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한국의 임칙서를 꿈꾸다?
지난 2018년 1월 11일, 한국의 박상기 법무장관께서는 “’가상증표’ 투자는 도박과도 같으며, 지금 300만 국민이 강원랜드에 가서 도박에 빠져 있는 상황과 같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거래소 폐쇄 등 강력한 규제 조치를 시행할 것이며, 이는 현 정부의 모든 부처가 두루 공감하는 사안이라며 서릿발 같은 표정과 근엄한 어투로 코인 투자자들을 꾸짖듯이 기자회견 하신 바 있습니다.
그날 전체 코인 시장의 시총은 대략 100조가 날아갔으며, 박상기 장관께서는 ‘100조원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코인 투자자들의 엄청난 반발을 야기하며, 이른바 ‘코인4적’의 첫머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신 박장관께서는 이후 청와대에서 반발을 무마하고자 팽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머쓱해졌습니다. (설마 청와대와 아무런 공감 없이 저렇게 막 내지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는 분명 청와대 및 총리실의 의지가 담긴 기자회견이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본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드러나면서 부동산은 투자고 코인은 도박이냐 하는 항의도 많이 받았습니다.
박장관이 어떤 분이든 간에 그보다는 그분께서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한점 망설임도 없이 코인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생각을 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야 대한민국 고위 관료들의 코인 시장에 대한 이해와 시각을 파악할 수 있으며, 향후 한국 정부가 코인 관련하여 어떤 정책을 펼칠 지에 대해서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국가적 중요 이슈에 대한 고위 관료의 처사 및 그를 둘러싼 정치적 움직임에 관한 재미있는 역사적 사례가 있습니다. ‘아편전쟁’이라고 불리는 세계사적 사건의 배경이 되는 청나라 흠차대신 임칙서의 일입니다.
1793년, 영국 왕 조지5세는 매카트니 백작을 단장으로 한 대규모 사절단을 청나라에 파견합니다. 서구 열강의 식민 침탈 프로세스는 본래 총부리 겨누면서 “우리랑 장사하자.”로 시작하기 마련입니다만, 청나라 같은 떡대 좋은 놈에게는 다짜고짜 그렇게 할 수 없었으니 좋게 선물 들고 가면서 대화를 시도한 것이죠.
매카트니는 청나라 황제 건륭제를 만나 선물을 전달하고 통상을 원하는 영국 왕의 친서를 전달합니다. 그러자 건륭제가 하신다는 말씀이,
“먼 변방의 소국 왕이 기특하게도 내게 충성을 바치고자 하는구나. 내 그 뜻은 가상하여 선물을 받아 주고 답례도 보내겠노라. 하지만 천자의 나라에는 없는 게 없으니 굳이 우리는 통상을 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그대의 왕에게 가서 자신의 나라를 어질고 바르게 다스리는 데나 열심히 노력하라고 전하라.”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영국에게 그렇게 시건방을 떨 자격이 당시 청나라에게는 있었습니다. 이른바 현제 3대를 거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청나라는 비트코인이 2만불 찍었을 때 마냥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점유하고 있었고, 국가적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다 못해 우주로 날아가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건륭제의 손자인 도광제 시기에 이르러 그 자신감은 아편전쟁이라는 처절한 응징을 당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 임칙서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영국은 청나라로부터 대량의 차를 수입했는데, 워낙 영국 상류층들이 차를 즐기다 보니 무역 적자가 어마어마하게 발생했습니다. 인도 식민 경영을 통해 막대한 은을 벌어들였던 영국이지만 청나라로 흘러가는 은의 양이 많아 심각한 적자를 보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영국은 약장사를 시작했고, 영국이 청나라에 몰래 몰래 팔아제낀 엄청난 양의 아편으로 인해 청나라에서는 대량 뽕쟁이 양산 시대가 열렸습니다. 아편을 사기 위해 백성들은 자식까지 팔았으며, 거리 곳곳에 한국의 PC방보다 더 많은 수의 아편굴이 있었습니다. 뽕쟁이들은 대낮부터 일은 하지 않고 아편에 취해 몽롱한 나날들을 보내다 차츰 병들어 죽어갔습니다.
청나라의 후광 총독, 즉 도지사급 고위 관료였던 임칙서는 영국에서 밀수입된 아편 때문에 수많은 청나라 백성들이 아편 중독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참다 못해 황제에게 상소를 올리고, 황제의 칙명을 받아 전권을 지닌 흠차대신으로 광저우에 부임했습니다.
