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7(목)역사단편80-평양패수고(12) 낙랑과 평양4

단어풀이는 <DAUM, 네이버 사전>
본문은 <독립기념관 제공>을 사용한다.
본문해석에 참고한 여러 자료는 나열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先民들은
비록 平壤의 假字(가자)로 「펴라」를 記하나,
「펴라」의 音義(음의)를 잘 앎으로,
「펴라」란 水名인 浿水를 떠나서는
平壤(평양)이라 稱(칭)한 일이 없다.
<출처: 평양패수고>

假字(가자): 빌린글자, 이두를 말한다.

(옮기면)
그러나 우리 선대사람들은
비록 平壤이라는 假字(가자)로 「펴라」를 썼으나,
「펴라」의 소리와 뜻을 잘 알았기 때문에,
「펴라」란 강물이름인 浿水(패수)를 떠나서는
平壤(평양)이라 稱(칭)한 일이 없다.

이를테면
故國原王(고국원왕)이 黃城(황성)에 都(도)하며,
<歷來史家(역래사가)가
「故國原王 十三年 平壤東黃城고국원왕13년평양동황성」의 黃城을
上句(상구)에 連讀(연독)하여 東黃城(동황성)이라 하였지만
이는 大誤(대오)>
平原王(평원왕)이 長安城(장안성)에 都(도)한 바
黃成(황성)과 長安城(장안성)이 다 平壤에 至近(지근)하지만,
다만 浿水(패수)를 挾(협)하지 않은 故(고)로
平壤(평양)이라 稱(칭)하지 않고
黃城 或 長安城(황성 혹 장안성)이라 稱(칭)하여
그 區別(구별)이 이같이 嚴絶(엄절)하지만,
<출처: 평양패수고>

挾(협): 끼고 있다, 거느리다
嚴絶(엄절): 위엄있고 엄격하다
평원왕:고구려 제25대 태왕
長安城(장안성): 당나라의 수도와는 다른 곳이다.
黃城(황성): <고평양>의 위치를 먼저 확정해야 한다.

(옮기면)
이를테면
‘고국원왕’이 黃城(황성)에 도읍을 정하고,
<그 동안의 역사가들이
「 고국원왕13년 平壤東黃城평양동황성」의 ‘黃城(황성)’을
앞구절에 붙여서 읽어 東黃城(동황성)이라 하였지만
이는 큰 잘못이다.>
<평원왕>이 ‘장안성’에 도읍을 정했을때
‘황성’과 '장안성’이 다 평양에 가까이 있지만,
다만 浿水(패수)를 끼고있지 않았기 때문에
‘평양’이라 稱(칭)하지 않고
‘황성 혹은 장안성’이라 稱(칭)하여
그 구별이 이같이 엄격하지만,

中國人은 歷代 以來(역대 이래)에
浿水(패수)의 有無를 不關(불관)하고
樂浪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移置(이치)하였으니,
遼東(요동)의 樂浪도
이미 前述과 같이 固定한 處所(처소)가 없거니와,
<출처: 평양패수고>

移置(이치): 옮겨서 설치함

(옮기면)
중국인은 역대 이래로
浿水(패수)의 유무에 관계없이
낙랑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옮겨서 설치했으니,
遼東(요동)에 있던 낙랑도
이미 앞서 설명한것처럼 고정된 장소가 없거니와,

慕容廆(모용외)가
長統(장통)<前項전항에 보임>의 降(강)을 받아
樂浪太守(낙랑태수)를 삼고
柳城(유성)에 樂浪(낙랑)을 僑設(교설)하였으니,
이는 遼西(요서)의 樂浪이요
拓拔魏(탁발위)의 以後에는
上谷(상곡)에 樂浪(낙랑)을 移置(이치)하였으니,
이는 山西(산서)의 樂浪이니,
이 따위는 다
「펴라」의 물과 關係(관계) 없는 樂浪(낙랑)이라 할 것이다.
<출처: 평양패수고>

慕容廆(모용외): 5호16국시대,<전연>의 초대 황제인 '모용황'의 아버지
고구려를 침략하였다가 패하였다. 재위 기간(285~333년)
僑設(교설): 임시로 설립하다

拓拔魏(탁발 위): 탁발씨가 세운 ‘북위’를 말한다.
386년에 선비족인 탁발규가 화베이(하북+산서성일대)에 세웠다고 나온다.
조조의 ‘위나라’와 구별하기위해 <북위>라고 부른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북조(北朝) 최초의 나라.

上谷(상곡): 에 대해 검색해보면
<진나라>내몽골 자치구 연경현(燕京縣)
<수나라> 허베이성(河北省) 중서부 역현(易縣)
라고 나온다. 주류사학계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니
역사책에 관련 기록이 나오면

거짓말 또는 오류라고 주장한다.

단재낙랑해성1.jpg
(단재가 생각하는 '낙랑'의 위치변동)

(옮기면)
慕容廆(모용외)가
'장통'<전항에 보임>의 항복을 받아
'낙랑태수'를 삼고
柳城(유성)에 '낙랑'을 임시로 설치하였으니,
이는 遼西(요서)의 낙랑이요.
拓拔魏(탁발위)의 이후에는
上谷(상곡)에 낙랑을 옮겨 설치했으니,
이는 山西(산서)의 낙랑이니,
이 따위는 다
「펴라」라는 <물과 관계없는 낙랑>이라 할 것이다.

지도에서 보듯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면,
역사기록에 나오는 내용이 설명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요동지역에 있었다가
하북성-> 산시성으로 이전되었다는 해석이다.

물론 '요동' 자체가 명나라 이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서 설치되었다는 기록들을 보면
고구려시기의 낙랑의 위치는 왼쪽으로 이동 되겠지만..

Coin Marketplace

STEEM 0.18
TRX 0.13
JST 0.030
BTC 56589.13
ETH 3005.25
USDT 1.00
SBD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