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감빵생활

in #drama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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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사이클링 홈런

야구 용어 중에 사이클링 홈런이란 말이 있다. 한 경기에서 솔로 홈런, 2점 홈런, 3점 홈런, 만루 홈런 네 가지를 모두 치는 기록을 말하는데, 한국, 일본, 미국의 프로리그에서 사이클링을 기록한 팀과 선수는 아직 없다. 다만 미국 마이너 리그에서 트레블러스의 타이론 혼이 사이클링을 기록한 적이 있다.

뜬금없이 야구 용어를 설명한 이유는 4편의 드라마 때문이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 그리고 슬기로운 감빵생활. 이우정 작가, 신원호 연출 그리고 제작사 tvN이 한 팀이 되어 이루어낸 드라마의 사이클링 홈런. 연이어 4개의 히트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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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를 버리고, 캐릭터를 만들다.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이하 '응슬')에는 톱스타가 출연하지 않는다. 반대로 응슬을 통해 톱스타가 된 경우는 많다. 응칠의 정은지, 서인국이 그렇고 응사의 정우와 유연석, 응팔의 류준열과 박보검, 최근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박해수와 박호산, 이규형까지. 응슬은 출연만 하면 별들이 쏟아지는 자판기 같은 드라마다.

톱스타 캐스팅과 해외 로케이션 등으로 이슈를 만들어 초반 시청률을 높이는 방식이 기존 드라마의 마케팅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응슬은 그럴 수 없었다. 2012년 KBS 이명한 사단이 대거 CJ E&M으로 이적했다. 나영석 등과 함께 적을 옮긴 응슬의 작가 이우정, 연출 신원호는 원래 예능 출신이었고, tvN은 예산이 넉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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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예산의 결핍이 마술 같은 일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응슬은 적은 예산으로 웰메이드 드라마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했고, 톱스타 캐스팅을 가장 먼저 계획에서 제거했다. 대신 작은 배역까지 기억나게 만드는 스토리와 연출로 실력파 배우들을 포섭해서 성공한다. 작가와 연출이 예능 출신이라는 점이 선택받는 핵심경쟁력이 됐다.

복고는 자주 실수하지 않는다.

므두셀라는 노아의 할아버지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969살까지 살았던 인물로 장수의 상징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이런 므두셀라의 고사에 빗대어, 불안한 현실에서 벗어나 과거의 확실했던 행복으로 회귀하려는 심리를 므두셀라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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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슬의 트레이드 마크는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드라마 주제음악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명곡들을 최신 가수들이 리메이크한다. 응슬의 OST는 무드셀라 증후군을 활용한 레트로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다. 응슬은 과거 세대들에게는 아름답게 회상하는 계기를, 젊은 세대들에게는 과거를 간접 경험함으로써 새로움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복고라고 과거만 추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성시경이 부른 서태지의 너에게, B1A4가 부른 더 블루의 그대에게, 로이킴이 부른 김광석의 너에게, 오혁이 부른 이문세의 소녀, 김필이 부른 김창완의 청춘까지.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를 영리하게 물려받았다. 에릭남이 부른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대표하는 주제음악이다.

왜곡을 깨고 또 깨다.

응슬은 한국 드라마의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깨부순다. 톱스타 시스템을 제거하고, 쪽대본을 청산한다. 응슬은 짜인 로드맵으로 사전제작 시스템을 점차 완성시킨다. 응슬은 월화 드라마, 수목 드라마, 주말 드라마 같은 고정관념을 깨고, 주5일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과감하게 금·토 편성을 정착시킨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세트 촬영을 하지 않았다. 첫 시리즈인 응칠은 제작 여건상 어쩔 수 없이 세트 촬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응사는 오히려 일부러 리얼한 느낌을 주기 위해 세트 촬영을 제거했다. 사라진 세트는 과거의 분위기를 더욱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차별 속성으로 바뀌었다.

응슬의 대본은 한 명의 작가에 의존하는 기존 드라마 시스템과 다르게 협업 창작 시스템을 통해 탄생한다. 이우정, 신원호 콤비가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서부터 실험하던 방식을 고스란히 드라마에 접목한 것이다. 결말을 열어 놓고, 남편이 누구인지를 맞추게 하는 응사의 게임 같은 스토리텔링도 응슬만의 독창적인 시스템이다.

한 명의 인기 작가와 톱스타 몇 명에게 집중했던 과거의 영화와 드라마 시스템은 성장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좋은 작품은 인기를 만들지만, 룰을 바꾼 작품은 역사를 만든다. 새로운 시스템은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국가도 못해주는 일이 시스템이다. 응슬의 사이클링 히트의 비밀은 시스템부터 구축한 팀워크가 아니었을까? 끝.

최선을 다했는데
기회가 없었던 거야.
세상이 더 최선을 다 해야지.
욕을 하든 펑펑 울든 네 탓은 하지 마! by 김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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