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회 중국 CSA 사회생태농업 대회 참가 - 귀주, 충칭, 청뚜.... 한국인 참가자들과 함께 중국 서남부 둘러 보기

in #csa7 years ago (edited)

"문재인 대통령 수행으로 충칭에 가려했으나, 사정이 있어 이번엔 미리 귀가했고, 월말에 충칭에 다시 갈 예정입니다.” 마침 베이징 출장 기간에 문재인 대통령이 방중한 것을 기화로 ‘페친'에게 객쩍은 농담을 던졌다. 어찌됐든 충칭에 가기로 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무려 2년반만에 중국 서남부를 다시 둘러 볼 기회가 생겼다. 한중일을 잇는 것이 주된 일이다 보니, 중국에 살면서도 아무래도 내륙으로 깊이 들어갈 일이 잦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침 17년 CSA대회가 귀주성에서 열리게 됐다. 서남부지역에서도 가장 빈곤한 산악 지역인 귀주는 필자도 초행길이다. 그래서 대회 주제도 乡村振兴향촌진흥과 더불어 生态扶贫생태부빈이란다. 향촌진흥은 제19대 공산당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강조한 신농촌건설의 새로운 과제중 하나이고, 생태부빈은 역시 중국정부가 강조하는 생태문명건설에 맞게 생태적 방법을 통해서 빈곤을 퇴치한다는 뜻이렸다.

중국CSA 사회생태농업 대회는 어쩌다보니 3년 연속으로 참여하게 됐다. 올해가 제 9회인데, 처음 참가할 때는 마침 국제 CSA대회와 함께 베이징에서 열렸고, 마침 이 대회를 중국에서 주관하는 향촌건설운동의 주역들과 막 네트워킹을 시작한 터라서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자원봉사자로 참여를 하게 됐다. 그때 한국에서 전여농 대표 두분이 초청을 받은 터라서, 수행통역을 자원했다. 중국에서 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운동이 시작된 것은, 지금은 이 대회의 호스트 역할을 맡고 있는 중국CSA연맹의 대표이자, 중국의 최대 CSA농장중 하나인 베이징 Shared Harvest농장의 농장주 SHI Yan 실옌 박사가 자신의 박사 논문에서 그 개념을 소개한 것이 시발점이다. 그녀도 함께 하고 있는 중국의 향촌건설 운동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중국의 삼농전문가 인민대학의 원톄쥔 교수가 이끄는 전국적인 사회운동으로 산업화, 도시화의 일방적인 희생양이었던 중국의 농촌, 농업, 농민을 다시 국가와 사회의 중심으로 돌리고자 하는 흐름을 주도하며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사회 각계각층에서 적지 않은 호응을 얻고 있다. 향촌건설 운동은 중국내 유기생태농업의 보급에도 앞장 서왔는데, 소농이 생산한 건강한 먹거리를 수용할 도시 소비자를 키우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일본과 서구에서 일찍부터 발달한 CSA개념을 채택하여, 중국 실정에 맞게 사회생태농업으로 폭넓게 해석하여 확산시키고 있다. 2016년엔 한국의 한살림생협이 기조발제에 초청 받았고, 이번 대회엔 한살림과 홍동마을 풀무학교에서 각각 기조발제 요청을 받았다. 나는 중간에서 연락책만 맡고, 굳이 먼곳까지 발걸음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뜻밖에, 이 대회에 관심을 보이는 지인들이 있었다. 이 분들 모두, 한국 사회에서 농업, 농촌, 먹거리와 관련해서 남부끄럽지 않은 전문성을 가지고 계신 분들인지라, 이 분들의 소논단 발제를 주선해 보면 어떨까 퍼뜩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기조 발제를 하는 두분과 엮어 아예 한국 소논단을 조직하고, 반응이 괜찮다면 매년 비슷한 조건으로 중국 CSA대회에 한국 소논단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 복안이었다. 지인들은 흔쾌히 응낙을 해주셨고, 실옌 박사도 동의했다. 이 때부터 조금 바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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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한국인 참가자들과 실옌박사 (가운데 붉은 옷을 입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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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한국인 참가자들과 원톄쥔 교수 (가운데 붉은 명찰)

