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의 문제점

in #human5 years ago

윤석천 경제펼론가는 미국의 고용 시장을 봄날이라고 표현합니다. 2010년 10%이던 미국의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져, 2017년 10월부터 4.1%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 수와 현재 비어 있는 일자리 수가 거의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일자리를 희망하는 사람은 모두 일할 수 있는 '완전 고용' 상태라고 합니다.

그러나, 2030년 미국에서만 4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완전고용'이란 경제학 용어는 자칫 심각한 오해를 부를 수 있습니다. 좋은 일자리는 늘지 않고, 기술 발전과 자동화에 따라 기계가 사람일을 대체하는 현상이 더 빨라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구직자가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이거나 새로운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일자리를 언제든 얻을 수 있지만 별다른 기술이 없는 노년층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게 됩니다.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반드시 '좋은 일자리'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완전고용'이란 조건이 붙는 개념입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보수를 받으면서 가치를 느낄 생산적 근로가 이루어진다면 좋은 일자리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 고용 시장이 과거 침체기보다 개선된 것은 틀림없지만, 상황이 완전히 좋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시선이 많습니다. 대부분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는 여전히 제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내에는 많은 자문위원회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인 지역자문위원회(Community Advisory Council)의 역할은 지역사회와 중산층 이하 소비자들의 이익을 대변해 이들의 경제적 상황을 연준 이사회에 자문하는 것입니다. 이 위원회가 최근 '임금이 2018년의 열쇠라면'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의 핵심은 연준이 은행과 정치인의 목소리만 귀 기울 게 아니라 임금 소득자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실업률은 하락했지만 좋은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다. 2017년 중위임금을 기준으로 할 때 미국 일자리 넷 가운데 하나는 저임금 직업이며, 이는 네 가구 가운데 한 가구는 빈곤 경계선 아래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 미국은 실업률 하락을 근거로 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려 왔습니다. 완전고용이란 신화만을 근거로 금리를 인상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단순 실업률 지표가 금리 조절의 명분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노동시장의 대전환

경제가 변화하고 있으며, 신 경제는 기존 고용 구조를 전면적으로 파괴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거엔 없던 새로운 기회와 위협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도 그 하나입니다.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사람과 임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형태는 과거엔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우버나 리프트와 같은 회사에 소속된 운전사가 대표적인 케이스로 이런 일자리는 분명 우리에게 추가 수입을 안겨줍니다. 시간 날 때 짬짬이 일해 소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정된 일자리가 있는 사람에게는 분명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상시적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일자리를 본업으로 삼는 것은 위험하며, 실제 수입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많은 돈을 벌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에 따르면, 우버나 리프트에 속한 운전사의 중 위임금은 세전으로 시간당 3.36달러(약 3600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절반 정도는 그 이하를 법니다. 전체의 74%가 최저임금보다 적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신 경제가 모두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닙니다. 오히려 노동 유연성을 극대화해 직업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2018년 2월 경영컨설팅 기업인 베인앤드컴퍼니가 발행한 '노동2030: 인구, 자동화, 불평등의 충돌'이란 보고서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의 노동시장의 변화 전망은 자동화로 2030년까지 미국 일자리의 25%가 없어질 것이며, 저임금 직종의 일자리가 가장 빨리 사라지고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현재 고용시장 구조로 보면 재앙에 가깝습니다. 2030년 까지는 불과 10여 년이 남았습니다. 이는 오늘을 사는 대부분이 겪게 될 현실입니다.

인간이 기계로 대체되면 생산성이 늘어나 결국 성장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만 주로 기술 낙관론 자들이 이런 전망을 내놓습니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발전하는 기술로 기계는 더 좋고 싸게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로 인해 생산성은 늘어날 수 있습니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계는 훈련되고 경험이 풍부한 인간을 대체해, 인지 작업을 수행하면서 생산성을 한층 높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추세는 기업에 호재가 될 수 있습니다. 기계에 투자하고 종업원을 해고하면 더 높은 수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늘고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효과는 단기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제품을 소비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해고된 노동자는 과거보다 소비를 줄일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가격이 낮아지면서 생기는 신규 수요는 새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이 보고서에서는 그 주장에 강하게 반박합니다. 더 많은 신규 수요가 생겨나더라도 미국에서만 약 4천만 개의 일자리가 영구히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신규 수요 발생으로 늘어나는 일자리는 사라지는 일자리의 겨우 18%만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노동잉여 시대의 도래

앞으로 10~12년 안에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은 노동잉여 시대로 접어들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는 약 1억6천만 명의 노동자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4천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을 것입니다. 아무리 낙관적인 가정을 해본들 상황은 반전되지 않습니다. 새 일자리가 생겨나더라도 그것이 사라진 일자리를 대체할 수 없고, 그보다 좋을 확률도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동자 임금은 기계로 대체되기 전부터 이미 하락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몫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 비중은 1951년 64%에서 2016년 57%로 하락했습니다. 점점 강화되는 자동화 추세는 이를 더욱 악화할 것입니다. 신기술로 자동화 비용이 떨어지고, 기계와 경쟁해야 하는 인간의 임금도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고숙련 전문가와 기업가 들은 지금보다 많은 돈을 벌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유쾌한 상황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간극만 더욱 벌어질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 닥칠 미래가 과거와는 다른 문제에 봉착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가령 국가의 개입과 같은 조처가 없다면 소비 성장은 둔화될 것이 분명합니다. 다수 대중은 소비 여력을 잃고 극소수 계층만이 소비를 늘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소비 감소가 불가피합니다. 긍정적으로 본다고 해도, 소비 둔화로 완만한 성장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악은 무엇일까요?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 분열로 이어지고, 시장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국가의 간섭이 대중의 편이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치인은 다수의 표를 의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확률이 낮지만, 정치인이 소수의 편에 설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 역시 기득권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침체는 지금보다 훨씬 빈번해지고, 빈곤은 선진국에서도 심각한 화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경기 조절을 책임지는 중앙은행은 과거의 잣대에 매몰돼 통화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실업률은 더 이상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작동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별다른 조처없이 노동잉여 시대로 진입한다면, 다시 말해 통화 정책의 근간을 바꾸지 않은 상태로 고실업 시대에 들어선다면, 중앙은행은 어떤 수단으로 경기를 조절할 수 있을까요?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동원한다 해도 실업 문제를 치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고용 시장의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자동화로 생산성이 증가해 실업 문제가 묻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상황이 되면 빚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 대중의 삶은 더욱 나락으로 빠질지 모릅니다.

중앙은행과 정부는 노동잉여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현재의 도구만으론 불충분합니다. 무엇보다 자동화 시대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다가오는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설령 완전고용 상태라 하더라도 고용의 질을 생각해 통화정책을 조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업률이 아닌 다른 지표를 이용해 통화정책을 고민해야 합니다. 대량실업 시대에 대비한 정책을 선제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로봇세가 됐든 부유세가 됐든, 극소수에게 쏠린 부를 대중에게 재분배하는 제도를 준비해야 합니다. 노동잉여 시대는 곧 닥칠 우리 세대의 미래입니다. 피할 수도 없습니다. 준비를 게을리한다면 혼란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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