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비트코인, 그리고 달러의 지정학


이미지 출처 : 네이버 글감 검색

저자 : 오태민

오태버스 주식회사 대표이자 건국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블록체인학과 겸임교수.

깊은 사유와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비트코인을 해석하고 알리고 있다.

이전 저서로는 <여백의 질서>(1993), <마중물 논술>(2007), <인문학적 상상력>(2012), <경제학적 상상력>(2013), <비트코인은 강했다>(2014), <스마트 콘트랙: 신뢰혁명>(2018),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2020), <메타버스와 돈의 미래>(2022) 가 있다.




"미중 패권전쟁과 변화하는 세계질서의 규칙"

2차 세계대전, 브레턴우즈 시스템, 미중갈등 등 '미래를 지배할 돈'을 이해하는 필수 지정학




이 책은 포스트 1945 체제 아래에서 실제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을 정리했고, 세계 체제를 운영하는 어떤 나라와 그 나라의 통화가 기축통화로 사용되는 현상, 그리고 그 체제의 유지비용을 추적한다.

아울러 기축통화의 장점과 단점, 중립적 질서의 한계, 국채와 이자율에 대해 다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냉전 종식과 관련된 지정학적 사건 및 내막 등,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내용들을 깊이 있게 알려준다.

하지만 심리적 여유가 없어서일까.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고 이를 사유하면 좋은 걸 알고 있지만, 좀체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흥미를 갖기 어렵다.




국경 간 자유로운 돈의 이동에 대한 필요와 욕구로 인해 발생된, 유로도 아니고 달러도 아닌, '유로달러'라는 '역외금융'에 대한 설명은 처음 접했다.

'역외금융'에 대한 내용을 읽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경 간 이동이 자유로운 암호화폐로까지 생각이 미친다.




지금까지 출간된 저자의 암호화폐 관련 서적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이번 책은 암호화폐에 대한 것을 주로 다루기 보다는, 경제/금융 관련 학술적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러면서 군데 군데 암호화폐 관련된 내용을 끼워넣는 식으로 해서 현대의 금융 문제를 암호화폐가 풀어낼 수도 있음을 툭 치듯 슬쩍 흘려준다. 넛지 방식이라고 해야할까.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기록해 둔 본문의 문장들 중 일부



일정량의 지식을 채워 넣기 전에 '도덕적으로 판단하려 드는 것', '선과 악을 구별하려는 것', '내 편의 이야기와 적의 이야기를 가려내려는 것'들로는 기껏해야 음모론을 지어내고, 음모론을 믿고, 음모론적 냉소로 '세상을 비관하면서도 세상에 빌붙어 사는 것' 이상의 성숙은 기대하기 어렵다.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는 국가야말로 국제질서에서 중요한 행위자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행위자였다.

그리고 국가들 사이의 질서란 언제나 이성보다는 폭력의 우열에 따라 변화되기 마련이었다.




제국주의 시절, 육지는 크고 작은 20여개의 세력들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러나 거대한 바다, 즉 대양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대양은 속성상 하나로 연결된 평평한 대륙과도 같아서 한 명의 주인이 모두 가져야만 평화로운 곳이다.

대양을 하나의 바다로 묶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 영국이라면 완성한 것은 미국이다.

주인 없던 바다가 하나의 세력에 속하면서 육지를 연결하고 육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생산성 높고 평화로운 플랫폼이 되었다.




지정학의 시대가 도래하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던 고리들이 끊어질 것이다.

전 세계의 자원과 상품이 오가던 '지구 바다'가 더 이상 '이음새 없는 seamless' 플랫폼으로 작동하지 않으므로 힘과 비용을 쏟아 부어야만 상품을 옮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미래로 부를 보내는 메커니즘이 전반적으로 의심받는 것을 의미하며, 구조적으로 저금리가 끝난다는 것을 뜻한다.




중국의 지정학적 행보는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대항하는 세력의 리더를 자임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 서구적 가치 체계 전반에 대해 대항하는 수준이다.

가장 극명한 것이 바로 '코비드19'이다.

경제적 피해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약을 넘어 전 세계에서 실제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사과는 커녕 원인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는 이전의 세계와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도 드물다.

더구나 시진핑 주석은 공산당 당 독재를 넘어서 1인 통치의 길로 중국을 '퇴보'시켰다.




시대의 지배적 가치는 그 시대를 지탱하는 질서의 산물이다.

오늘날 질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지정학의 토대 위에 서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의 항공모함이 현대인들이 믿는 가치를 보호하는 셈이다.

