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3(수)역사단편208. 자신의것을 지킬 힘이 필요하다: 조선인의 노예사상의 기원13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다.
<단재 신채호>

이 뒤로부터 朝臣의 廷論者(정론자)가 드디어 兩派로 分(양파로 분)하였으니,
郞家(낭가)는 매양 國軆上(국체상)에는
獨立·自主·稱帝·建元(독립, 자주, 칭제, 건원)을 主張(주장)하며,
政策上정책상)에는 興兵北伐(흥병북벌)하여
鴨綠 以北(압록이북)의 舊疆을 恢復(구강을 회복)함을 力唱(역창)하고
儒家(유가)는 반드시 尊華主義(존화주의)의 見地(견지)에서
國軆(국체)는 中華의 屬國(중화의 속국)됨을 主張(주장)하고,
따라서 그 政策(정책)은 卑辭厚幣(비사후폐)로 大國을 事(대국을 사)하여
平和(평화)로 一國을 保(일국을 보)함을 力唱(가창)하여
彼此 反對의 地位(피차반대의 지위)에 서서 抗爭(항쟁)하였다.
例(예)를 들면 顯宗 末年(현종 말년)에
渤海의 中興(발해의 중흥)을 補助(보조)하여
契丹(거란)을 쳐서 舊疆을 恢復(구강을 회복)하자는 郭元(곽원)이 있는 反面에,
本土를 謹守(근수)하여 生民을 保(생민을 보)하자는 崔士威(최사위) 等이 있으며,
德宗 初年(덕종 초년)에 鴨綠江橋(압록강교)의 毁撤(훼철)과
拘留(구류)된 我邦 使臣(아방사신)의 回還(회환)을 契丹(거란)에게 要求(요구)하다가
不聽하거든 絶交(불청하거든 절교)하자는 王可道(왕가도) 等이 있는 反面(반면)에,
外交를 謹愼(외교를 근신)히 하여
兵禍(병화)가 없도록 하자는 皇甫兪義(황보유의) 等이 있으며,
其他(기타) 麗朝 歷代 外交(려조역대외교)에 매양
自尊의 硬論(자존의 경론)을 發한 者(발한 자)는
거의 郞派(낭파)나 或(혹)
間接(간접)으로 郞派의 思想(낭파의 사상)을 받은 者(자)요,
卑辭와 厚幣(비사와 후폐)의 事大論(사대론)을 執한 者(집한 자)는
大槪 儒敎徒(대개 유교도)들이었고,
佛敎(불교)는 自軆의 性質上(자체의 성질상) 政治 問題에 關(정치문제에 관)하여
郎家(낭가)와 같이 激烈(격렬)히 系統的 主張(계통적 주장)을 가지지는 않았으나
大槪(대개)는 郎家와 接近(낭가와 접근)하였다.
< 출처: 朝鮮歷史上 一千年來 第一大事件,독립기념관>

廷論(정론): 조정의 의견
建元(건원): 나라의 연호를 세움
興兵北伐(흥병북벌): 군대를 키워 북방을 정벌하다
力唱(역창): 강하게 주장하다
尊華主義(존화주의): 한족의 문화를 높이 받드는 사고방식
國軆(국체): 나라의 형태
卑辭厚幣(비사후폐):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며 후하게 대접함
大國을 事(대국을 사): 큰 나라를 따르다.
謹守(근수): 조심하고 정성껏 지킴
毁撤(훼철): 부숴서 제거함
拘留(구류): 잡아서 가둠
回還(회환): 돌아옴, 귀환
謹愼(근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함
兵禍(병화): 전쟁피해
硬論(경론): 강경한 주장
執(집): 고집하다, 따르다
激烈(격렬): 아주 강하게
系統的(계통적); 체계적

(옮기면)

이 뒤로부터 조정신하들의 의견이 드디어 양파로 나뉘었으니,
낭가는 항상 나라의 체제에 대해
독립, 자주, 칭제, 건원을 주장하며,
정책상에는 군대를 키워 북방을 정벌하여
압록이북의 옛 영토를 회복할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유가’는 반드시 한족의 나라와 문화를 높이 받드는 관점에서
나라의 체제는
중화의 속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그 정책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며 상대를 후하게 대접한다는 방식으로
큰 나라가 시키는대로 따라가는
‘평화정책’으로 국가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피차반대의 견해에 서서 다투었다.
예를 들면 현종 말년에
발해의 중흥을 보조하여
契丹(거란)을 쳐서 옛 영토를 회복하자는 郭元(곽원)이 있는 반면에,
본토를 조심하고 정성껏 지켜서 백성을 지키자는 ‘최사위’ 등이 있으며,
덕종 초년에 압록강다리의 부숴서 제거한것과
잡혀있는 우리사신의 귀환을 거란에게 요구하다가
듣지않으면 절교하자는 王可道(왕가도) 등이 있는반면에,
외교를 통해 언행을 삼가고 행동을 조심해서
전쟁의 피해가 없도록 하자는 皇甫兪義(황보유의)등이 있으며,
기타 고려-조선 역대의 외교에서는 항상
스스로를 높이는 주장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낭파(무사정신)’ 이거나 간혹,
간접으로 낭파의 사상을 받은 사람이요,
겸손과 아부의 ‘사대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대개 유교도들이었다.
불교는 자체의 성질상 정치문제에 관하여
郎家(낭가)와 같이 강하게 체계적 주장을 가지지는 않았으나
대개는 낭가의 견해와 가까웠다.
< 출처: 조선역사상일천년래 제일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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