실은 대회 규모로 보아 최소 두세달 전에 준비가 돼야 했을 것인데, 올해는 어쩐 일인지, 본격적인 준비는 한달전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나도 이것 저것 실제적인 준비는 2주 정도를 앞두고 서둘렀다. 대회 기간에야 내가 크게 신경쓸 일이 없었는데, 참가자 몇분의 요청으로 대회 전후해서 근처 지역의 필드 트립을 준비하는 것이 내 임무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한살림 등의 참가자 수가 늘어, 이럭저럭 한국인 참가자가 예상치 않게 9명으로 역대 최대가 됐다. 모든 분들이 동일한 일정을 취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여하튼 가장 긴 일정은 충칭에서 시작해서, 청뚜에서 끝나는 8일간의 코스가 됐고, 나도 이에 맞추어서 상하이=>충칭, 청뚜=>상하이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처음 일정을 시작한 충칭 (중경)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시정부에서의 사진 촬영으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이기도 하지만, 중국 국민당 정부가 일제 침략 당시 임시정부로 삼았기 때문에, 중국의 많은 학자와 활동가들이 오랜 기간 피난 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향촌건설 운동의 주역이었던 '마지막 유학자' 량슈밍 선생 등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원래 충칭 출신으로 중국 최초의 사회적 기업가로 평가 받는 루쭈어푸 선생이 항일운동과 더불어 20년 넘는 향촌건설 운동을 꾸준히 벌여 왔던 곳이기도 해서, 이런 역사적 상징성을 바탕으로 충칭 외곽에 위치한 서남대학교내에 향촌건설학원이 만들어져 있다. 충칭에서 밤기차를 타고, CSA대회가 열리는 귀주의 통런시로 이동하기로 했기 때문에, 딱 하루반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래서 우선 향촌건설 학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향촌건설학원이 위치한 곳은 루쭈어푸 선생이 1920년대부터 향촌건설 운동을 벌여 왔던 베이베이구이고, 베이베이구는 도처에 향촌건설 사업의 업적을 찾아 볼 수 있다. 해서, 교내로 진입하기 전에, 우선 루쭈어푸 기념관을 찾았다.

卢作孚루쮸어푸 (1893-1952) 루쭈어푸 선생은 현재 시난대학이 위치한 베이베이구에서 향촌건설사업의 바탕을 만든 애국실업가이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했으나 독학을 통해 젊은 시절 언론사 기자, 사업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에, 장강의 지류인 가령강 삼협에서 주로 운항하는 民生민셩이라는 여객, 물류 선사를 운영한다. 이 지역은 쓰촨의 4개 지방이 교차하는 교통요충이었던 탓에 무장강도단이 수없이 출몰해서 인민들을 괴롭혔는데, 이들을 토벌, 단속, 교화하기도 하고, 특히 전시에는 사업을 접고, 항일전쟁의 병참, 물류, 군인 호송을 담당하였으며, 수익의 상당부분을 사회사업에 투자였는데, 대표적으로 베이베이 지역의 도서관, 공원, 운동장 등 인프라를 설립하는데 진력하여, 베이베이에는 지금도 당시 만들어진 도시계획을 상당부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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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당시 학생들과 함께 만든 공원에는 루쭈어푸 선생의 조상이 남아 있다.

기념관을 거쳐 도착한 향촌건설학원의 회의실에서 현지의 몇몇 전문가들과 방담을 가졌다. 이날 참석하신 분들은, 현지의 농촌에서 다양한 향촌건설 사업을 벌이는 인류학자, 충칭의 파머스 마켓 설립자, 충칭의 농경문화 박물관 관장과 향촌건설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청년들이다. 충칭의 사례를 듣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홍동과 풀무학교의 사례, 한국의 6차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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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회의가 끝나고 충칭의 대표음식, 충칭 훠꿔를 함께 즐겼다.

