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선택, 그리고 유아인
‘오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착한 사람일 것 같다. 그러니까 여배우와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켜서 개런티 협상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게다.
(사진은 허핑턴포스트에서 가져왔다.)
(그의 언어로 직접 들어보자. 다음은 여성신문 5일전 기사의 일부다.
<“컴버배치는 최근 영국 잡지 ‘라디오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배우에게 남성과 동일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프로젝트는 거부해야 한다”며 “동등한 임금과 지위는 페미니즘의 핵심 의제”라고 말했다.
그는 “(제작사가 제시하는) 할당량을 잘 살펴본 후, 여성이 보수를 얼마나 받는지 물어봐라. 만약 여성이 남성과 같은 임금을 받지 못한다면 ‘난 그 배역을 맡지 않겠다’고 말하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자신의 인지도와 제작사를 활용해 여성 중심의 드라마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잠깐만 생각해봐도 이게 뭘 바꿀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자신이 ‘남주1’이 된다는 전제 하에 ‘여주1’과의 개런티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두 사람에게 지급될 수 있는 개런티의 총합을 반분하는 양상이 될 것이다.
여기에 대해 왜 회의적이냐면, 이게 일반회사 같으면 어느 정도 파급을 미칠 기준점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가 이렇게 한다 한들 이후 개런티 및 임금 배분에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을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배우만 하더라도 남녀성비 동수로 캐릭터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무슨 의원실처럼 직급 및 그 역할/대우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스태프들은 이런 시도가 가능하겠지만, 남주1 개런티와 여주1 개런티를 맞추는 행위가 스태프들과 무슨 상관인지는...
그러니까 그가 본인이 가는 현장 스태프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지급되는지를 살펴보겠다고 했다면 좀 더 말이 됐을텐데. 아마 성별 문제와는 별 상관없는 직무급 표준급제가 실현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건 그에게 직관적으로 와닿는 영역은 아니었을 테고.
그리고 생각해보니 헐리우드인데 직무급 표준급제가 아니라 ‘완전 능력별 별건 계약제’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런 경우엔 직무별 표준급제에 비해선 남녀임금 격차가 더 나게 된다. 서구권 책들을 살펴보면, 업주의 남녀차별적 인식이 없어도 그리 된다고 한다. 남성의 경우 상대적으로 더 긴 노동시간을 감내하거나, 연봉협상 과정에서 튕기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남성의 경우 ‘일 더 할테니까 더 줘요’라거나 ‘그거 받고는 일 못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여성보다 많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러는 이유가 본성인지 문화인지 어찌 고쳐야 하는지까지 들어가면 더 복잡해지니까 일단 여기까지 하자.
그런 이유 때문에, 실은 ‘완전 능력별 별건 계약제’에서 나오는 남녀격차조차도 단순히 남녀차별이라고 칭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 그럴진대 ‘남성배우에게 많은 개런티가 지불되는 상황’(정말로 그렇다면)이 과연 남녀차별을 함의한다는 단순한 결론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사진은 데일리메일 캡쳐라고 한다.)
배우라는 직업은 심지어 그의 성과가 퍼포먼스의 질적 측면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상당 부분 대중의 호감도에 의해 결정된다. 개런티 역시 그 부분을 반영한다. 이 경우 개런티에서 남녀격차가 난다면 (적어도 헐리우드 레벨에서는) 제작자에게 항의할 게 아니라 대중의 기호가 왜 그런지 문을 두드려야 할 지경이 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최근 출연작인 <인피니트 워>에선... 스칼렛 요한슨이 베네딕트 컴버배치보다 적은 장면을 등장하고도 더 많은 개런티를 받아 갔다. 한화로 환산하면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57억을 받아갈 때 스칼렛 요한슨은 107억을 받아갔다고 한다.
그건 제작자나 스칼렛 요한슨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가령 스칼렛 요한슨을 주연을 하는 로맨스 영화를 찍는다고 할 때도 그쯤 개런티를 기본으로 줄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실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제작자 입장에선, 그런 영화에선 ‘스칼렛 요한슨’을 섭외해오면 투자자들을 끌어와서 만들 수 있는 ‘버젯’이 달라질 것이다. 보통 개런티를 많이 받는 배우들은 해당 시나리오에 그가 붙으면 ‘버젯’이 상승하기 때문에 제작자가 그쯤 지불하고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건 심지어 헐리우드보다 훨씬 영세해서 소위 말하는 ‘알탕연대’가 마구마구 작동할 것 같은 한국의 실정에서조차 그렇다.
다시 돌아오자면,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착한 사람이다. 그가 스칼렛 요한슨만 못한 출연료에 대해 <인피니트 워> 제작진에 항의하려고 교묘하게 저런 주장을 하지 않은 이상엔 그렇다.
그러나 그가 내세운 대책이란 게 무의미하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실제의 업무가 진행되는 방식을 고려한다면 그렇다.
(배우 유아인의 출연작 <버닝> 포스터)
그렇다면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칭송하면서 한국의 연예인들, 가령 유아인을 비판하는 이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런 이들이 어제 오늘 넷페미니즘 조류에 휩쓸린 이들이 아니라 강단에서 페미니스트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는 이란 사실은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할까?
그냥 화만 낼게 아니라 뭔가 바꾸려면, 일이 되게 하려면 그렇게 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진행해야 할 게 아닌가. 운동한다는 사람들, 그 문제를 오래 고민했다는 사람들이 그런 거 없이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칭찬하고 유아인을 비판하고 있으니 뭐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그래, 유아인은 ‘대구 한남’이라 그렇다고 치고, 아이유가 계속 욕먹는 상황 역시 그냥 방관하고 말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