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in #camino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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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더운 여름날 나는 스페인의 산티아고의 길을 걷고 있었다.
나의 20대는 그랬다. 어느 날 문득, 그 곳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들때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산티아고의 길이 나를 불렀다.
간단한 스페인어 몇 단어를 적어내려간 다이어리와, 간단한 배낭 하나들고 겁도 없이 나섰다.

나름 완벽히 계획을 세웠다고 자신했건만 나의 계획은 첫날부터 틀어지고 말았다. 악명높은 러시아항공을 타고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리다 잠이들어버렸다. 분명 오래 잠을 잔것같은데 눈 떠보니 비행기는 아직도 활주로 위에 있었다.
그렇게 몆시간이 흐른 후 비행기는 나를 스페인으로 데려다주었다. 첫날 밤에 스페인에 도착하는 일정이라 한국에서 미리 한인민박을 예약하고 공항픽업까지 부탁한 상황이었다. 민박집에서는 오지않는 나를 기다리다 결국 다시 돌아가버렸고 민박집으로 전화하자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화가 난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데리러 올테니 어느 터미널에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그날 밤 나는 결국 공항에서 노숙할 수밖에 없었다. 마드리드 공항이 그렇게 큰 줄 몰랐고,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말한 터미널은 가도가도 나오지 않았고, 아저씨께 다시 전화하기는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첫날을 공항 노숙으로 시작하였다. 사람들에게 겨우 묻고 물어 셔틀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산티아고의 길 중의 하나인 부르고스로 향했다.

부르고스에 도착한 나는 패닉상태에 빠졌다. 부르고스가 한국에 대구같은 도시라면 산티아고의 길이 수성구에 있는지 북구에 있는지 어디에 붙어있는지를 알아보지 않고 온 것이다. 결국 지도 한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문제는 스페인어로 물어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뭐라고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영어를 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래도 가다보면 나오겠지 하며 길을 헤메기를 3시간째.. 덥고 배고프고 힘이들었다. 그러다가 한눈에봐도 산티아고의 길을 걷는 순례자로 보이는 외국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가방에 조개껍데기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순례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익스큐즈미하고 말을 걸었는데 그들은 나를 거지로 알고 노땡큐라며 도망가버렸다. 공항에서 노숙하고, 3시간째 땀에 쩔어 핼쓱한 내 행색이 거지처럼 보였을게다.

그렇게 몇시간을 더 헤메다 눈물이 펑펑 나오려던 참에 기적적으로 산티아고의 공식숙소인 알베르게를 찾았다.
피곤한 몸을 뉘인채 잠이들었다. 오후 6시쯤 잠이 든 것 같은데 일어나보니 9시가 넘었다. 해가 아직도 중천에 떠있어 낮인줄 알았다.
이렇게 모든게 뒤죽박죽인 채로 산티아고의 길이 시작되었다.
이 노래에 대한 추억을 포스팅하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여행기로 넘어가버렸네.

노란화살표, 조개껍데기만 따라가면 되는 산티아고의 길에서 나는 무수히도 많은 길을 잃었다. 길을 잃었기에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보았고, 나무도 숲도 계곡도 보았다. 2주째 걷기만 한 내 발은 물집투성이었고, 40도의 땡볕을 걸을 때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지만 또 걷다보면 어느 새 혼자가 되는 이 길에서 내게 큰 힘이 되준 것은 이 노래였다.
혼자 길을 걸으며 소리내어 불러보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피니스테레로 가는 길에서 아주 많이..
그와 함께 걸었던 4일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별이 쏟아질듯한 스페인의 밤하늘 아래 그는 혼자 기타를 치고 노래를 했다. 그의 음악이 좋았다. 그의 목소리가 좋았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체코에서 온 그와 스페인어를 조금밖에 할 줄 모르는 나는 말없이 함께 걸었고, 서로 이야기하고 웃었다. 서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 말이 아니라 그 외의 것들로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위해 노래를 하고, 기타를 치고, 어느 가정집에 문을 두드려 음식을 구걸하기도 하고, 알베르게를 구하지 못해 길 위에서 밤을 지새기도 했다.
그렇게 4일의 시간을 우리는 늘리고 늘려 4달처럼 보냈다. 왜 그를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
"우릴 발견했을 땐 너무 낡았고, 제법 여러번 아픔을 견딘 아름답던 존재란걸 알게된 지금, 너무 늦은 건 아닌지.."
최종목적지인 피니스테레에 도착하여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았을 때 우리는 펑펑 울고 말았다. 그도 나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의 파란 눈에서 바다가 흘렀다. 그의 몸에선 바다 냄새가 났다.

"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던 이야기
시작되고 끝이없이 무한히 이어진 얘기
이 모든 걸 밀고 솟아오를듯한 기분
이 길 끝에 긴 호흡소릴 참으며 버틴
날 발견했을 땐 너무 낡았고
제법 여러번 아픔을 견딘
아름답던 존재란걸 알게된 지금
너무 늦은건 아닐까
내가 시린 마음의 문을 열던 한 사람
끝이 아닌 작은 시작을 품고 살아온 시간
끝이 아니란 너의 선택에
제법 여러 번 아픔을 견딘
아름답던 존재란 걸 알게 된 지금
너무 늦은 건 아닌지
아주 덤덤히 미련적인 걸
바라던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본 널 본 순간
너무 차디찬 눈물이 흐르고
눈이 부시듯 너무 선명한
아름다운 존재란 걸 알게된 지금
너무 늦은 건 아닌지
우릴 발견 했을 때 너무 낡았고
제법 여러번 아픔을 견딘
우린 너무 아름다운 존재였던걸
너무 모른건 아닐까.."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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