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후(邂逅)- 사랑은
사랑은
이응률
사랑은
빈 지갑 속에 지하철 표만 있어도
함께 떠날 수 있는 사이
어디 가느냐 묻지 않은 채
어깨에 기대어 잠들 수 있는 사이
깜빡, 목적지를 스쳐 지나갔어도
함께 있다는 안도감으로 다시 눈감는 사이
눈을 뜨면 흔들지 말고 손잡아주는
사이
사랑은
종착역이 늘 시발역이 되는 사이
그런 여행, 특별 나지 않아도 좋은 사이
왔던 길 함께 돌아가며
잡은 손 놓지 않고 개찰구를 나오는 사이
잔잔한 웃음, 하얀 이만 드러나는 사이
잘 자라고 문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사이
멀어져도 점점 가까워지는
사이
......
검색 창에 ‘이응률’ 이름 석 자를 쳤다. 아주 오래된 시를 찾았다. 남에 블로그에서 사는 낯익은 시를 붙잡고 읽었다. 잃어버린 자식을 되찾은 느낌이다. 이제부터 작품을 잘 정리해야겠다.
2002년에 블로그로 업어간 시니까, 이 시를 어디서 어떻게 가져갔는지 아리송하다. 내 기억은 늘 흐리멍덩하다.
이 시는 내가 1996년 쓴 거다. 경주 양동민속마을 창작실을 접고 상경하여 그대를 사랑할 때...지하철에서 내 어깨에 잠든 그대를 깨우지 못했다. 내려야 할 목적지를 스쳐 지나갔다. 종착역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나는 이 시를 썼다.
시는 살아 되돌아왔지만, 그대는 여기 없다. 아이 낳고 잘 살고 있을 거라, 여기며 안도한다.
한 사람을 그리워하라. 내 사람으로 가지려고 하지 말고, 세상이라는 큰 정원에서 꽃피게 하라. 씨앗으로 떨어져 어울려야 제각각의 향기를 살아간다.
이 시를 여기 내려놓는다. 그 이유는 사람은 가고 없어도 사랑은 남아서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린 사랑도, 미치도록 그리운 사랑도 독이 되지 않는다. 사랑을 증오로 키우지 않기를 바라며... 사랑은 해독제이다. 아주 좋은 피로회복제이자 건강보조식품이다. 모든 사랑은 아름답다. @Jamislee
"해후"는 최성수지요.
오, 좋아하는 노래에 젖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