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1)

... 화밀과 꽃가루를 먹고 모으는 꿀벌과는 달리 말벌은 포식성이다. 나방과 나비의 애벌레를 비롯해 매미, 잠자리, 꿀벌 심지어 다른 종류의 말벌까지 닥치는 대로 공격한다. 그런데 말벌 성충은 자신이 잡은 먹이의 고깃덩어리를 자기가 먹지는 않는다.

대신 강한 턱으로 먹이를 짓이겨 동그란 고기 경단을 만들어 벌집 안에 있는 애벌레한테 먹인다. 정작 말벌 성체는 수액이나 과일즙, 화밀 같은 식물성 영양분을 섭취하며 살아간다...

                                                                                    <네이버 백과사전> 

“모두 앉았나요? 어제 배운 노래 <송송송>을 불러 봅시다.”

공개수업 날이라 선생님은 평소 안 하던 것들을 하셨다. 부스스하던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헤어 오일을 발라 윤이 나고 차분하다. 남색 투피스에 금색 벨트는 처음 보는 것이고 손목엔 시계가 빛났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흥미롭다.

오늘따라 교실이 아주 깨끗했다. 칠판엔 학습 목표가 가즈런한 글씨로 써 있었다.

“선생님, 학습 목표가 뭐에요?”

처음 붙인 ‘학습목표' 라는 부착물에 아이는 정숙에게 묻는다.

‘오늘만큼은..’

정숙은 숨을 고르고 친절하게 답한다.

10분전 학교보안관이 교문을 열어주자 엄마들은 벚꽃이 잔뜩 핀 등교길로 양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정숙은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급히 내려둔 ppt 화면을 띄우고 스피커 볼륨을 조절했다. 순식간에 교실 뒷쪽은 학부모들로 가득 찼다. 아이들은 문득 뒤를 돌아보고 “우아..” 탄성을 내뱉았다. 곧

교실에서 하는 공개수업은 1학년 아이들에게 처음이다. 뒤에 서 있는 엄마들은 은은한 색의 립스틱을 바르고 로고가 박힌 가방과 살랑거리는 꽃무늬 스커트를 매치하고 트렌치 코트를 입었다. 삼 주 전부터 계획한 차림이지만 그러기에 옷차림은 엇비슷했다. 교실엔 향긋하고 고급스러운 냄새가 퍼졌다. 아침에 밥 차려준 우리 엄마가 아닌 것 같다.

수업은 매끄럽게 준비한대로 흘러갔다. 정숙은 아이들의 발표를 진지하게 듣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엄마, 아빠들은 아이의 의외의 답에 오..하고 감탄어린 숨을 쉬고 귀여워서 웃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라인을 길게 뽑아 그린 눈길은 빠짐없이 자신의 아이만을 향해 있었다.

“근데 선생님, 말 조심하셔야 할 것 같아요!”

응? 이건 뭐지? 하고 정숙은 고개를 돌렸다.

맨 앞자리에 앉은 개구장이 성연이다. 성연이는 동글한 얼굴에 키가 작지만 단단한 체격이다.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한데 늘 아는 것을 풀어놓지 못해 안달이기도 하다. 보는 눈이 많다. 뭔가 적대적이지 않으면서도 임팩트있게.. 정숙은 급하게 머리 속에서 단어를 골랐다.

“그래? 너도 말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아차 싶었다. 엄마들이 잔뜩 와 있는데 겨우 이런 말을 하다니. 웃음을 섞어 말했지만 뼈가 있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건, 망신을 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날 오후, 정숙은 일하는 중간 중간 전화기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말일 뿐인데 괜한 반응을 해서는....’

하나하나 아이들은 참 예쁘다. 싸우고 실수하고 귀찮은 일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을 기다리고 인정받기를 바라며 해바라기 마냥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출근길에 지친 아침에도 교실문을 열고 아이들을 맞이하고 수업을 하다 보면 마법처럼 어느새 기운이 차려졌다. 수업 중에 해맑게 내뱉는 아이들의 한마디 말은 순수해서 웃겼다.

“아니, 그 상황에 태우가 난데없이 그럼 고조선이랑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이 세운 거에요? 그러잖아.”

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낮의 웃긴 이야기를 하다가 정숙은 배를 잡고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그게 웃겨? 당신은 천생 교사야."

“너무 귀엽잖아.”

하지만 최근의 학교에서 본 선생님을 괴롭히는 사건들은 정숙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지난주에도 4학년 아이의 아버지가 교장실에 쫓아와서 우리 아이가 괴롭힘 당하는 걸 당신은 알고 있느냐고 소리치고 난동을 부렸다. 언젠가부터 정숙은 아이들을 보내고 오후에 일을 하면서도 내가 오늘 한 말 중에 실수한 건 없는지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되었다. 그런 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퇴근을 할 때야 겨우 한숨을 내쉬고 ‘내가 과민했나?’ 한편 씁쓸해졌다.

“내가 처음 발령받았을 때 옆 반 할머니 선생님이 얼마나 무섭든지 나도 오금이 저렸잖아. 그 반 애들 급식 식판 검사를 하시는데 너무 철저해. 방울토마토가 나왔는데 애들이 토마토꼭지까지 다 먹어서 식판에 아무 것도 없는거야. 선생님이 남기지 말랬다고. 나중에 그 선생님 컴퓨터 못한다고 내가 성적도 옆에 붙어서 입력해주고 진짜 이상한 시절이었어.”

“어이구, 호랭이가 담배 먹니? 배추도사 무우도사 세요? 어제 우리 학교 과학선생님이 자꾸 수업 늦게 끝내줘서 애가 화장실을 못 갔다고 엄마가 와서 교무실을 뒤집어 엎었어. 그게 그렇게까지 할 일이니? 교양과 상식이라고는 밥 말아먹은지 오래에요. 요즘 선생님은 열정이 넘치는 것도 죄다. 급식지도가 왠말이니, 수업도 너무 열심히 하면 안돼. 종치면 끝내야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학교다.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이게 다 그 ‘아동학대' 덕분 아니겠니? 수만 틀리면 신고에..고소에.. 을러매대니 학교는 네네 하고 맘대로 하십쇼 하지.”

“그런데 왠지 그렇게 아동학대에 걸린 선생님은 뭔가 잘못해서 빌미를 주거나 신뢰를 쌓지 못한 거 아니야? ”

“어휴, 모르는 소리. 참교사도 당하는 게 아동학대에요. 왜 이렇게 교사들은 자기검열을 못해서 안달인지. 왜 절반의 화살은 교사들한테 쏘니? 화살도 모자란데.”

“우리야 10년 안쪽으로 남았지만 후배들은 정말 어떡하냐. 선배들이 잘못한 덤탱이 뒤집어 쓰고 치우느라. 우리도 학교 때 엄청 맞고 자랐지 않니? 인터넷 댓글들 봐. 학창시절에 선생님한테 당한 이야기로 치를 떨고 누가누가 더 악랄했나 랩 배틀을 뜬다니까.”

정숙은 자료를 주려고 만난 교대 동기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친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과거와 현재, 학교와 사회, 가정을 넘나 들며 사건, 사고 이야기로 입에서 불을 뿜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이야기에서 번져 요즘 애들, 요즘 사회 걱정, 나라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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