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booksteem]거시적 시선으로 인간 이해하기 8/26 유럽이 앞서간 이유
제식의 중심지였다. 새로운 종교하에서 새로운 예술 양식이 발달했다. 특히 암면(巖面) 조각이 성행하면서 여성의 성기, 조인(鳥人), 새 등이 오롱고의 기념물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 쓰러진 마오이와 푸카오에 조 각되었다. 매년 오롱고에서 제식이 거행될 때마다 남자들은 이스터 섬 에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앞바다의 작은 섬들까지 상어들과 싸우면 서 건너가, 검은제비갈매기가 그 해에 낳은 첫 알을 구해서 고스란히 이스터 섬까지 가져오는 경기를 벌였다. 그리고 승리자에게는 '올해의 조인' 이란 명예가 주어졌고 그는 다음 한 해 동안 그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오롱고에서 마지막 제식은 1867년에 있었다. 가톨릭 선교사들 의 눈에 띄었던 탓일까? 섬사람들의 손에 파괴되지 않은 이스터 섬의 고유한 전통들은 외부 세계의 압력으로 인해 파괴되는 운명을 맞았다. 유럽인들과 해석 유럽인들이 이스터 섬 사람들에게 안겨준 슬픈 이야기는 짤막하게 요약될 수 있다. 쿡 선장이 1774년 잠시 머문 후부터 유럽인들의 발길 이 끊이지 않았다. 하와이, 피지 등 태평양의 많은 섬들에 대한 기록에 서 보듯이 그들은 유럽의 질병들까지 이스터 섬에 안겨주었고, 그런 질 병들에 대해 면역성이 전혀 없던 섬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구체적으로 언급된 최초의 전염병은 1836년경의 천연두였다. 또한 태 평양 일대의 다른 섬들에서도 그랬듯이, 섬사람들을 노예로 납치하는 만행은 이스터 섬에서 1805년에 처음 자행되었고, 1862~1863년에 절 정을 이루었다. 그 해는 이스터 섬의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였다. 페루인들이 20여 척의 선박을 몰고 와 1,500명(살아남은 사람의 절반)을 강제로 납치해서, 페루의 조분석(烏糞石, guano) 채취장이나 다른 노역 장에서 일할 노예로 팔아넘겼다. 이때 납치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노역 중에 죽었다. 국제 사회의 압력 아래 페루 정부는 10여 명의 생존자를 이스터 섬으로 송환시켰지만 그들이 섬에 다시 한 번 천연두의 비극을 2. 이스터 섬에 내린 땅거미 159
상에서 유일한 인간이라 믿었을 사람들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반응이었 다. 그러나 1722년 이전에 유럽인들이 이스터 섬에 상륙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떤 식으로 삼림을 파괴했는지도 학 실하지 않다. 마젤란이 1521년 태평양을 최초로 횡단하기 전부터 이스 터 섬에서 인간으로 인한 파괴가 자행되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찾아 진다. 즉 1300년 이전에 모든 육지새가 멸종했고, 돌고래와 참치가 식 단에서 사라졌으며, 플렌리가 확인해주었듯이 퇴적물에서 나무의 화분 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한 포이케 반도의 숲은 1400년경에 완전히 파괴되었고, 야자나무 열매는 1500년 이후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번째 반론은 삼림 파괴가 가뭄이나 엘리뇨 등과 같은 기후 변화에 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아나사지(제4장), 마야(제5장), 노르 웨이령 그린란드(제7~8장)에서 기후 변화가 인간으로 인한 환경 훼손 을 더욱 가속화시킨다는 사실을 살펴보겠지만 기후 변화가 이스터 섬 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면 이런 반론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스 터 섬과 관련된 기간인 900년부터 1700년까지의 기후 변화에 대한 정 보는 거의 없는 편이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기후가 더 건조해고 폭우가 잦아지면서 삼림의 생존에 불리했는지, 거꾸로 더 습 해지고 폭우가 줄어들면서 삼림의 생존에 더 유리하게 변했는지 판단 할 자료가 부족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기후 변화만으로 삼림이 파괴 되고 새가 멸종되었다고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한 듯하다. 테레 바카 화산의 용암류(lava flow)에 문힌 야자나무 줄기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거대한 야자나무는 이스터 섬에서 수십만 년 전부터 살았고, 플 렌리는 퇴적물을 분석해서 야자나무, 나무 데이지, 토로미로 이외에 대 여섯 종의 수종이 이스터 섬에서 3만 8,000~21만 년 전부터 존재한 것 을 밝혀냈다. 따라서 이스터 섬의 식물들은 수많은 가뭄과 엘리뇨를 끗 끗하게 이겨냈기 때문에, 인간이 그 섬에 정착한 이후에 우연의 일치인 양 이런 토종 나무들이 가뭄과 엘리뇨를 견디지 못하고 한꺼번에 사라 162 문명의 붕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