이튿날은 아침 일찍, 충칭 교외의 유명한 CSA 공동체 농장 合初人을 찾았다. 거리로는 하루를 묵은 베이베이구에서 80KM 정도라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판단했는데, 실은 농장 근처 10킬로미터 지점에 이르자 포장도 잘 되지 않은 깊은 산골 마을로 접어들면서 장소를 찾기에 매우 애를 먹었다. 와중에 안개의 도시 충칭답게 10여m바깥을 볼 수 없어서 좁은 산길에서는 더욱 위험스럽기까지 한 경로였다. 가까스로 찾은 농장은 실은, 이미 폐교가 된 이곳 마을의 초등학교, 이곳을 설립한 분은 충칭 사회과학원의 고참연구원인 ZHU Yi주이 선생이다. 주이 선생은 2년전에 충칭을 찾았을 때 뵌 적이 있고, 이후에도 이런 저런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이 곳 농장을 직접 방문하게 된 것은 처음이다. 10년도 전에 무려 50무 (약 일만평)의 마을 땅을 빌려 시작한 이곳 프로젝트는 실은 인력 부족으로 많은 땅이 활용되고 있지는 않았다. 조금 더 많은 이들이 이곳에 정주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실은 청년 한명이 4년째 거주하면서 자연농법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있고, 주이 선생님은 계속 도시와 이곳 마을을 오가고 있다. 내년에 은퇴하면 이곳으로 이주할 예정이라는데, 여하튼 실제 풀타임 인원은 이렇게 두명이고 나머지는 도시의 자원봉사자들이 전부라고 한다

이곳에서 키운 채소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보내어 지는데,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 한참 배송준비중이라 일손을 거들고, 바로 같이 점심 식사 준비를 했다. 올해 주이 선생님이 이주를 하면 보다 많은 도시 청년들의 인턴과정을 통한 프로젝트 참여를 권할 생각이기도 하고, 4년에 걸쳐 매번 어려움을 겪은 소비자 협동조합의 육성에도 힘쓸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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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이 초등학교 교사를 짓는데 절반의 금액을 보탠 것은 한때, 충칭의 프로축구단 감독을 맡았던 한국인 이장수씨라고 한다. 새로운 교사가 만들어지고 얼마 안되어, 중국도 농촌 학교 통폐합이 실시되는 바람에, 이곳은 폐교가 되고, 지금은 유기농 농장의 생산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다행히 앞으로 이 커뮤니티 농장의 많은 활동의 근거지로 사용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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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이곳에서 자연농법으로 키운 채소의 도시 배송준비과정을 돕고 있는 한국 방문자들

충칭 시내로 저녁 나절 돌아와서 침대 열차를 타고 대회장소인 귀주로 향했다. 귀주나 충칭 모두 산악지역인지라, 산간지대를 통과하는 기차이다. 지금은 고속철이 사통팔달인데, 마침 이곳은 개통을 몇달 앞두고 있는 상황이고, 우리는 좀 느린 기차를 탈 수 밖에 없어서 야간 열차를 택했다.

