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음악
고대로부터 전래된 한국 전통의 음악과 중국 및 서역(西域) 등지에서 전래된 음악을 국악(國樂)이라 하고, 주로 갑오개혁 이후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보급된 찬송가를 비롯한 다른 서양음악 등을 편의상 양악(洋樂)이라고 한다.
국악
국악은 사용하는 악기와 곡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① 아악(雅樂): 중국 주(周)나라 때와 그 이전의 음악을 말한다. 1116년(예종 11) 송(宋)나라 휘종(徽宗)이 대성아악(大晟雅樂)을 보내왔는데, 이것이 중국 아악이 한국에 들어온 최초의 일이다. 아악은 태묘(太廟)·사직(社稷)·선농(先農) 등의 제사(祭祀)와 연향(宴享)에 쓰였고, 이때의 악기로는 편종(編鐘)·편경(編磬)·금(琴)·슬(瑟) 등이 있었다. 특히 세종(世宗)은 박연(朴堧) 등을 독려하여 아악을 크게 중흥시켰고, 유신(儒臣)들의 절대적인 뒷받침으로 한때 찬연대비(燦然大備)하였으나 연산군(燕山君)의 난정(亂政)과 임진왜란·병자호란 등으로 쇠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숙종(肅宗)·영조(英祖)·정조(正祖) 때는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과 악기도감(樂器都監)을 두고 편종·편경 등의 아악기를 재정비하는 등 아악의 재건에 힘을 기울여 아악이 재생하는 듯했으나, 1910년 제향(祭享)의 폐지와 더불어 아악이 자취를 감추게 되어 지금은 오직 경학원(經學院)과 공자묘(孔子廟) 제향에 그 잔영(殘影)이 남아 있을 뿐이다.
② 당악(唐樂): 중국 당(唐)·송(宋)나라 때의 속악(俗樂)의 통칭으로, 한국에 전래된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에 “신라 문무왕(文武王) 4년에 당악을 배우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 <악지(樂志)>에 실린 송나라의 사악(詞樂)에는 석노교(惜奴嬌)·태평년(太平年) 등의 43편이 있으나 현재까지 전하는 곡은 낙양춘(洛陽春)과 보허자(步虛子)의 2곡뿐이며, 이것도 당악의 원형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향악화(鄕樂化)되었다. 조선 성종(成宗) 이전까지 성하던 당악은 이와 같이 차차 향악 속에 흡수·동화되어 그 자취를 거의 감추었다.
③ 향악(鄕樂): 고대로부터 전래하는 한국 고유의 음악을 이르나, 최치원(崔致遠)의 《향악잡영(鄕樂雜詠)》에서는 당(唐) 이전에 들어온 중국·서역 계통의 외래음악(外來音樂)은 모두 향악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의 한국 고유의 음악은 조선 전기에도 거의 전승된 것이 없고, 고려시대의 향악(고려시대에서는 俗樂이라 했다)도 차차 자취를 감추어 조선 선조(宣祖) 때의 《금합자보(琴合子譜)》에는 겨우 정석가(鄭石歌)·사모곡(思母曲)·한림별곡(翰林別曲) 등이 전할 뿐이다. 또한 고려시대의 속악으로서 조선 후기까지 전승된 것은 정읍사(井邑詞)·동동(動動) 등의 몇 곡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종(世宗)은 여민락(與民樂)·보태평(保太平)·정대업(定大業) 등을 직접 창작하여 향악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④ 속악(俗樂): 민중과 더불어 자라온 한국 고유의 민간음악(民間音樂)으로서 가사(歌詞)·시조(詩調)·판소리·민요·잡가(雜歌)·산조(散調)·시나위·농악(農樂:매굿)·무가(巫歌)·범패(梵唄) 등이 이에 속한다. 국악은 또한 아악과 속악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아악은 당악과 향악도 포함하여 넓은 의미의 정악(正樂)이라 하고, 민간음악 중에서도 아정(雅正)한 음악인 영산회상(靈山會相)·가곡·가사·시조 등을 좁은 의미의 정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악은 궁중 또는 양반계급에서 연주된 음악이며, 속악은 민중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민중의 애환(哀歡)과 더불어 함께 자라온 ‘민중음악’인 것이다. 특히 향악과 속악은 동양 3국(한국·중국·일본)에서 한국음악의 독창성과 우위성을 증명하는 음악이라 하겠다. 국악발전사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세종대왕의 업적인데 왕은 1447년(세종 29) 향악을 기보(記譜)하기 위하여 정간보(井間譜:한국 최초의 有量樂譜에 속한다)를 창안하였고, 1449년에는 고취악(鼓吹樂)과 향악에 바탕하여 보태평·정대업 등을 창작, 54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으로 연주되고 있다. 또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중심으로 한 호한(豪悍)한 정재(呈才)에 속하는 봉래의(鳳來儀:여민락·致和平 등으로 구성된다)를 제정(制定)하여 성업(聖業)을 이룩하였다. 