<중략>

미국의 항공모함에 의지하면서도, 자신들이 올바르다고 여기는 가치라면 당연히 자연스럽게 현실이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 여타 산업국가 시민들의 세계관은 순진 혹은 무지의 산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국제정치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한반도의 현상유지에 미국이 이해관계를 갖는 이유를 일본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남한에서 미군의 존재는 일본에 더 많은 전략물자를 집중하지 않고도 (소련과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일본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중략)

주한미군이 지난 80년 동안 일본을 보호하는 힘이었다면, 앞으로는 일본과 중국의 결합을 견제하는 힘으로서 미국에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한다지만 잘 생각해보면 중국의 팽창은 러시아, 인도, 한국, 대만, 일본의 문제이지 당장 미국의 코앞에 닥친 문제가 아니다.

그런 반면에 미국이 인도와 한국, 일본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줌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로부터 그에 걸맞은 존경과 경제적 대가를 얻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런 관점이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일반 국민의 세계 인식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트럼프의 등장을 무시하거나 축소했던 미국 주류 언론과 정치, 관료 엘리트들이 놓쳤던 점이다.




미국이 없는 유라시아(유럽+아시아)를 상상하는 것이 단지 지적 유희를 위한 사고실험이 아니라, 국제정치에서 구조화된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경보가 울려퍼진 지도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미국이 달러 CBDC를 만들어 발행하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모든 암호화폐는 그날부터 내리막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일단 비트코인과 CBDC의 차이를 정확히 모른다.

(중략)

그러나 CBDC가 갖춰진다면 비트코인을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가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

암호화폐 진영은 암호화폐가 메타버스 세계에서 디지털 화폐로 통용될 거라고 주장해왔다.

미국 정부의 공신력을 등에 업은 데다 디지털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까지 더해지면 달러 CBDC가 WEB3.0 시대에 메타버스를 지배하는 통화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달러 CBDC를 과대평가하는 이들일수록 포스트 1945체제, 즉 현행 세계통화 금융시스템 질서가 국민국가들의 주권에 기초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다.

그래서 이들은 달러 CBDC가 발행되었을 때 발생할 혼란, 즉 달러 CBDC가 포스트 1945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을 화폐나 코드로 보기 이전에 하나의 규칙으로 볼 수도 있다.

비트코인은 인류가 최초로 만들어낸 중립적인 규칙이다.

만약 권력이 고칠 수 없는 방식으로 계약이나 장부를 기록한다면 어떻게 될까?

절대권력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재산권을 만들 수 있고 그 재산권으로 누구와도 거래를 할 수 있다.

즉, 고칠 수 없는 기록은 오랫동안 인류가 꿈꿔왔던 것이다.

(중략)

아무도 고치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도 고치지 못했다는 것을 믿게 만드는 것이다.




질서의 유지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런데 외부효과는 '누가 비용을 분담하는가'라는 집합행동의 문제를 야기한다.

질서를 유지하는 비용을 부담하는 이들만이 혜택을 입는 것은 아니어서, 질서와 평화 때문에 가능해진 여러 활동의 혜택(평화 배당)이 모두에게 돌아가지만 질서를 유지하는 부담은 1/n이 아니다.

제국주의 이후의 미국 주도 세계체제에 밀어닥친 문제도 바로 평화배당과 질서분담의 불균형이었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지키고 국제법을 수호하는 세계체제의 실질적인 수호자다.

만약 많은 나라들이 달러를 준비자산으로 삼는 것이 세계체제에 대한 일종의 비용분담, 즉 미국이 글로벌 공공재를 생산하도록 하는 세금이라면, 비트코인이나 암호화폐가 준비자산이 되어 기축통화로서 달러를 대체할 경우 미국이 다른 나라에 세계 질서라는 공공재의 부담을 전가할 수단이 하나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러라는 간접적인 방식 대신 안보분담금이나 질서유지 기부금 혹은 노골적으로 세금을 걷는 방법도 있다.

이런 직접적인 방법은 현재의 달러시스템보다 훨씬 더 많은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미국에 대한 외국의 반감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고립주의를 강화하게 될 것이고, 이는 세계체제라는 공공재를 생산하고 유지하는 일에서 미국이 이탈하는 움직임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상대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의도가 아닌 '힘'이다.

강대국들의 충돌은 왜 불가피할까?

그 이유는 서로의 의도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공격적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에 따르면 상대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에 강대국들은 서로를 두려워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객관적인 실력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따라서 강대국들은 상대의 의도가 아니라 실력을 의식해 전략을 세워야 한다.