새벽 6시반에 도착한 귀주의 铜仁통런역, 우리가 가장 일찍 도착한 내빈일 터이긴 한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대회를 지원하는 공무원들이 영접을 나와 있었다. 그래서 호텔까지 편안하게 도착. 기차역 근처를 어슬렁 거리며,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조금 느지막히 대회 장소인 호텔을 찾을 예정이었는데 천만 뜻밖의 황송한 대접을 받았다. 여하튼 기차에서 약간 모자랐던 잠은 편안한 호텔 객실에서 보충하고, 오후에는 역시 대회측에서 미리 준비한 투어 코스에 참가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대회 현장에 도착해서 합류한 상황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통런시의 일반 관광지가 아니라, 농업 관련 생산 기지들이었는데, 우선 통런시의 특산물인 땅콩과 이런 저런 콩류로 안주거리 스낵 등을 생산하는 식품 공장. 그리고 두번째로는 역시 얼마전에 만들어진 대규모 화훼 이벤트 단지. 두곳 모두, 최근 1~2년 사이에 조성된 곳들이라 아직은 안정되게 운영이 되고 있다기 보다는 이런 저런 준비중이었고, 주마간산격으로 훑고 지나가는 정도로 만족했다.

대회가 시작된 이튿날, 개막식을 치루기 위해 오전부터, 이곳 지방 정부의 인민대회당으로 향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참가자들외에 이곳 지역의 마을 단위까지 행정대표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관이 지원을 하는 대부분의 중국 행사가 그러하듯이, 절반 이상의 시간은 내빈 소개나 고위 관료들의 치사로,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으나, 그래도 귀주를 대표하는 소수민족의 다채로운 공연도 이채로왔고, 개막식의 꽃인 키노트 스피치는 세명중 두명이 한국 연사인지라, 나름 긴장감 있게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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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개막식 키노트 스피치, 홍동마을 청년대표로 참석한 신소희 일소공도 사무국장이 홍동마을과 풀무학교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오후에 다시 대회장인 호텔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발표와 토론이 시작되었다. 개막식에서 키노트 스피치를 한 한살림의 윤형근 상무와 홍동 마을학회 일소공도의 신소희 사무국장은 주제 논단에서 별도로 좀 더 긴 시간 동안 준비한 주제로 발표할 기회를 가졌는데, 역시 많은 중국인 참가자들이 관심을 갖고 두분의 강연에 참석하고, 적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특히 중국 CSA 연맹의 많은 성원들이 중국내에서도 소비자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윤형근 상무도 참여한 소비자 협동조합 논단은 많은 참석자로 회의장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윤상무의 뒤를 이어 받아, 호스트인 실옌 박사가 중국내의 유기농 판매 현황과 안정되고 수익성 있는 유기농산품 판매망 구축의 어려움을 설명했고, 연이어서 중국내에서 유기농 생산 판매조직을 운영하는 몇명의 발표가 이어졌다. 바로 쉼없이, 중국에서 어떻게 좋은 판매망을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소그룹 브레인스토밍 워크숍이 진행됐다. 이 워크숍은 실옌 박사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한살림을 초청한 주요한 이유이기도 했는데, 의욕은 좋았으나, 시간적 제약 등으로 인하여 원하는 정도의 성과를 거두기는 좀 역부족인듯했고, 다양한 의견들이 산발적으로 제시되는 것에 그쳤다. 윤형근 상무와 한살림 참가자들도 함께 한 소그룹에는 역시 한살림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중국인 활동가들이 모여 들어 질문이 끊이지 않았고, 윤상무를 포함한 한살림 사람들은 참을성있고 성의있게 답변을 해주었으나, 역시 시간이 부족해서 원하는 만큼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중국어가 능통한 한살림 직원 윤다님씨가 참여해서, 통역을 맡기도 했고, 중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위챗-웨이신’ 아이디를 교환했기 때문에, 귀국후에도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기에, 보다 장기적인 교류의 길을 확실히 터놓은 셈이다.

이날은 다음날 일정에도 불구하고, 저녁 식사후에도 일정이 계속 이어지는 강행군이었는데, 주제 논단뿐 아니라, 소논단이 무려 15개 트랙이나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어떤 회의장은 그러다보니 무려 밤 11시까지 토론이 진행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다음날 빡빡한 회의 일정이 이어져서, 나머지 두분의 한국 참가자도 무사히 발표를 마쳤고, 오후에는 폐막식이 진행되었다. 12월31일인지라 이후 절반 정도의 참가자는 귀가를 재촉했고, CSA연맹 회원들은 저녁에도 계속 회의를 진행했다. 한국팀은 저녁 식사후 참가자중 독방을 썼던 한 분의 방에 모여, 아쉽게나마 맥주와 가벼운 안주를 함께 하며 한국시간에 맞춰 한시간 일찍 2018년 신년을 자축했다.

