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부터 압록강까지 17-5-4 워커장군의 해병여단 투입 결심
공격실패에 대한 워커 장군의 반응(160)
워커 장군은 돌출부 작전의 성과가 없는 것에 대해 조바심을 내기 시작함
8월 13일 처치 장군은 워커장군에게 북한군 제4사단 전체가 24사단 지역에 침투했다고 보고했으나 워커 장군은 이를 인정하기를 거부
(돌출부 북한군의 규모에 대한 입장차이가 발생)
8월 5일 공격실패이후 워커장군은 작전 성공을 위해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
“해병 여단을 줄테니 속히 적을 몰아내라”고 처치장군에게 요구
13:00 경 워커장군은 해병대를 낙동강 돌출부에 투입 결정
이 결정은 당시 낙동강 전선에서 전세를 되돌린 유일한 계기
당시 유엔군 작전상황
도처에서 미군과 한국군은 곤경에 빠져 있었음
8월 11일-15일 사이 8군 예비대는 모든 바향에 투입되어야 하는 상황
킨 특수부대는 피의 걸취(Bloody Golch)전투에서 패배
힐 특수부대는 오봉리 능선과 클로버 잎 고지에서 실패
북한군 4사단은 영산으로 육박
기타 부대는 계속 낙동강으로 도하하여 돌출부 북쪽의 대구로 접근
한국군도 계속 패배하여 조금씩 후퇴
부산주위의 방어선은 현저히 축소
동해안 포항을 점령한 괴뢰군 5사단은 경주 종격실을 따라 부산으로 전진
당시 워커장군의 상황판단
부산주위의 방어전투는 도처에서 동시에 전개된 전투의 복잡성으로 혼란
워커장군은 갑자기 변동하는 상황에 따라 야기되는 위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검토하여 적의 기습을 받았을 때는 즉시 이에 대처할 방도를 연구하여 신속한 조치를 취하곤 함
(낙동강 방어선에서 워커 장군의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는 것을 기술 161, 낙동강 전투에서 워커 장군이 어떤 결심을 내렸는지에 대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
워커 장군의 우선순위 판단
항상 영산-밀양 지역을 염려했으며 이곳은 남강과 낙동강의 합류점의 바로 위에 해당하는 곳으로 적의 공격 중심이 될 우려가 농후
8월 중순 그는 낙동강 돌출부의 위기가 지금까지 당면했던 어떤 위기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가장 강력한 예비대를 투입
8월 15일, 8군은 제1해병여단을 제24사단에 배속
8월 17일, 가급적 신속히 낙동강 동쪽 돌출부에서 적을 공격하여 격퇴하라고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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