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원 건
진실 공방에 끼어들어 추측 하나를 보태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일반론만 말한다.
논점이 네 개다
첫째, 가난한 젊은 여성에게 섹슈얼리티 판매를 권장하는 문화
둘째, 촬영과정에서 동의받지 않은 추행이 있었느냐 문제
셋째, 촬영 전체가 강압이었다고 볼 수 있느냐의 문제
넷째, 덧붙여 유출 문제
(기본적으로는 해당 스튜디오의 실장이 과거 비슷한 건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하니 뭔가 문제는 있었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이 말하는 그대로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문제가 터져나왔을 때 첫째 문제까지 소급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물론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그 문제와 성폭행 진실공방은 별개다. 저 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논의를 회피한 채로 스튜디오가 욕먹는 것을 방조한다면 그것도 사악한 일이다.
스튜디오 입장에서 위 논점들에 접근하면 첫째 문제만 있었고 둘째와 셋째는 사실무근이며 넷째는 자신들과 별개의 문제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양예원의 주장을 셋째로 이해하고 카카오톡과 계약서가 그에 대한 반박이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내 생각엔 아마도 진실공방은 두 번째 영역 즈음에서 벌어질 것 같고, 쉬이 결론내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카카오톡 내용 보도한 기사를 이차가해라고 경찰 수사관이 비난한 것은 경찰의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징조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카카오톡 재구성 기사는 믿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스튜디오가 언론 플레이하는 걸 비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물론 일차가해가 분명하다면 이차가해가 맞다. 하지만 논쟁은 애초 '나는 가해자가 아니다. 그 근거는...'이란 영역에서 발생한다.
만에 하나 그가 믿는 바가 옳다면 일차가해가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최소한의 해명 역시 이차가해라 비난하며 강제로 입을 틀어막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경우에 첫째 논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래봐야 그들에게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정말 환장할 수준의 논점일탈이 된다.
내 생각은, 이차가해란 개념이 의미가 있지만 대중적 여론재판이 벌어진 상황에선 그걸 막을 도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피해를 줄이려면 대중여론 진실공방 상황에서 대중이 양예원이건 스튜디오건 어느 한쪽 말만 믿고 상대편에게 돌을 던지는 습관을 줄여나가는 방향이 옳다.
그래서 이차가해 댓글에 "저쪽은 유튜브에서 질질 짜서 오백만이 봤는데 그럼 여긴 가만히 있으란 말이냐" 류 얘기들이 달린 것도... 단지 '빻은 소리'만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그런 부분이 있다.
미투, 혹은 폭로를 말릴 수는 없다. 실존적 결단의 문제다. 하지만 폭로의 후과는 생각해야 한다. 만일 폭로하는 피해주장자를 전적으로 보호하려 한다면 무고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이차가해를 피하려고 한다면 폭로 이외 다른 절차적 해법을 추구해야 한다. 경찰, 검찰, 법원이 노력하여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전적인 합의와 전적인 폭력 사이 애매한 영역들에 대한 꾸준한 발화가 필요하다. 애매한 상황들이 있는데 그렇게 말하면 이해받지 못하니 여성들은 피해를 호소할 때 좀 더 사태를 극적으로 기술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남성들은 그런 상황에서 무고(흔히 '꽃뱀'이란 단어로 표현하지만)임이 명백하다고 길길이 뛴다.
사인 미스, 묵시적 동의, 혹은 사후승인 같은 애매한 상황에 대한 서술과 비평이 가능해야 그 간극이 줄어들 것이다. 그것들을 모두 강간이라 부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그것들을 모두 합의라고 부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