한국팀의 귀국 포인트는 사천성의 청뚜였고 1월1일 밤 비행기를 예약해두었기에 1월1일 당일을 귀주에서 어떻게 보낼 것인가 계획을 수립할 때부터 고민이 많았다. 당초엔 근처의 유명한 관광지인 봉황고성 (정확히 말하자면 귀주성이 아니라 호남성)에 놀러 가는 것이었는데, 연수가 목적인지라 관광지에 가는 것도 흥미가 덜했고, 그것도 사람이 미어터질 정초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뜻밖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 대회 참가자중에 귀주의 인근 도시에서 온 쉬샤오링이라는 청년을 알게 되었는데, 쉬샤오링이 고향의 산간마을에서 벌이고 있는 향촌건설 사업을 둘러 보게 해주었다. 1월1일 새벽부터 일어나서 그를 따라 그의 고향인 카이리시로 향했다. 이곳은 통런시에서 200 KM정도 떨어진 곳인데, 80 KM가량은 택시로 이동하고, 나머지는 고속 열차로 이동해야 했다. 물론, 기차역에서 다시 20~30KM 가까이 산길 이동이 이어졌다.

우리가 도착한 산간 마을은 전형적인 다랭이 논, 목조주택이 즐비한 귀주의 소수민족 마을. 쉬샤오링은 이곳 산간 마을은 중국 농촌의 축쇄판 같은 곳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이 마을은 외지인이 보기엔 알 수 없지만, 중국내의 소수민족 중에서도 정부의 분류에 등재되지 않은 ‘비주류’ 소수민족인 ‘라오쟈족’ 마을이라고 한다. 귀주성의 주류 소수민족인 ‘묘족’ 출신의 쉬샤오링이 라오쟈족의 내력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기로는 다른 소수민족인 요족과의 분쟁으로 멸족 당할 위기를 가까스로 피해서 이곳에 도망쳐서 근거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소수민족은 전통적으로 말을 이용해서 짐을 나르거나 농사를 짓고, 개를 이용한 사냥을 하고, 기본적으로 사냥꾼의 피를 이어 받았다고 하는데, 호전적인 측면이 좀 있는지, 이날도 민족 명절을 맞아 (신정도 설날도 아닌, 자체적 명절) 소싸움, 개싸움, 새싸움이 마을 장터에 펼쳐진 것이 이채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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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마을집집마다 말을 한마리씩 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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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이곳 사냥개는 용맹하기로 이름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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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 방금 싸움을 마친 싸움소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두상에 상처로 피가 흥건하다.

이곳 마을도 다른 중국 농촌과 마찬가지로, 인구의 자연감소가 진행되고 있으나, 연근해의 도시로 일하러 나갔던 청년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와서 양돈업을 시작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마을에는 전통적으로 집집마다 다양한 가축을 키우고 있었고, 돼지 한두마리도 기르기 마련인데, 양돈업을 시작한 경우는, 규모가 있다보니, 가축폐수를 처리할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하여, 마을의 새로운 오염, 악취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실은 이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 온 이유는, 연근해의 양돈업이 야기한 축산폐수 문제가 날로 심각해 지면서, 중국 정부가 많은 축산 농가를 폐쇄 했기 때문인데, 이곳에서 일하던 귀주 청년들이 이 문제를 고스란히 산골 마을로 짊어지고 온 셈이다. 쉬샤오링은 장기적으로 친환경 축산법을 마을에 도입해서, 귀촌한 청년들이 생계문제와 환경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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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1 양돈농가의 어미와 새끼돼지