미국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발을 뺀다면 한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거라는 피터 자이한의 예측과 달리, 한국이 미국의 중요한 군사 지정학적 파트너로 오랫동안 남아있을 가능성도 있다.

(중략)

한국은 지정학적 기회를 타고났다.

바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륙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두 강대국에 모두 닿을 수 있는 가까운 바다를 끼고 있다.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의 내해에 모두 접하고 있으며 미국은 해양 세력이기 때문에 영토가 아니라 바다를 중심으로 지도를 보는 데 익숙하다.

(중략)

한반도는 인류 역사상 가장 현대적인 대양 세력이기도 한 미국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두 개의 근해, 각각 만만치 않은 나라의 이름이 붙은 바다들의 한가운데에 있다.

대양 세력을 경영하는 냉정한 현실주의 전략가들 입장에서 한반도의 군사기지는 스스로 양보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거점이다.




다른 블록체인 코인들도 비트코인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비트코인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비트코인은 미국이나 중국 정부가 함부로 금지하기 어려울 만큼 탈중앙화되어 있으며 법정에 불러 세울 타깃이 없다.

비트코인을 제외한 다른 코인들은 탈중앙화가 충분하지 않거나, 법정에 세우거나 의회 청문회로 불러들일 주체가 존재한다.

거의 대부분의 코인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므로 정부들이 독하게 결심하는 순간 코인 생태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세계체제가 위기에 빠질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간절하게 보편적 화폐를 갈구할 것이다.

세계체제의 위기란 국민국가 간의 상호작용이 절차와 규율을 따라 평화롭게 진행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금을 물고 사생활 정보를 노출하더라도 절차를 밟기만 하면 국외로 재산을 이전할 수 있는 체제가 이전에도 작동하긴 했다.

그러나 모든 국가에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세계체제로부터 거리를 둔 국가에서는 비용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권리와 자산에 보편성을 부여할 수 없었다.




각국 정부에 의해 비트코인이 금지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회의론자들은 지정학적으로는 이상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국민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국제통화금융 관리기구가 권위를 가지고 작동하면서 빚을 갚지 않고 파산한 국가를 도와줄 것이고, 그 덕분에 회복한 국가는 빚을 갚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국제질서가 무한동력을 지녀서 시동만 걸면 계속 작동한다고 믿는 셈이다.

앞으로 평화로운 협력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회의론자들에게 물어보면, 사실은 이런 문제를 고민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지적 빈곤만 들킬 뿐이다.

그들은 국제체제의 근간이 제국주의거나 제국주의를 닮을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사실을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의 상상력은 평화와 번영이 모든 국가에, 모든 이들에게 이롭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다는 수준에서 맴돌 뿐이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바람직한 것이 곧 가능한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은 가격이 불안정하고 거래 수수료가 비싸다는 것 등을 포함해 현실적인 단점을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보편적인 가치 전환 수단이다.

전기에너지를 화폐와 비슷한 가치물로 바꿔주기도 하고, 가치물을 공간 너머로 빠르게 보내주기도 하며, 때로는 미래로 가치를 이전해주기도 한다.

비트코인은 보편성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있으며, 보편질서에 목마른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준비물이다.




'지정학의 시대'란 솔직히 말하면 지리 때문에 세계의 통합이 깨지는 시대를 가리키지만, 대중이 너무 놀랄까봐 지식인들이 엄선한 어휘다.

우리가 직면한 시대는 무질서가 보편질서를 압도하는 어지러운 세상이다.

자기가 사는 곳에 지정학적 위기가 닥치면 많은 가장이 가족들만이라도 국경을 넘어 안전한 나라에 머물기를 바랄 것이다.

이때 가치물을 가지고 국경을 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클 것이 분명하다.

무거운 금괴와 종이달러, 비트코인 중에서 어떤 가치물이 국경을 넘는 동안 보안검색대나 국경수비대 혹은 헐벗은 난민들로부터 가족들의 자산을 지켜줄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있는 가장이라면, 이 세 가지 가치물 중 무엇이 지정학의 시대에 가장 보편적인 가치물인지 선택하라는 시험문제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202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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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미국이나 중국 정부가 함부로 금지하기 어려울 만큼 탈중앙화되어 있으며 법정에 불러 세울 타깃이 없다.

정말... 비트코인은 탈중앙화가 잘 되면 좋겠네요.

정리해주신 글 잘 보았습니다~ ^^

앞으로 비트코인 채굴도, 미국에 위치한 대규모 채굴 기업이 독식하기 위한 방향으로 움직일 것 같지만, 비트코인만큼 탈 중앙화가 되어 있는 블록체인은 앞으로도 나타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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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정리를 잘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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