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9(토)역사단편82-평양패수고(14) 백제와 낙랑2

단어풀이는 <DAUM, 네이버 사전>
본문은 <독립기념관 제공>

629.JPG

『資治通鑑자치통감』의
「夫餘初居鹿山爲百濟殘破(부여초거록산위백제잔파」註21의 記事로 보면
今 哈爾賓(하얼빈)이 百濟의 땅이 되었거늘,
本記(본기)나 列傳(열전)에 그런 말이 보이지 않았으며,
姐瑾(저근)과 沙法名(사법명)의
功績(공적)을 賛揚(찬양)한 『南齊書(남제서)』 가운데
東城王(동성왕)의 國書로 보면,
東城王 때 拓跋 魏(탁발 위)의 累十萬(루십만) 大兵을 戰勝(전승)하여
國勢(국세)가 매우 强盛(강성)하였거늘,
東城王 本記 中의 百濟(백제)는 어찌 그리 微弱(미약)하며
<출처: 평양패수고>

<자치통감>: 북송시대인 11세기 중엽에 사마광이 편찬한 편년체역사서
BC403~AD959 까지의 역사를 담고있다.

殘破(잔파): 잔인하게 파괴함
탁발 위(386~534): ‘북위’를 말한다. 5호16국시대 황하이북을 차지했다.

『남제서』:6세기 양(梁)나라때 편찬한 역사서
분량:(440~ 502), 송문제 17년 ~ 제화제 2년

累十萬(루십만): 수 십만

(해석하면)
『자치통감』의
「부여는 처음에 녹산에 살았는데 백제가 잔인하게 파괴했다」註21의 기사로 보면
현 하얼빈이 백제의 땅이 되었거늘,
<본기>나 <열전>에 그런 말이 보이지 않았으며,
姐瑾(저근)과 沙法名(사법명)의
공적을 찬양한 『南齊書(남제서)』 가운데
동성왕의 국서로 보면,
동성왕 때 拓跋 魏(탁발 위)의 수 십만 대병과 싸워서 이겨
나라의 힘이 매우 강성하였거늘,
동성왕 본기 중의 백제는 어찌 그리 미약하며

註21)『資治通鑑자치통감』 에는
“初夫餘居于鹿山(초부여거우록산)
爲百濟所侵 部落衰散(위백제소침 부락쇠산)”으로 되어 있다.
<출처:독립기념관>
(해석하면)
자치통감에는, "처음에 부여가 녹산에 있었는데
백제에게 침략당하여 부락이 쇠퇴하여 흩어졌다."

주21에 인용한 자치통감의 관련 기사 전문을 보면,
“初夫餘居于鹿山(초부여거우녹산)
爲百濟所侵(위백제소침)
部落衰散(부락쇠산)
西徙近燕(서사근연).로 되어있다.
(해석하면)
<처음에 부여가 녹산에 있었는데,
백제에게 침략당하여 부락이 쇠퇴하여 흩어져서
서쪽의 연나라 근처로 이주하였다.>이다.

왜 <西徙近燕서사근연> 를 빼고 주석을 달았을까?
혹시, 주류사학계의 입장에서 볼때,
백제는 한강남쪽에 있어야 한다.
백제때문에 만주북부에 있는 '부여'의 주민이
대륙에 있는 연나라로 이주했다고 말하면
기존 국사교과서의 백제관련 모든 내용이 이상해 진다.

해당 시대의 지도를 살펴본다.
남북조시대.JPG
<출처: encyber.com>
인터넷에서 위진 남북조시대를 검색하면 위와같은
사진을 볼 수있다.
지도의 허구성을 들여다본다.

(1)만리장성: 지도에 1번으로 표시한 부근의 장성은
명나라때 만들어진 것이다. 스스로 사기임을 증명한다.
(2)북조라고 표시된 지역에 있던 탁발씨의 북위가
수십만의 병력으로 백제의 영토에서 싸워 패배했다.
지도에 '남조'라고 표시된 영역이다.

의문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백제는 어디에서 북위와 싸워서 이겼고,
어디에 있던 부여를 공격해서 약탈했을까?

계속해서
姐瑾(저근)과 沙法名(사법명)의
공적을 찬양했다는 『南齊書(남제서)』관련 기사도 살펴보자.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 (시세 위로우발기수십만)
攻百濟入其界 공백제입기계
牟大遣將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
(모대견장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
率衆襲擊虜軍 大破之(솔중습격로군대파지)
< 출처: 『남제서南齊書』 권58 동남이전東南夷傳>

魏(위): 탁발씨의 위나라.

(해석하면)
이 해(490, 동성왕12년) 에
위나라 오랑캐가 또다시 기마병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그 국경에 들어가니,
모대(동성왕)가 장군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를 파견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오랑캐군을 기습,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

'남제서'를 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다.
지나인들은 역대이래 우리에 대해 좋게 기록한적이 없다.
항상 침략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에 남제(479~502)는 북위의 압박을 받고 있었으므로
백제가 북위를 물리친 것에 대해 우호적으로 기록한듯 하다.
북위에 대해서는 ‘虜(로:오랑캐)’라 쓰고
백제는 나라이름을 그대로 적었다.

중국의 역사책에도 기록된 백제의 큰 사건을
삼국사기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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