실은 마을의 또 다른 전형적 농촌 문제는 쓰레기 처리인데, 산간지역인 이곳에서 비가연성 쓰레기는 그냥 하천이나 계곡으로 던져져서, 결국 하천을 오염시키는 역할을 한다. 쓰레기통을 설치해서 모아보기도 하지만, 결국 누군가 이 쓰레기를 처리해야 하고, 어딘가에 묻어야 하니, 또 다른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그리고, 어찌 됐든 쓰레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발밑에 묻힐 뿐이다. 외부에서 만들어진 산업문명의 생산물은 다시 수거되어 도시로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이 아름다운 산골 마을의 기슭에 묻혀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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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2 간이 쓰레기 소각장과 계곡에 버려진 각종 쓰레기들

마을의 이곳저곳을 둘러 본 후에, 쉬샤오링와 함께 활동하는 마을주민 량따이칭씨가 준비해 준 귀주성 별미, 쑤안탕위를 그의 나무집에서 함께 먹었다. 밥도 그가 직접 지은 유기농 쌀, 그 쌀로 빚은 술에 또 그가 유기농으로 재배한 블루베리 담금주까지, 대부분의 일행은 난생 처음 접하게 된, 중국 농촌 마을의 낯선 경험에 여행의 노독도 잊고 신년의 별미, 별주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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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3 귀주의 산골마을 농가에서 수안탕위를 함께 나누는 일행

식사를 마치고, 다랭이 논길을 따라 읍내로 돌아갔다. 라오쟈족의 신년 명절 투우장에 마을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죄다 모인듯했다. 그리고 장터 대부분을 점한 먹거리는 귀주인들이 즐기는 ‘개고기’. 중국내에서도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귀주사람들과 조선족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인데, 여름철 보양식인 우리와 달리 사시사철 즐긴다고 하니 귀주인들의 개고기 사랑이 훨씬 각별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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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4 다랭이 논이 아름답게 펼쳐진 귀주의 산간마을

길을 되짚어 통런으로 돌아 오고, 일행은 밤 비행기로 청뚜로 향했다.

새벽에야 도착한 빡빡한 일정임에도 청뚜에서 주어진 이틀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일행은 또 걸음을 재촉했다.

첫날은 실은 청뚜의 손꼽히는 관광지 도강언을 방문하기로 했다. 도강언은 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수리 프로젝트로서 2천년이 넘도록 사천성, 특히 그 성도인 청뚜의 풍요로움을 보장하게 해준, 손꼽히는 농업문명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2년 반전에 이미 방문해 본 적이 있어서, 이 위대한 인류 문화유산의 감동은 다른 팀원들에게 양보하기로 하고, 청뚜 시내에 머물면서, 일행의 다음 행선지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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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5 도강언은 기원전 256년 진나라의 관료인 리삥 부자가 이곳에 부임해서 만든 물길이다. 도강언을 만들어서 늘 범람하던 민강을 관리하고, 청뚜 평야는 천혜의 농업지대가 되어 2천년 넘는 사천성 문화 융성의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

청뚜 교외지역에 위치한 도강언을 방문한 이들이 시내로 돌아 온 것은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필자는 오후 일찍, 다 함께 방문하기로한 청뚜의 유기농 농산물 판매업체인, ‘천안생활’을 찾았다. 천안 생활은 청뚜에서 '파머스 마켓, '어머니들의 공동구매 클럽'과 함께 대표적인 유기농 소비자운동 단체, 사회적 기업의 하나이다.