흉상을 보면 느끼시겠지만 이 분도 박장관님 만큼이나 빡세게 생기셨습니다.
완장도 찼겠다 거칠 게 없었던 임칙서는 영국의 아편 상인들을 협박하고 그들의 아편을 전부 몰수해 바닷가에서 약 240만 근의 아편을 모두 태워버리는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니들 앞으로 아편 몰래 들여왔다가는 X된다 하는 식의 경고성 연출이었던 거죠.
하지만 이때 야마가 돌아버린 영국은 군대 파병을 결의하고,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영국군에게 노쇠한 청나라 군대는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사실 영국이 먼저 청나라의 강경책을 유도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싸우고 싶은데 니가 선빵 좀 날려줘라 이 뜻이죠. 이 전쟁이 바로 1차 아편전쟁입니다. 그리고 청나라 조정은 “임칙서 니가 강경책을 주장했다가 나라에 피해를 입혔잖아!” 하며 그를 유배시키고 영국과 굴욕적인 협상을 하니 이것이 난징조약입니다.
그러고도 제정신 못 차렸던 청나라는 또 까불다가 2차 아편전쟁에서 유럽 연합군에게 호되게 당하고, 비로소 현실을 어느 정도 인식합니다. “아, 난 밥이 되었구나!” 하는 인식을요.
당시 비트코인 6천불이 또다시 뚫려서는 안 된다는 각오처럼 최후의 지지선으로 청나라 군대에서 최강의 무력 집단으로 인정받던 몽고 팔기가 투입되었습니다. 헌데 장렬하게 돌진하던 최강의 몽골 기병들이 유럽 연합군의 신식 대포와 소총 앞에서 허무하게 산화하는 장면에서 당시 동양과 서양이 지닌 현격한 기술문명의 차이를 양측 모두 여실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임칙서가 아편 밀수를 금지한 이유 중에는 아편에 중독되어 허덕이는 청나라 백성들이 불쌍하고, 그들을 도탄에서 구제해야겠다는 생각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박상기 장관님께서도 코인이라는 도박에 중독되어 실체가 없는 디지털 쪼가리에 소중한 재산을 갖다 바치는 우매한 코인 투자자들을 구제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을 겁니다.
박장관께서는 실제로 코인 투자를 도박이라고 단정 지었던 것 같고, 코인 정책 입안을 위해 구성된 TFT에 배속된 법무부 인력들은 모두 슬롯머신 수사 전문 검사들이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즉 제 2의 바다이야기 같은 코인이라는 국가적 유행의 도박을 철저히 규제해서 뿌리 뽑아버리겠다는 의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치경제적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정치가들의 순수한 선의를 믿지 않습니다. 선의에 기반한 상대적으로 더 괜찮고 더 의로운 정치가가 있고, 그나마 선의조차 찾아볼 수 없는 악랄한 정치가가 있을 뿐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선의로 충만한 정치가라 할 지라도, 주변 여건의 정치경제적 흐름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게 정치인의 굴레이기 때문입니다.
청나라 황제가 아편을 단속하려고 했던 근본적 원인은 아편 밀수로 인해 영국으로 유출되는 대량의 은이 청나라 조정의 재정을 악화시키고, 나아가 아편 중독으로 인해 일을 제대로 못하는 백성들 때문에 세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적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솔직히 청나라 황제가 아편 중독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얼마나 불쌍히 여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정부가 코인 시장을 단속해야만 했던 이유는 원화로 구입할 수 있되 아무런 제재 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원화 유출 효과를 내는 것이 코인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중국인들이 대규모 환치기를 하는 돈놀이터가 바로 한국 코인 시장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아울러 코인 시장에서는 합법적으로 세금을 걷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원화 가치 조절 정책을 펴가며 경제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던 한국 정부에게 있어서 코인 시장이라는 통제되지 않는 시한폭탄과 같은 욕망의 용광로는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정부가 경제 성장을 잘 이뤘다는 주요 지표가 되는 것은 코스닥 시장을 비롯한 주식 시장 등 기존 경제 영역의 분야이지, 코인 시장은 아닙니다. 비트코인이 10만불 찍었다고 해서 현 정부가 일 잘했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던 정부 입장에서 주식 시장에서 돌아야 할 돈들이 엉뚱하게 코인 시장에서 맴돌고 있으니 절대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현 정부는 이런 식으로 코스닥 시장을 살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경제적 이유와 더불어 정치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청나라에서는 백성들에게 하등 관심도 없는 관료 집단들이 소속 정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아편 중독이라는 사회 현상을 들먹이며 정적을 공격할 때 사용하던 전례가 있습니다. 심지어 고위층에게도 이미 당연한 유행이었던 아편이 결정적일 때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빌미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코인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채굴이 뭔 지도 모르는 영감탱이 조차 나서서 블록체인 기술 활성화니 뭐니 아무 말 대잔치를 하면서 현 정권을 공격하고 나섰습니다. 