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6000배의 독성을 가진 가로수?
2017년 12월 27일 자 JTBC에서는 다음과 같은 뉴스가 방송되었습니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글에서 다룰 주요 내용은 청색으로 표시하였습니다.)
[앵커]
잎이 대나무를 닮아 협죽도라고 불리는 나무가 있습니다. 청산가리의 6천 배에 달하는 맹독성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아이들이 오가는 학교 앞 산책로에 열세 그루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구석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부산 해운대의 한 초등학교 앞 산책로입니다. 이렇게 방과 후에는 여기에서 아이들이 뛰노는데요. 그런데 독나무가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잎과 줄기에 독성이 청산가리의 6000배에 달하는 라신 성분이 든 협죽도입니다. 이 독 성분과 접촉하거나 마시면 구토와 현기증은 물론 심장마비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협죽도를 잘라 넣은 어항에 든 미꾸라지는 5분을 견디지 못하고 축 늘어집니다. 2년 전, 충북 제천에서 아버지와 여동생을 독살한 20대가 협죽도의 독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김기원/부산 해운대구 우동 (최초 신고자) : (지나시면서 걱정을 많이 하신 거네요?) 많이 했고 아이들도 많이 있고 나무가 위험하다는 걸 지나다니는 사람 중에 95%는 모를 겁니다.]
관할 구청은 20년 전 철길을 따라 협죽도를 심었는데 지난해 폐선을 산책로로 조성하면서 나무는 그대로 살려뒀습니다.
[부산 해운대구 관계자 : 겨울에도 잎이 있고 일부러 먹지 않는 이상은 전혀 피해가 없고요.]
부산에는 이 곳을 포함해 아직 300그루나 남아 있습니다. 취재가 시작되자 부산시와 해운대구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들어갔습니다.
어린이들의 통학로에 위험한 독을 가진 나무가 자라고 있으면 안될것 같다는, 선의에서 만들어진 뉴스 입니다. 하지만 몇가지 사실 관계를 바로 잡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
- 협죽도는 어떤 식물인가?
협죽도((夾竹桃, 영어명 oleander)는 아프리카 북부나 포르투갈 지역이 원산지인 것으로 추정되는 식물로서 온화한 기온을 가지고 있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입니다. 협죽도라는 이름 외에 유도화(柳桃花)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꽃과 잎이 아름답고 오랫동안 피며 곤충을 유혹하지 않아 관상용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 식물입니다. Nerium 속에 속하는 식물로서 Nerium oleander나 Nerium indicum이 널리 재배되고 있습니다. 기사에서는 모 초등학교 인근에서 발견된 것 처럼 나옵니다만, 사실 협죽도는 공원이나 큰 정원 등을 지나치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만한 식물입니다.
이미지 : 한글 위키피디아
- 협죽도의 독, 라신?
협죽도(oleander)가 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독의 이름은 식물의 이름을 따서 oleandrin 또는 oleandrigenin 이라고 불리웁니다. 잎과 꽃, 줄기를 포함하는 모든 부분에 이 독을 함유하고 있으며, 섭취할 경우 구토와 현기증, 복통, 설사를 동반하는 즉각적인 증상이 나타나고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미국 NIH의 자료에 따르면 oleanderin의 LD50 은 대략 300ug/kg 내외라고 합니다.
LD50 (Lethal Dose 50%) : 치사율 50%를 만들 수 있는 화학 물질의 양. 숫자가 작을수록 강한 독이며 투여 방법, 대상 동물, 그리고 독 물질의 화학적 상태에 따라 크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기준으로 삼기는 어려우나 대략적이고 상대적인 독성의 세기를 파악하는 기준으로 사용.
참고로 우리가 매일 먹는 소금 (NaCl, Sodium Chrolide)의 LD50은 12.4g/kg. 즉, 80kg의 몸무게를 가진 성인이 약 1kg의 소금을 한번에 먹으면 사망 확률이 50%.