2013년 연말에 사업을 시작한 이들은 현재 상근자 3명, 파트타임 2명 이렇게 5명이 운영하고 있다. 이날 우리를 맞아준 것은, 창업 멤버인 류샤오보씨와 장샤오마오씨. 이들은 원래 소비자로 스스로 좋은 음식을 먹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자원활동가, 파트타이머로 변신을 하다가, 결국은 전업 종사자가 되었다. 중국의 대도시 근교에는 이와 같이 도시 소비자에게 꾸러미 배송을 하는 CSA농장과,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다양한 채널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나, 수요와 생산량에 비하여, 그 발전이 매우 더딘편이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션전 등의 1급도시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청뚜와 같은 2급 혹은 1.5급으로 불리는 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청뚜는 2급도시이지만, 일찍부터 농경문명이 발달해 온 도시 답게 대단히 초기단계부터, 유기농 CSA 운동이 활기를 띄어 왔다. 노작교육을 중시하고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을 제안하기도 한 영성주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에 의해 만들어져서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대안학교 발도르프 학교가 12년전에 이곳에 중국 최초로 개교하여, 유기농/ 파머스 마켓 운동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고, 역시 중국 최초의 CSA농장이라고 할만한 고씨 농장이 2007년 경부터 도시 소비자들에게 유기농 채소 꾸러미를 직접 배송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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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6 장샤오마오씨가 한국인 방문객들에게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여하튼 본격적인 영업을 한지는 약 3년 남짓 된다는 이 업체는 현재 20여 생산자, 1,000여 가구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유기농 가공품, 과일 등의 100여 품목을 위챗을 통해서 판매하고 있다. 중국내에서도 전체 시장 규모는 작지만 역시 중규모 이상의 자본 투자에 의한 유기농 시장이 더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데, 이들에게 이들 업체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바로 대답이 나온다. “우리 소비자들은 생산자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생산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물건을 구매합니다. 기업형 유기농 판매업체들은 생산자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브랜드 신뢰도와 이미지를 이용해서 소비자를 유인하는 것이니, 저희와는 근본적으로 접근 방법이 다르지요. 좋은 생산자를 좋은 소비자와 연결 시키는 것이 바로 저희의 강점이고, 이 일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인 참가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한살림의 윤형근 상무가 덕담을 건네는 것으로 아쉬운 마무리를 했다. “저희 한살림도 30년전에 여러분이 지금 가진 사무실보다 더 보잘 것없는 점방 하나를 서울의 골목에 여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60만 가구에 유기농 생산물을 공급하는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여러분도 꾸준히 지속해 나가면, 분명히 성과를 거두실 것입니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영화 호우시절에서 주인공 정우성이 중국인 애인 까오유엔유엔과 데이트를 나눈 청뚜의 인사동 ‘콴자이 샹즈’를 찾았다. 이곳에서 청뚜의 대표적인 주전부리들을 시켜 먹었는데, 너무 맵고 얼얼한 사천 음식의 풍미탓인지, 대부분이 젓가락을 일찍 놓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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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7 콴자이샹즈는 고풍스런 건물과 멋진 상점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튿날은 밤비행기로 귀국하기로 한 탓에, 마지막으로 하루 더 청뚜를 돌아볼 시간이 주어졌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앞서 언급한 고씨 농장. 청뚜의 북서쪽 교외에 위치한 피현郫县 安龙村이란 마을에 있다. 필자는 2년전에 이곳에서 일주일간 우퍼를 한 인연으로 오랜만에 연락을 취했다. 마침 농장주 까오이쳥씨와 역시 이웃에서12년째 유기농 농장을 운영하는 왕청씨가 CSA대회에 참석했기 때문에 미리 방문 수락을 받아 놓은 터였다.

이곳에서 일찌감치 유기농이 시작된 것은 2005년, 지금도 77세의 나이에 정정하게 매일 농사일로 바쁘신 까오씨의 아버지는 '깨인 농민'으로 안전한 먹거리 생산이 소비자와 생산자, 그리고 자연을 모두 살리는 길이라는 신념으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서 유기농을 시작하게 하는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 또 한가지, 이곳의 하천이 청뚜 시내로 흘러 들어 식수원이 되기 때문에,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해서, 농약과 비료를 많이 사용하는 관행농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역의 환경 NGO, 향촌건설 단체 등이 함께 해서, 유기농 보급에 앞장서 왔다.

