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좀 더 신뢰하는 법.

in #busy6 years ago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아기는 자기 자신이 슈퍼맨이라도 되는 줄 알며 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곳에 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래에 있다면 그냥 떨어집니다. 떨어지면 머리가 깨지는지 아니면 피가 나는지 모르기 때문에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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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서 다시 배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구나. 자신이 슈퍼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아이와 어른에게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는 '진리'를 아는가 모르는가입니다.

어른이 될수록 못하는 것은 오히려 늘어난다.

아이일 때는 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이것을 하다가 저것을 하고. 또 어느샌가 다른 것을 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엔 산만하다. 집중력이 낮다고 하지만. 단지 이것은 '겁이 없는 도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어른이 되면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그리고 자신이 못한느 이유에 대해서만 100만 가지는 댈 수 있는 핑계를 귀신처럼 찾기 바쁩니다.

우리는 왜 아이들에 비해서 더 겁이 늘어나기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과거의 실패 경험' 때문입니다. 실패 경험을 통해서 '피드백'을 얻지 못했다는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서 불신을 쌓아 올리게 됩니다.

신중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게 없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것. 먹고 있는 것. 만나는 사람까지 모두 변하게 됩니다. 10년 뒤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분명한 건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우리는 변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모든 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방에 누워있는 사람은 내일도 누워있고 다음 주에도 누워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하는 일이 불만족스럽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오랜 시간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찬가지로 망할지 모르는 일이라도 하더라도 작은 것부터 도전한 사람은 미래에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현재에 안주하면 시간만 흐를 뿐. 변화하는 상황에서 내가 얻을 것은 별로 없고. 도전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도전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가 아닌가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생각만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에 갇혀 있다면 결국 '신중함'이 아니라 그냥 안 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변화하는 만큼이 딱 자신을 믿는 만큼입니다.

세상엔 변해선 안 되는 것도 있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 '우정'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결국 변하는 시점이 옵니다. 만약 제가 2살 난 딸을 20세가 되어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사랑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저를 평생 피하기 위해서 성인이 된 아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바라보기에 아이가 성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제 딸이기에 사랑하겠지만. 놓아주어야 할 땐 과감히 놓아주어야 합니다. 사랑이 변화하는 순간입니다. 상황이 변했으니 사랑도 변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변화하는 것이 두렵다고 해서 변화하지 않는다면. 상상 이상으로 더 두려운 상황을 현실로 맞아들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이 변한다는 것도..

자기 자신이 변화하는 것에 대해 극히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겪어보지 않은 일이기에 두려움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멈춰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갖고 계속해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은 안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안전한 생각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더 불안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 알 수록 자신이 생각했던 삶과 거리가 더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월에 의해서 변하게 됩니다. 원치 않는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먼저 나이가 듭니다. 외모가 늙습니다. 그리고 주변이 변합니다. 친구가 떠나거나 나라 전체의 경기도 변합니다. 결국 나의 생각만 멈춰있을 뿐. 세상의 현실은 모든 것이 변해버리게 됩니다. 결국 내가 나를 바꾸거나 남이 나를 바꾸거나 둘 중에 하나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얼마만큼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

먼저 자신을 믿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행동입니다.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람이 자신이 숟가락으로 들어서 입에 넣는 동안. 그것을 먹을 것에 대해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입에 들어갈 것이고 그것을 먹을 거란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는 그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타자를 두드리면서 한 글자 한 글자가 눌린다는 믿음을 갖고 누릅니다. 만약 눌러봐야 글씨가 써지지 않는다면 누가 타자를 두드리겠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모든 것은 변화합니다. 나 역시 변화하고 세상도 변합니다. 한국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베트남이 변하고 아프리카가 변하며. 미국이 변합니다. 이처럼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변합니다. 이 변화를 믿게 되면 드디어 나는 행동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지난 100년간 변화를 보면 세상은 놀랍도록 변화했습니다. 자연이 변했을 수도 있지만. 세상의 변화에 중심엔 항상 사람이 있었습니다. 큰 일을 한 사람도 있지만. 작은 일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공통된 점은 바디가 변화에 일조를 했기 때문에 세상이 변했다는 점입니다.

나 역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세상의 변화에 물방을 정도의 힘을 보태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글. 어떤 영상에 노출이 되면 영향을 받게 되어 자신도 모르게 또 변화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책의 힘이기도 하고 강의의 힘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은 결국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가장 먼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사소한 모든 행동은 자신의 믿음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변화로 이어집니다. 누군가 가만히 있으면 변화하지 않는다는 거짓을 가르쳤다면 이제 그런 믿음은 버려도 좋습니다.

자신을 믿는 법을 왜 가르치지 못했나?

자신을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믿습니다. 반대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믿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자신을 기준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못하는 것을 남이 할 것이라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내가 믿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잠재력 말고는 믿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모두가 함께 믿을 때 가능합니다. 만약 어느 교육기관에서 서로 불신하며 교육을 실행한다면 그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아마 구구단 하나 가르치기 힘들 것입니다. 아무리 때리더라도 아이들은 반항할 뿐. 어느 것 하나 배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잠재력을 믿지 못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믿음의 성격'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사진기로 촬영이 되지 않습니다. MRI 같은 것으로 촬영을 한다고 하더라도 촬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도 보이지 않기에 없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께서 자신을 믿고자 한다면. 그것을 배우고자 한다면. 주변에 자신을 믿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찾고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뭉칠수록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불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그것 역시 뭉칠수록 강해집니다.

