날.

새재식당에서 점심으로 주물럭을 먹고, 출발.

이화령은 생각보다 언덕이 높지 않았는데, 지나다 들은 이화령 이야기 때문인지 힘들어 한다.

둘째날 영아지 고개는 잘도 넘더니만... 끌다가 걷다가, 밀어주다가.

지나는 차들에서도 힘내라고 응원해주니 1km 전방부터는 쭉 타기 시작한다.

업힐의 보상은 다운힐. 길게 이어지는 다운힐이 짜릿하다.

이화령을 넘으니 소조령은 거의 무정차 통과다.

여행기간 중 가장 좋은 곳에서 숙박. 상호에 무려 호텔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 숙박 : 르네상스호텔. 지하에 대중탕 이용이 무료다.
  • 식사 : 싱싱횟집. 모듬회 소자를 거의 다 비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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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침마다 힘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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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재길 어딘가의 정자. 휴식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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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온천 근처 인공암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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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진 찍는 이화령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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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 주변에서 쉬니 주인아주머니께서 사과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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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를 후루루룩>

6일차 수안보-여주

수안보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출발. 이제 새재길도 끝이다.

탄금대까지 가는 길은 국토종주 중 가장 멋졌다.

탄금대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녹차라떼를 한잔 먹고 다시 출발한다.

탄금대는 사실 별로 볼게 없는 듯. 쉬엄쉬엄 달리다보니 강원도도 잠시 밟고 경기도로 들어온다.

해가 어둑해져서 신륵사 근처까지 가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민박에서 묵는다.

  • 숙박과 식사: 장수펜션. 도착하자마자 시원한 사이다 한잔 주시고. 가정식 백반 5천원. 아이는 밥값을 받지 않았다. 그 다음날 힘내라고 아침에 컵라면 두개까지. 저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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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가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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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보니 유격훈련장이... 이런 곳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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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자전거도 나란히 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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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을 바라보는 어린 라이더>

7일차 여주-천호동

아침에 펜션 사장님이 주신 컵라면을 먹고 인증 도장들을 찍어 나가기 시작.

서울 근처로 오니 사람이 많아진다.

이제 마주치는 사람끼리 인사도 잘 안하는 분위기.

아들도 "안녕하세요~" 몇번 하다가 사람들이 반응이 없으니 그만 하는 분위기다.

강천보-여주보까지는 쭉쭉 치고 나가다가 이포보 가는 길에 자주 쉰다.

기어를 너무 무겁게 타지 말라는 아빠의 지적에 마음이 상한듯.

다리 마사지를 해주고, 장난쳐서 기분을 풀어준다. 양평에 와서 한우를 먹는다.

마지막날 최대한 거리를 짧게 남기고 싶은 마음에 저녁무렵 천호동까지 달렸다.

이제 업힐에 익숙해졌다. 암사동 고갯길이 마지막이라고 하니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다.

한우의 힘이 나오는 건가... 막판되니 스피드가 장난 아니다. 22~23km로 지치지 않고 가벼운 페달링으로 달린다. 따라가기 힘들었다.

자전거 스탠드 나사가 빠져서 고치러 들어간 천호MTB에서 무료로 수리해주셨다.

우연히 만난 자전거 파워블로거 호미숙 님이 대단하다며 사진을 찍어가신다.

  • 숙박 : 천호동 J모텔
  • 식사 : 양평 개군한우. 천호동 30년 전통의 치킨집(이름이 생각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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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터널 밑 장수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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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의 한 다리 위>

8일차 천호동-아라서해갑문

이제 남은 거리는 60킬로가 안된다.

서로 미묘한 하이파이브를 나눈 후, 느긋하게 출발.

비가 살짝 내려서 사람이 별로 없다. 더 좋다.

편의점에서 아침을 때우고 여의도-한강갑문까지 쾌속 주파한다.

한강갑문 근처에서 비빔밥으로 아점을 먹었다.

아라뱃길 20km를 다시 달린다. 지겨운 풍경. 인공적인 풍경은 지루하다.

633KM 지점에 도착.

시작이 그러했듯이 끝도 덤덤하다.

인증 스티커를 받고 유람선을 타고 김포까지 나와서 귀가.

아들과 함께 한 부산-인천 국토 종주는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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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종주 스티커도 붙이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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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덤한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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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의 성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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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깡을 잘 못먹는 갈매기>

이상 7박8일의 추석 연휴 아들과 아빠의 국토종주기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포기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씩씩하게 잘 달려준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지나는 동안 아들에게 많은 응원과 격려 말씀 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0세 박장혁 국토종주 완주

(혁아, 나중에 니 이름+국토종주 구글에 쳐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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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이 브레이크 타임 인상적입니다. ^^
글을 보면서 감동적이고 흐뭇한 마음이 많이 드네요.
저도 같은 일은 아니더라도 훗날에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도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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