2년만에 찾은 이곳 농장의 변화라면, 근처 마을로 나가 역시 농민들과 함께 유기농업과 생산자 협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노력하던 까오이청씨의 여동생 까오칭롱씨가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고씨 농장 운영에 함께하고 있는 것. 까오칭롱씨는 유기농을 넘어서 로컬푸드 운동에 관심이 많고, 푸드마일리지를 줄이기 위해서, 청뚜시내에서도 피현에 근접한 청뚜시의 북서부 지역 고객만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침 한국 로컬푸드운동에 대해서 연구하시는 허남혁 선생이 학교 급식과 농민 직매장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소개하자,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듣는다. 고씨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로 만든 훠꿔를 얻어 먹고, 밭을 둘러 본 후, 역시 근처 왕청씨 부부의 유기농 농장을 둘러 보았다. 왕청씨는 원래 농민이고, 부인은 도시에서 요가선생님으로 일하다가, 이곳으로 귀농귀촌한 도시민. 그래서 도시 소비자들을 어떻게 적극적인 참여자로 끌어들일 것인가에 관심이 많다. 이미 12년째 운영해 오고 있는 유기농 농장이 질적인 도약기를 맞을 때가 됐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 함께할 주변 농민들과의 협력 문제이다. 여러가지 활동은 한 농가만으로는 역부족이고, 결국 주위의 유기농 농가들이 생산자 협동조합 형태이든, 파머스 마켓이든, 함께 할 때, 부담과 성과를 나누며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했을 때, 작물 생산량 등을 어떻게 조화롭게 분배해 나갈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이곳 마을에는 8가구의 농가가 유기재배를 하고 있는데, 초반에는 함께 하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은 ‘따로 국밥’을 만다고 한다.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일에 쉬운 것은 없다. 여하튼 모두가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니, 조금씩 양보하면서 함께 할 방법을 찾아봐야 되지 않겠냐는 좀 식상한 그러나 유일한 정답을 남기고 총총,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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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8 고씨농장의 유기농 채소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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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 피현은 중국 요리의 가장 유명한 양념중 하나인 두반장이 기원한 곳이다. 왕청의 농장에서는 유기농 재료를 사용해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두반장을 제조하고 있다.

청뚜를 끝으로 8일간의 짧지 않은 일정이 끝났다. 중국의 대안영역, 특히 생태농업 소농, 대안먹거리 운동 영역을 한국에 조금씩 소개하는 일도 얼추 3년이 다 되어 간다. 작은 행보가 하나 하나 이어지면서, 좀더 많은 이들이 중국의 변화에 눈뜨기 시작하고, 또 원래 관심을 가지고 계시던 분들이나 단체도 조금씩 더 가깝게 그 변화를 느끼기 시작하시는 것 같다. 느리지만 작은 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그래서 큰 길이 열리길 기대해 본다.

관련 기행문

9 - 成都청뚜 安德镇안더젼 安龙村안롱춘 高家农园고선생 농장, 6월20일 ~ 6월24일 2015년
https://www.evernote.com/l/Aan1NqaBy2pFmrspTecuthSaSU7edkEd7c4

10 - 흘러흘러100년 长江창쟝 ! 重庆충칭 6월27일 ~ 7월1일, 2015년
https://www.evernote.com/l/Aan-V1prkwFDbbjvNN8W-TbNUORtkYEfETw

11 - 차나 한잔 하고 가시게 ! 成都청뚜 6월14일 ~ 6월20일, 6월25일 ~ 6월26일, 7월2일 ~ 7월6일, 2015년
https://www.evernote.com/l/AakVis1-uJhEppu9ehiEN6fTjYbBL8DdC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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