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100-2] 껍데기는 가라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21 hours ago



껍데기는 가라
Eroll Garner live 63' & 64'



최근에 나에게 가장 알맞은 도구를 찾았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해주고 손목과 팔에 부담도 없으며 파일 용량도 아주 가뿐한. 너무나 기쁘게 사용하고 있었는데, 5개월 만에 벌써 3번째 기술 이슈가 터졌다. 다른 카메라들은 8년이고 5년이고 문제 한번 없었는데, 역시나 오래된 캠코더는 어쩔 수 없나보다.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터리 두 개 써가며 열심히 기록한 사진과 영상이 SD카드로 하나도 넘어가 있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작업물이 정말 많았는데! 에러 메시지도 뜨지 않고, 저장이 되었다는 표시도 떴으면서. 32GB의 절반 정도 용량이 차니 저장 속도가 조금 느려지길래 이미 다 옮겨둔 파일은 포맷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SD카드가 포맷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캠코더 안에서도, 맥북 디스크 유틸리티에서도. 하는 수없이 저장 위치를 내장메모리로 해두고 테스트해봤더니, 그제까지 잘 기록되던 jpg파일은 오늘 갑자기 '지원되지 않는 형식'이라고 떠서 아예 파일을 읽을 수도 없다.

오랜만에 기쁘게 외출해서 영감 가득 얻은 하루였는데, 마지막의 허탈감과 상실감으로 피로가 대형 파도처럼 덮쳐온다. 분명 다른 해결책이 있겠지만, 나는 더 이상 이 캠코더를 신뢰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다시 예전에 쓰던 세컨드 카메라를 세팅해두고, 그래도 아쉬워 방금 전까지 낑낑대다가 일단은 포기하기로 했다. 오늘 일정의 마지막에 찾은 대형 LP 리스닝 카페바에서 오랜만에 Eroll Garner 아저씨를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전자음악이나 앰비언트는 거의 없고, 검색 시스템도 없으며, 구비된 장비의 음질이 그닥이라, 적당히 손에 잡히는 오래된 음반을 아련한 기분으로 듣기에는 좋았다.

마음에 드는 다른 형식을 찾으면 되지, 뭐. 행복한 미소와 함께 건반을 두드리는 아저씨를 보니 껍데기 같은 오늘의 스트레스는 공기 중에 흩어지게 하고, 좋았던 추억과 폭포수 같은 영감만 내 안에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토요일을 당겨쓴 금요일이었으니, 내일은 다시 업무 시작. 즐겁고 무던하게 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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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hours ago 

사진이나 편지 수첩 이런 기록들을 날리고 잃어버리면 참 슬퍼요 영감은 무한하니까 위안이 되구요:-)

 8 hours ago 

맞아요! 게다가 애정했던 도구도 함께 잃으니 섭섭함이 갑절이 되었어요ㅎㅎㅎ 하지만 대안은 언제나 있으니, 나아가보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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