JTBC 방송 화면 캡춰
기사에서는 "라신"이라는 독 이름을 언급하며 무려 청산가리의 6000배 독성을 지녔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영어 철자는 알 수 없어서 Rasin, Racin, Lacin, Lasin등을 라신과 유사한 발음이 나올 수 있는 모든 단어를 검색하여 보았으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이름을 지닌 독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비슷한 이름을 가진 아주 유명한 독이 있습니다. 바로 "리신 (Ricin)" 입니다. 피마자 (아주까리)의 씨앗에 포함되어 있는 독으로서 자연계에서 생산되는 물질들 중 두번째로 강력한 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Ricin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만 가장 대표적인 타입은 쥐 실험에서 LD50 = 0.24ug/kg을 기록하였습니다. (참고로 청산가리의 LD50는 1-3mg/kg)
피마자의 씨에 포함된 물질이지만, 정작 씨에서 짜 낸 기름에는 이 성분이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 독특한 물성으로 인하여 산업 및 공업용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즘 같이 미용 관련 용품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머리 단장하는 데에 이 기름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청산가리의 6000배의 독성을 지녔다면 아마도 리신 정도 되는 독을 이야기 하는 것일텐데, oleander에는 이런 리신과 같이 강력한 독성은 없습니다. 아마도 기자가 "리신"을 "라신"으로 잘못 알고서 기사화 한 것이 아닐까 의심 되는 대목입니다. (물론 저희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제보 주시면 정정하겠습니다.)
추가사항 (2017-12-29 17:10) : 김민수님의 페이스북 제보에 따르면 청산가리 6000배가 위키피디아보다 더 먼저 언급된 곳은 다산콜센터 추천생활정보 입니다. (2008년 12월 10일) 여전히 출처는 불분명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자료에서는 "라신"이 아닌 "리신"이라고 언급하였다는 점 입니다. JTBC 기자가 "리신"을 "라신"으로 착각하여 기사화 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 어이 없는 물고기 실험
방송화면 캡춰
왜 방송국들은 몸에 안좋은 무언가가 있다 하면 항상 애꿏은 물고기를 죽이는 실험을 하는걸까요.
"라신"(이라는 정체 불명)의 독의 세기를 확인하기 위하여 취재진이 준비한 실험은 안타깝게도 기본도 갖추지 못한 아무런 의미 없는 실험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어항을 나름 대조군으로 설정하여 비교하였는데, 제대로 된 대조군이 되기 위하여서는 다른 풀잎, 예를 들면,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독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인체에 위해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는 식물을 동량 넣어야 합니다. 협죽도 대신 인삼을 넣어도 미꾸라지는 죽었을지 모릅니다. 엄한 미꾸라지만 죽인 실험입니다.
이런 실험은 어떤 생명체가 죽어 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필요 이상의, 혹은 비과학적이고 과장된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불필요한 실험입니다. 기자의 주관적 의도를 강화하기 위한 시각적 충격 장치에 불과합니다.
- 2015년도 제천 독극물 살인 사건이 협죽도의 독으로?
2년 전인 2015년, 제천에서는 존속 살인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일명 제천 독극물 살인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에서 범인은 보험금 수령을 목표로 독극물을 이용하여 아버지와 여동생을 살해하였고, 아내는 살인 미수, 그리고 어머니의 추가 살인을 계획하고 있던, 전국을 충격에 몰아 넣은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2015년 당시 JTBC 본인들의 보도에 따르면 범인은 인터넷으로 구매한 청산염(cyanide)과 염화 제2수은 (Hg2Cl2 )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협죽도의 독인 oleander를 이용하였다는 조사 결과는 없었습니다. 이 사건 관련한 다른 언론 매체들의 기사를 검색해 보아도 협죽도의 독이 그 사건에 사용되었다는 보고는 없었습니다.