무형의 믿음의 경우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그 기회를 통해서 또 새로운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고 자신이 변화하는 것을 자연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불신이 만연한 사회에선 느 믿음을 가르치기 힘듭니다.

세상을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막상 바라보면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세상을 믿지 못할 뿐입니다.

잠재력의 힘은 어느 정도인가?

잠재력의 힘은 현재 내가 갖고 있는 힘에 비해서 훨씬 큽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고. 날개가 없는 사람이 하늘을 날고 물속과 우주를 돌아다니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더욱더 발전해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불신이 가득한 경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방에 누워있는 것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바다 깊숙한 곳에서 물고기와 놀고. 달에 착륙해서 새로운 생명체를 찾는 동안. 그냥 누워만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믿고 안 믿고의 차이입니다.

바다에서는 절대 숨을 쉴 수 없다는 사람은 바다에 들어갈 수 없고. 달에 생명체가 없다거나 갈 필요가 없다고 믿어버리는 사람의 경우엔 달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하고 안 하고는 다른 것보다 내가 믿는가 아니냐에 차이의 뿐입니다.

과거보다 더 많은 기회가 존재하는 세상.

과거엔 신분이 있었습니다. 태어났을 때. 부모의 신분이 노예였다면. 나도 그냥 노예입니다. 다른 인생의 역전은 없습니다. 모두가 나를 노예 취급하고. 나 역시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놈의 신분제만 철폐되면 난 뭐든지 할 거야. "

그런데 정작 지금은 신분제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잠재력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거의 원망의 대상은 현재의 원망의 대상이며. 미래에도 나의 원망의 대상 1호로 예약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없다고 하지만 분명 과거의 시대보다는 많습니다. 그럼에도 왜 포기하게 되는 것일까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총 16년이나 중요한 교육을 배웠음에도 우리는 우리의 잠재력도 믿지 못합니다. 가장 중요한 자신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는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지 고민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차라리 나를 내가 믿지 못하는데 16년이라는 시간을 들였다면 그냥 안 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남들이 하라고 해서. 남들이 하니까 했는데. 결국 나는 나조차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새로운 시도를 겁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착각입니다. 과거 고도성장기를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지금도 기회는 많이 있습니다. 불경기라고 하지만. 어디선가는 엄청난 소비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는 사람들이 지갑을 기꺼이 열고 있습니다.

기회라는 것이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했던 과거의 영광이 없다고 해서 지금도 기회가 없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과거에 비해서 일뿐이고 일시적인 부분이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 유튜브, 5G, 블록체인 등.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물건을 우리가 사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더 많은 기회가 공존하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어린아이처럼.

어린이의 순수함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경험을 했고 그로 인해서 성격이 형성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안 해본 것을 시도하는 자세만큼 음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안 해보고서 그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은 착각에서는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될지 안될지는 해보기 전에는 모를 것입니다. 곁에서 '안될 거야'라며 겁을 주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세요. 부정적인 사람들은 역시 현재에 머물도록 겁만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조차 자신에게 기회가 있다면 탈출할 것입니다. 그러니 부정적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기회만 된다면 더 많은걸 하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손으로 만져보고 해 보면 왜 두려워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쉬운 것이 대부분입니다. 공부도 일도 그저 처음이 어려울 뿐입니다. 해보고 나면 실력은 늘고. 좀 더 좀 더 개선만 하면 됩니다. 그게 실력이고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됩니다.

막연한 믿음과 확고한 믿음.

자신의 믿음이 막연한지 확고한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그것을 했는가 아닌가의 차이입니다. 막연한 믿음은 포기도 빠릅니다. 그것도 해보기 전에 대부분 포기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정해놓은 기간 조차 채우지 못합니다.

상황이 불리하게 되면 겁을 먹고 도망을 갑니다. 하지만 확고한 믿음은 그 기간까지 채웁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냥 귀를 닫고 시야는 그것에 집중을 합니다. 산만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고함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이루는 잠재력에 대한 믿음은 더욱 옅어지며. 스스로를 단련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했는가 아닌가.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 좀 더 했는가 아닌가의 차이입니다.

일단 시작하기.

먼저 시작하면 초급 단계는 쉽습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시작을 하셨다면. 이미 시작하지 않은 90%에 비해서 대단한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간에 포기하고 싶다면. 10% 중에서 지금 포기하려는 8%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2% 역시 힘든 것은 똑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집중을 해서 그저 기간과 할당량을 채우고 자신의 목표에 집중하고. 쉴 때는 목적을 분명히 하며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자신의 믿음을 돋궈줄 수 있는 상대를 모읍니다.

믿음은 행동이고 행동엔 결과가 나타납니다.

어쩌면 다행히 90%는 실행하지 않고. 나머지도 대부분 중간에 포기합니다.

이것을 알면 어떤 것이 답인지는 분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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