차트가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다는 식의 화법을 늘 정치적으로 구사하시는 분도 자기가 전문가인 양 행세하면서 현 정권의 코인 정책을 꼬투리 삼아 정치적 공격의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그런 마당에 이미 과거 바다 이야기라는 엄청난 사회적 충격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현 정권 인사들은 시작부터 코인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출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블록체인? 그게 뭔 진 모르겠는데 어쨌든 코인 투자는 도박이야! 나빠!”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현 정권의 코인 정책 기본 마인드입니다.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과 더불어 블록체인 개발 전문가들의 기술적 충고가 이어지고 나서야 아이쿠야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긴 한가 보다 했는지 태도가 조금 바뀌긴 했습니다. 그래봤자 블록체인은 장려하고 코인 투자는 규제한다는 등 마치 쌀 농사는 지어야 하지만 밥은 먹으면 안 된다는 식의 허튼소리가 작렬하고, 여전히 거래소 폐쇄는 가능한 옵션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정치적 간 보기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코인 투자는 굉장히 나쁜 사회적 행위이다.” 라는 현 정부 고위 관료 집단의 인식을 이루는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유시민 선생 같은 분은 그런 현 정권의 기본적 입장을 충실하게 반영한 어용 지식인의 행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게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 어용 지식인이라고 자칭하는 것 자체가 저런 의도에서입니다.)
청나라 정부는 아편에 대한 강경책의 대표자로 임칙서를 내세웠고, 그 결과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한국 정부는 코인 시장에 대한 강경책의 대표자로 박상기 장관을 내세웠고, 그 성과는 꽤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활황세가 끝날 무렵 마지막 탈출구를 열어 준 셈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과 코인 투자라는 사회, 과학적 이슈에 대한 범사회적 논의의 장을 마련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 건강한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한 진통이었습니다.
다만 그 진통이 코인 투자자들에게는 꽤나 갑작스럽고 강하게 찾아와서 문제였지요.
투자자들 입장에서 전세계적 비트코인 대하락장의 주범까지는 아닐지라도, 주요 코인 투자국의 법무부 수장이 그런 강경 발언을 던지면서 대폭락의 트리거 중 하나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감정적으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이런 흐름을 보면서 저는 그저 박상기 장관께서는 아편과 맞서 싸운 임칙서의 심정으로 코인 시장을 규제하고자 했었다 하는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분께 큰 감정도 없거니와 왜 그러셨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지방 선거가 다가오고 코인 시세가 위로든 아래로든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이는 와중에 정부 관계자의 코인 관련 발언이 몇 번 나온다면, 분명히 코인은 다시금 정치적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우리의 수익과 손실에 영향을 미치겠지요.
하지만 코인이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그와 같은 정치사회적 흐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정치적 쟁점화는 늘 발생하는 호재와 악재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투자자들은 모든 호재와 악재를 결국 스스로 감당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 또한 투자 행위의 일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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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와 임칙서와의 대응은 조금 이상한 면이 있네요.
임칙서는 사회악인 아편을 막으려고 한 인물, 중국에서는 존경 받는 인물로 생각됩니다.
힘이 약해서 나라가 침략당한 것이, 임칙서의 잘못은 아니고요..
좋은 글 잘보고 리스팀해갑니다. 늘 깊이 있는 포스팅에 감사 드립니다 :)
늘 잘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kalebak 입니다. 글을 참 잘쓰시네요~~ 저도 리스팀 합니다.
감사합니다 결국은 정치가 후회할겁니다
글 정독 했습니다. 혹시 다른 단톡방은 없나요? 입장이 불가하네요
지금 그방 방장님께서 실수로 운영 정책 위반 제재 상태이십니다. 2주 동안 제대가 풀리지 않아 방 입장이 안된다고 하시네요; 제재가 풀리는 대로 다시 안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공감가는 내용이네요
통찰력있는 글 공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