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술

in #korealast year

1945년 8·15광복은 다른 모든 분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 현대미술의 새 장을 여는 기점이었다. 일본의 압제와 왜곡에 의하여 단절된 한국 전통미술의 창조적 계승과 세계미술에 대한 참가가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미·소 양국 군이 분할 점령한 3년간은 좌·우 세력의 사상적 대립 속에 놓여짐으로써 미술계도 1945년 10월의 《해방기념전》 이후 좌·우익으로 갈라져 치열한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시종하였다. 정부수립 전인 1947년 김인승(金仁承), 박영선(朴泳善), 이봉상(李鳳商), 장발(張勃) 등 온건한 사실파(寫實派)의 미술문화협회(美術文化協會)를 비롯하여 새로운 조형미술을 지향하는 신사실파(新寫實派)의 미술단체 등 여러 조직이 발족하였으나, 1949년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國展)가 창설되어 사실파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한편, 김환기(金煥基)·남관(南寬)·유영국(劉永國)·김영주(金永周) 등의 추상파 화가들은 별도의 그룹을 형성하였다. 1950년의 6·25전쟁으로 한때 미술계도 혼란에 빠졌지만, 이를 계기로 국제적인 현대미술과의 접촉이 활발해져 추상미술이 급속하게 보급되었으며, 또한 북한의 많은 미술가가 남하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각 유파의 단체전(團體展)·그룹전·개인전이 활발해지는가 하면 프랑스·미국 등지로 건너가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하는 것이 하나의 새로운 풍조처럼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각 대학의 미술교육도 궤도에 올라 더욱 활기를 띠고, 젊은 미술가들은 국전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적인 미술에 저항하면서 성장해 갔다. 이 시기의 주요 그룹전으로는 《모던아트전》, 《창작미술전》, 《신조형파전(新造形派展)》 등을 꼽을 수 있으며, 《현대작가초대전(조선일보사 주최)》은 하나의 종합적인 현대미술 추진체였다.

1960년대에 접어들자 추상미술이 화단적(畵壇的)으로도 단연 큰 비중을 차지하여 《현대작가초대전》을 비롯하여 《문화자유초대전(文化自由招待展)》, 《신인예술상미술전(新人藝術賞美術展)》, 《액추얼전(展)》 등이 성행하였다. 이 무렵, 프랑스에서 돌아온 화가에게서는 초현실주의 경향이 두드러졌고, 미국에서 돌아온 화가에게서는 추상표현주의 경향을 엿볼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동양적 환상이나 신화의 세계 또는 한국의 고미술(古美術)과 관련된 작품세계가 주조(主調)를 이루었다. 또한 국전이 대폭적인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1960년대 말부터는 사실(寫實)과 추상(抽象)의 두 경향으로 분리된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또한 이 무렵에 그룹 아트가 새로이 이입(移入), 유행하여 주목을 끌었다. 한국 화단의 서양화 부문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통하여 주목되는 작가로는 유영국·김영주·권옥연(權玉淵)·변종하(卞鍾夏)·박석호(朴錫浩)·전성우(全晟雨)·박서보(朴栖甫)·김서봉(金瑞鳳)·윤명로(尹明老) 등을 들 수 있으며, 이상범(李象範)·장우성(張遇聖)·노수현(盧壽鉉)·배염(裵廉) 등 전통적인 동양화를 지향한 작가와는 달리 이응노(李應魯)·김기창(金基昶)·서세옥(徐世鈺)·박노수(朴魯壽)·천경자(千鏡子) 등은 새로운 재료나 새로운 표현기법으로 동양화에 현대적인 조형(造形)을 받아들여 구미의 미술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 한국 미술의 특징은 모더니즘으로 요약된다. 당시 서구에서 유입된 네오다다이즘, 팝아트, 오브제, 설치미술, 해프닝 등 다양한 장르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展)》이라는 이름으로 젊은 세대의 작가들이 자신의 문제의식을 알리기 시작하였고, 4.19세대가 주축이 되어 1969년 창립한 A.G그룹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일, 오광수, 김인환 등이 새로운 미술의 풍토를 만들어나갔다. 이러한 운동 속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흐름은 '모노크롬 회화', '단색화(Dansaekhwa)'라는 용어로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사조였다. 권영우, 김기린, 박서보, 정창섭, 윤형근, 하종현, 정상화 등이 대표적인데, 또한 단색을 통해 한국적인 서구 미술을 보다 직접적으로 수용하면서도 한국적인 것을 조화하려는 시도를 수행하였다.

1980년대 들어 나타난 미술계의 한 현상은 민중미술의 대두였다. 1970년대부터 대두된 억압의 당사자이자 해방의 주체라는 '민중론'과 사회주의의 리얼리즘 미학에 기초를 둔 민중미술은 1970년대 말부터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정헌, 김경인, 손장섭, 주재환 등이 1979년 12월에 만들고 임옥상과 노원희 등이 참여한 그룹 '현실과 발언'을 시작으로, 김봉준이 1982년부터 주도한 '두렁' 그룹, 이종구가 1982년에 만든 '임술년' 그룹이 대표적이다. 이전 시기 모더니즘 미술의 대유행 속에 있었던 민중미술가들은 이내 추상미술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전통과 자연 등에 대한 고민 속에서 고유의 구상미술을 만들어 나갔다.

조각에서는 해방 직후부터 김경승(金景承)·김종영(金鍾暎)·윤효중(尹孝重)·김세중(金世中)·김영중(金泳仲) 등의 사실파가 중심이 되어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비롯한 역사적 인물, 각지 독립운동가들의 동상 제작과 각종 모뉴먼트 및 그 밖의 작품활동이 활발하였다. 또한 1950년대 후반에는 추상적 조형의 추구가 성행하였으며,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종래에 보지 못하던 철재(鐵材)에 의한 추상 조각이 제작되는가 하면 최기원(崔起源)·전상범(田相範)·최종태(崔鍾泰) 등의 조각가가 등장하였다. 건축은 6·25전쟁 후의 부흥기를 거쳐 1960년대부터는 프랑스에서 돌아온 김중업(金重業)을 비롯하여 김수근(金壽根) 등 개성이 뚜렷한 건축가에 의하여 현대건축이 이루어졌다. 한편, 각 분야에서 내셔널리즘 운동의 발흥과 더불어 《민속공예전》·《이조백자전》·《조선문방구》·《목공예전》·《조선민화전(朝鮮民畵展)》 등을 통하여 전통미(傳統美)를 재발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그 영향 아래서 개성 있는 젊은 추상미술가들이 속속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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