미꾸라지의 실험을 통한 시각적 자극에서 더 나아가, 이 독이 실제로 누군가를 독살하는데 사용되었다는 실제 예를 언급하면서 기사를 보는 이로 하여금 이것이 독자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 도대체 왜 이런 뉴스가..
저희는 이런 부정확한 내용들이 어떤 근거로 기사화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독의 이름도 틀렸고, 독의 세기는 그 출처를 알 수 없으며, 실험 방법도 완전히 잘못 되었고, 과거의 범죄에 사용되었다는 기록 마저도 JTBC가 보도하였던 내용과 다릅니다. 뉴스의 시작부터 끝까지 팩트라고는 해운대 모 초등학교 앞에 저 나무 몇그루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는 것 외에는 없는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저희는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에 기자의 주장과 거의 유사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위키피디아 항목 화면 캡춰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의 협죽도 항목 "독성"에 관한 설명에서 "청산가리의 6000배"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의 근거 자료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협죽도 사건 관련한 설명에서는 2015년도 가족 살인 사건에 협죽도의 독이 사용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료에 참고 문헌으로 링크가 된 [6]번 주석은 이 12월 27일의 이 JTBC 뉴스 기사 자신입니다.
위키피디아는 물론 매우 훌륭한 정보들의 집합체이고 전문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개념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머릿속에 잡아 나가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인 훌륭한 사이트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얻은 정보를 2차 가공하여 좀 더 신빙성 있는 매체, 예를 들면 TV 뉴스라는 방식을 통해 발표하고자 할 때에는 이중 삼중의 체크 및 원본 확인 절차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사를 만들기 전 식품이나 독성학, 그리고 원예학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관련 문헌 참고만 했어도 이러한 오류 투성이는 기사는 나오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고 수 많은 사람들의 불필요한 분노도 만들어 질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분노할 일에만 분노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세상입니다. 감정은 유한한 자원입니다.
하지만 JTBC 뉴스는 (아마도) 이 위키피디아의 항목을 근거로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보이며, 독의 대명사인 청산가리의 "6000배"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해당 나무를 심은 지자체나 공무원을 비난하는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비과학적이고 의미 없는 기사 하나 때문에 애꿏은 미꾸라지만 죽었고 사람들은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저 나무가 가로수로 적합한지 아닌지는 정책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할 일입니만 근거가 박약한 한 기사를 토대로 정책 결정이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정책 결정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대중이 이런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한 정책 집행자들은 수 많은 불필요한 반대 여론과 싸우거나, 혹은 여론에 밀려 제대로 된 정책을 집행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어린이들의 통학로 인근에 독성을 가진 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것은 그리 반가운 사실은 아닙니다. 텃밭이 많이 없어진 요즈음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아주까리(피마자)만 하더라도 예전에는 동네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풀 입니다. 자연계 독성 2위의 물질을 생성해 내는 식물을 주변에서 키우고 있던 것이죠. 봄철이 되면 산과 들을 아름다운 분홍으로 물들이는 철쭉도 꽃과 꿀에 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봄철 산나물의 대명사인 고사리도 제대로 삶지 않으면 안되는 꽤 강한 독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발암 물질도 포함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온에 두어서 싹이 조금 난 감자 또한 솔라닌이라는 독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결코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Dose의 개념이 없으면 독과 독이 아닌 것의 경계는 의외로 모호합니다.
특정 물질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도 문제이지만, 필요 이상의 공포도 문제입니다. JTBC라는 훌륭한 매체가 단순히 제보자의 주장과 기자의 주관에만 의존하지 않고 좀 더 깊이 있는 정보의 cross-check와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더라면 이보다 더 나은 기사가 나오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난번 JTBC의 비정상 회담에서 나온 모기 가려움증에 대한 잘못된 정보는 예능 프로그램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간판 프로그램인 뉴스룸에서 이런 꼭지를 보게 되는 것은 매우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