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본질에 관하여

in #educationlast year (edited)

교육의 본질에 관하여

우리는 돈이 많은 사람들을 부자라 한다. 그리고 시간이 많은 사람을 백수라 한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누구나 백수가 되고싶어하진 않는다. 바쁘고 열심히 사는것이 덕이라 평생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 교육에도 바쁘게 많은걸 시키면 애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상이다. 근데 정작 내가 만나본 한국 고등학교 학생들은 공부를하는 기계다. 그리고 또 공부를 엄청 잘한다. 이게 문제다. 아예 나자빠지면 '아 다른걸 시켜야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니 학생 마음 속만 썩어 문드러지는 것이다.

우리는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학생이 공부를 너무 잘해서 서울대학교에 갔다고 가정해보자. 서울대 의대는 의사를 하겠지만 - 이것도 본인의 성향이 맞지 않는다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라 생각한다 - 그렇지 않은 수많은 문과 학생 그리고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이과를 나온학생들, 대학을 졸업하고 뭘 하고있나? 대기업 취직? 아니면 변리사?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이것도 아니면 유망한 스타트업에서 마케팅직? 관리직? 인사직? 80년 90년대 우리 부모님 대학 졸업시절 대한민국 경제상황은 달랐다.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 졸업하면 기본적으로 5-6개 대기업에서 잡오퍼를 받았다. 대기업을 골라서 취직하는 세대였다. 그 시절은 대한민국이 연평균 10% 성장하는 시기였다. 그러니 당연히 일자리는 넘쳐나고 사람은 부족했을 수 밖에.

다시 돌아와서. 그래서 서울대를 졸업해서 대기업에 들어가면 탄탄대로인가? 열심히 달려 대기업 임원까지 했다고 가정하자. 그럼 7-80살까지 정년을 보장하나? 연봉 3-4억 받아봐야 그것도 임기 막바지다. 한국 시스템이 그렇다. 군대에서 내 일 평생을 담아서 별을 따도 4-5년이면 그만 둬야한다. 그렇게 따지면 군대가 대기업보다 낫다. 연금을 주니까. 그러면 대기업 임원이 옷벗고 나와서 50대에 시작할 수 있는일이 뭔가? 자영업? 택시운전? 아니면 유튜브 컨텐츠 크리에이터? 더 암울하다.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50대에 세상과 벌거벗은 채로 마주하면 내 아래 딸린 식구들을 보노라면 중년우울증에 빠지지 않는게 더 이상할 정도다.

너무 늦기전에 더 열심히 지루함을 만끽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세대는 뭘 해야할까? 더 열심히 지루함을 만끽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지루할 수 있는건 너무나 큰 축복이다. 집에서 누워서 하루종일 핸드폰만 하고 일어나서 밥먹고 하는게 어떻게 가능한가? 과거 군정부시절, 새마을 운동을 하던 시절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는가? 이 럭셔리가 우리 부모님 세대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이다. 할 거 없어서 슬리퍼 신고 집앞에 피씨방에 가서 하루종일 게임을 하고 돌아오고 또 이걸 반복하는 삶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부모님이 벌어둔 시간을 별 쓸데없는 곳에 탕진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지루함 안에 엄청난 힘이 존재한다.

지루함은 다른 말로 사색이다. 정말 진지하게 오래 지루해 보았는가? 핸드폰을 해도 지루하고 따분하고, 게임을 해도 너무 오래해서 이제 지루하고 따분하고 야동을 봐도 이제 지루하고 따분해 보았는가?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다보면 내 안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찾게 된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프로그램이 되어있다. 지루함 안에는 작은 자기혐오도 같이 존재하는데 그 것이 겹겹이 쌓이게 되면 무언가 새로운 액션을 찾게되는 열망으로 분출된다. 그 열망은 그럼 뭘 원하겠는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의 가슴을 뛰게하는 무언가를 찾는것이다. 영화 리뷰를 작성한다던가, 책을 엄청 많이 읽는다던가, 사진을 새로 배운다던가, 프로그래밍을 배운다던가 내가 적성에 맞는걸 찾을 수 밖에 없는거다. 가뜩이나 지루해서 시작한거니 당연히 안 지루한걸 찾게 되는것이다.

간혹 시골에서 혼자 독학해서 서울대 간 사람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시골에서 너무 지루한 나머지 찾은게 공부였고 그 공부가 너무 재밌고 안 지루해서 자연스레 잘 하게 된거다. 현대판 마이클 조던이라는 한국의 롤 게임 플레이어 페이커는 어떤가? 게임이 좋아서 롤이 좋아서 그것만 했더니 엄청 잘하게 된거다. 적성을 찾은거고 그 안에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페이커가 아니어도 훌륭한 작가들 예컨데 Marcel Proust나 철학가 데카르트는 어떤가? 몸도 안좋고 못생겨서 바깥에 나가기도 힘들고 방안에서 지루하니까 생각하고 글적고 하다보니 훌륭한 작가, 철학가가 된거다.

그래도 된다


한국은 이제 잘산다. 우리 부모님들께서 당신들을 희생하며 너무나 열심히 사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루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셨다. 아무리 가난해도 밥을 못먹어서 죽었다는 말은 거의 못보지 않았는가? 그러면 충분히 그 넉넉한 시간을 지루함으로 보내라. 그리고 그 안에 당신의 적성을 찾고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던 무언가를 찾아라. 그게 현재의 대학-대기업-자영업 굴레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그게 독보적인 누군가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글을 보는 부모들은 자식의 교육에 정말 진지하게 고민 해봐야한다. 어렸을때 부터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초등학교 때부터 애는 관심도 없는데 수영, 축구, 피아노, 영어학원, 수학학원, 그림학원 보내는건 당신이 불안해서다. 뭔가를 시켜야 할 것 같고, 주변이 다들 그래서. 근데 솔직해지자. 당신은 그렇게 자랐는지? 그리고 그렇게 자랐다면 그게 너무나 좋았는지? 공자님에게 세상에 남기고 싶은 단 한가지의 가르침을 여쭈어 보았을때 말씀하시길, "내가 겪기 싫은걸 남에게도 하지말라" 라고 하셨다. 자식도 마찬가지다, 그냥 냅두면, 그리고 자식에게 지루함을 제공할 수 있는 바람막이가 있다면, 그 사치를 선물로 주자. 그리고 자식이 흥미로워 하는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고 그 흥미를 잘 보살펴서 성취로 만들어 주자. 그러면 당신의 자식은 꼭 좋은대학에 가지 않아도 세상에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평생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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