성종(成宗) 또한 고려시대부터 전하는 악가(樂歌)를 개작(改作)·개산(改刪)하고 당악기의 일부를 고치는 한편, 《악학궤범(樂學軌範)》을 찬정(纂定)하는 등 국악 사상에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이와 같이 세종 때 이룩한 음악은 세조(世祖)가 이어받고, 성종은 다시 이를 정리 집대성(集大成)하여 기록함으로써 그 궤범을 후세에까지 남겼다. 일제강점기에도 국악은 조양구락부(朝陽俱樂部)·원각사(圓覺社)·협률사(協律社)·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 등을 통해 그 명맥이 이어져 왔다. 한편 음악가로는 3대 악성(三大樂聖)으로 꼽히는 왕산악(王山岳)·우륵(于勒)·박연(朴堧)을 비롯하여 근대의 5명창(名唱)인 김창환(金昌煥)·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정정렬(丁貞烈)·김창룡(金昌龍) 등이 있다. 8·15광복 후의 국악은 1951년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이 정식으로 발족함으로써 연구와 연주 활동의 태동(胎動)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학교에서의 국악 교육은 1954년에 개설된 덕성여자대학의 국악과가 처음이었으나 1956년에 폐과되었고, 현재는 서울대학 대학원·서울대학·한양대학·전주 비사벌국악고교·이화여자대학·추계예술대학·중앙대학·국악고교 등에서 국악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양악(洋樂)
한국에 양악이 처음 소개된 것은 이규경(李圭景: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의한 것으로, 이 책에는 불완전하나마 양악의 기보법과 지극히 간단한 화성(和聲)에 관한 것이 일부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양악이 직접적으로 들어온 것은 1895년 이후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와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등의 선교사에 의하여 전도(傳道)와 더불어 찬송가가 보급되면서부터이며, 특히 1900년(광무 4)에 창설된 시위연대군악대(侍衛聯隊軍樂隊)에 의하여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학교 교육에서 창가(唱歌:서양음악)를 가르친 것은 1909년 조양구락부에 서양악과(西洋樂科)를 두면서부터이다. 이것은 양악 전문교육의 효시(嚆矢)이며, 1910년에는 이화여자전문에 음악과를 둠으로써 양악 교육은 차차 본궤도에 올랐는데, 그 발전과정은 ① 섭취 시기(1884∼1945), ② 토착화 시기(1945∼62), ③ 현대화 시기(1962∼현재) 등의 3기로 나눌 수 있다.
현대화 시기를 1962년 이후로 보는 것은 《서울국제음악제》가 이 해에 처음 열렸기 때문이다. 제1·2기에는 김인식(金仁湜)·이상준(李尙俊)·김형준(金亨俊), 독일인 F.에케르트, 백우용(白禹鏞)·정사인(鄭士仁)·김영환(金永煥)·홍난파(洪蘭坡)·현제명(玄濟明) 등의 활약이 매우 컸다. 8·15광복 이후에는 고려교향악단·해군정훈음악대·서울교향악단·국립교향악단·국제오페라사(社)·국립오페라단·김자경(金慈璟) 오페라단은 물론, 이화여자대학·서울대학·연세대학·경희대학·한양대학 등의 음악대학을 통하여 양악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또한 작곡가 안익태(安益泰)·윤이상(尹伊桑),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鄭京和)·장영주(張永宙), 피아니스트 김영욱(金永旭)·백건우(白建宇), 지휘자 정명훈(鄭明勳), 소프라노 조수미(曺秀美), 첼리스트 장한나 등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세계적 음악가가 속출하였다.
2010년대에는 국제적으로 높은 명성을 지닌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한국인들의 수가 대폭 증가하였다. 대표적으로는 2011년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콩쿠르에서 준우승한 피아니스트 손열음, 2011년 비에냐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 2011년 퀸엘라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우승한 소프라노 홍혜란, 2014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우승한 소프라노 황수미,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2015년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문지영,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2015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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