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고문 1

내 나이 6세엔 어린이집에 다녔고 7살이 되자 엄마는 더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루는 길었고 나는 방에서 벽지를 세다가 오후쯤 돼선 동네 공터에 슬슬 나가 애들과 빈둥거리는 것이 생활이었다.
꼬마친구 하나가 ‘나는 커서 대통령이 될 것이야.’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흙으로 부뚜막을 만들고 플라스틱 과자통으로 솥을 걸어 ‘여보, 밥 다 됐어요. 맛 좀 봐줘요.’ 하면 흙을 진짜 입에 털어 넣는 놈이었다. (누가 진짜 먹으래..)

그러자 다른 애들이 ‘정말? 너 대통령되면 나 잘 봐줘.’ ‘나두 나두.’ 이런다.
어? 이놈들이 제정신인가? 저 녀석이 진짜 대통령이 될거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럼 난 영부인될래.”
나는 바보녀석들에게 던져보았다.
“우아 정말? 그럼 나 좀 잘 봐줘.’ “나도. 내 구슬 줄게”

흙먹는 거 보고도 바보인걸 알았지만 바보가 이렇게 여럿 이라니.
‘대통령이 높아.” ‘아니야, 영부인이 높아.”
나는 바보들 속에 있다는걸 확신하고 검증을 마쳤다.

그때 우리 동네 문구점엔 곱슬머리에 파란 츄리닝을 세트로 입은, 입주변에 수염이 거무스름한 영랑이 삼춘이 있었다. 가게는 영랑이네 집인데 삼춘은 가게에 앉아 딱지랑 종이인형, 불량식품, 색연필 등을 팔기도 하고 안집에 들어가 조카들하고 놀다가 했다. 저렇게 되면 뭔가 안 될거 같았다. 저 나이 들도록 장가도 못 가고 집에서 천덕꾸러기 취급받고. (그때는 모두 결혼이란 걸 해야하는 줄 알았대죠?)

나는 그렇게 되고 싶은 것보다 되지 말아야 할 것에 번쩍 눈이 떠졌다.

내 정신에 냉수마찰을 한 사건 중 첫번째 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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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들어가자 다들 꿈을 적어내라고 했다. 나는 도무지 쓸 것이 없었다. 잘 하는 것도 없고, 아는 직업도 별로 없고 무엇도 될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머리 속 고민은 ‘사람은 왜 태어나서 살까?”였다. 생경한 이 곳에서 내가 뭘 하고 있나도 모르겠는데 앞으로 내가 뭘 할지까지 걱정해야하다니.

드디어 초등학교 4학년 때 하버드에 가겠다고 장난처럼 적었다. 선생님이 오, 그래? 하시며 호호 웃으셨다. 그때 티비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란 프로가 절찬 상영중이었다. 막연한 동경이었다. 진짜 갈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세상에는 저런 노란 머리한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두꺼운 책을 쌓아두고 공부를 한단 말이지? 체육도 못 하고 피아노도 싫었다. 그런데 공부는 조금 했더니 성적이 올랐다. 오예.

그러나 엄마는 집에서 우리 쏘fㅣ도 00대는 가야지?

했다. 으잉? 난 하버드라고 썼는데 엄마는 나를 그 정도로 보는구나.
머리가 띠요오오옹했다.

중학교 때 우리반 1등하는 지영이가 장래희망란에 ‘작가’라고 적는 걸 보고 나도 작가 라고 썼다. 생떽쥐베리같은 작가가 되겠단다. 뭔가 있어보이고 좋아보였다. 하지만 될 수 있을리라는 그림은 머리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어른들은 작가가 배고픈 직업이라고 했다. 땡! 탈락이다. 나는 배고픈건 딱 질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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