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역사와 문화 6. 서양 근대의 노예 무역 - '흰 설탕, 검은 비극'
다들 서양의 근대를 떠올리면 무엇이 생각 나시나요?
프랑스의 시민혁명?
자유를 향한 인류의 갈망?
역설적으로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비극을 초점으로 근대를 설명 할까 합니다.
-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과 아메리카의 비극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과연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발견 이였을까요?
서구 역사에는 획기적인 것이 맞지만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는 많은
비극을 불러오게 됩니다.
① 1492년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 합니다.
1492년 우리 역사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 까요?
② 세계 항로와 무역을 둘러싼 유럽 각 국가들의 치열한 패권 다툼이 시작되죠.
- 대서양과 인도양을 둘러 싸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다툼을 시작합니다.
- 스페인은 서쪽으로, 포르투갈은 동쪽으로 항로를 설저하죠.
- 그러나 이는 잠정적인 것일 뿐 동서 구분없이 새로 발견된 땅에 대한 귀속권 분쟁은 계속 됩니다.
- 1493년 5월 교황 알렉산더 6세에 의한 '교황경계선'이 등장합니다.
"북극에서 남극을 일직선으로 그어 그 선부토 동쪽은 포르투갈, 서쪽은 스페인 령으로 한다"
(쫌 웃기지 않나요? 우리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뭐라고 마음대로 정하나요 란 생각이 드네요.) - 하지만 포르투갈의 반발로 1494년 토르데시야스(tordesillas) 조약을 체결 합니다.
- 그러나 아메리카 식민지가 주는 여러 이점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스페인, 포르투갈의 세계양분 의도를 좌시하지 않게 만들죠. - 이후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도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었고 1756-1763년의 '7년 전쟁'에서
영국이 최종 승리한 후 역 150여년간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 시대, 즉 영국의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 그러나 누가 패권을 쥐었든 노예무역은 변화가 없었죠.
(콜럼버스)(콜럼버스의 항로)
③ 아메리카의 '비극'
아메리카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 대규모의 아프리카 대륙을 개간하는데 노예 노동력이 절대 필요했죠.
- 특히 16세기 이후 '신대륙' 활용론이 등장합니다.
그 내용은
'신대륙에 '기대만큼의' 금은 많지 않고 향신료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광할한 '땅덩어리'(아메리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고민에 빠지죠. - 플랜테이션(Plantation)이 발달합니다.
신대륙에 말이죠.
근대 식민지 제도의 일환으로 발달한 생산조직입니다.
유럽의 자본과 기술, 식민지 현지의 노동력으로 경영되죠.
아메리카에서의 사업을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 재배 같은 대규모 사업으로 전환합니다.
이후 아메리카는 '단작농업'(monoculture)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예로 들면
서인도 제도의 사탕수수, 북미의 면화, 브라질의 커피 등 단일 작물을 생산하는 것이죠.
cf) 유럽을 이익을 위한 아메리카의 '단작농업'체제는 이후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으며
세계 경기에 따라 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제가 극도로 취약해지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담배 플렌테이션) - 플랜테이션에는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 아메리카 원주민 노동력을 투입했지만 한계에 직면하죠.
인디언들 : 강제노동에 적합치 않은 약한체력, 강한 저항,
유럽의 질병(천연두, 홍역, 발진티푸스 등)으로 인한 대량궤멸로 1560년대에 이르면
원래 인구의 10분의 1수준으로 감소합니다. - 백인 노예의 새대 도래
'백인 노예' : '유럽의 계약 노동자' 또는 '유럽의 범죄자들'로 아메리카에 노동력으로 투입됩니다.
'백인 노에' 시대는 단기간에 끝나죠.
이유는
첫쨰, 유럽 국가들로서는 자국의 노동력이 외지로 유출될 경우 국내 산업 발전에 지장이 생기게 됩니다.
둘째, 백인 게약노동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독립,
이들이 산업 활동할 경우 식민 모국의 산업이해와 충돌 할수도 있었죠.
셋째, 고용주의 입장에서 볼 때 백인 한명 살돈이면
흑인 세명을 사는 것이 가능했고
흑인은 죽을때까지 착취가능하므로 결국 비용면에서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 '순응적' 이면서도 새 삶에 대한 적응력 강하고, 근력우수한 노에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 아프리카 흑인의 노예화 -> 대서양 노예무역이 본격화 됩니다.
ex) 역사학자 프랭클린 나이트(Franklin Knight)의 말
"아프리카 흑인과 노예무역이 없었다면 아메리카의 잠재적인 경제적 가치는 결코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포르투갈도 스페인도 새로운 영토인 아메리카를 탐사하고 개발하는데 소요될 예비 노동력이 없었기 떄문이다."
-2) 대서양 노예무역과 아프리카의 비극
- 1501년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가 서인도 제도에 도착합니다.
- 16세기 초반(최치로 노예 할당권이 독점 판매된 시점)부터
19세기 말(브라질과 쿠바에서 노에해방령이 사라진)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간 아프리카 흑인 노동력을 착취합니다.
-'대서양 노예무역' (삼각무역) 사이클
- 아프리카에서 구입한 흑인노예를 싣고 대서양을 건너는 '중간항해'의 극이 시작됩니다.
- 노예에게 할당된 공간은 약 167cm x 40cm
2명씩 쇠사슬에 묶여 항해하며 항해 과정에서 많은 흑인들이 사망했을것으로 추정 됩니다.
① 아메리카에 '끌려온' 흑인들의 수는?
- 약 4세기 동안 980만 명이 아메리카에 강제 유입됩니다.
- 그러나 노예를 확보하기위한 아프리카에서의 전쟁,
노예의 수송 및 항구에서의 결리 과정에서의 사망자를 고려할때
아프리카의 출혈은 대단히 컸습니다. - 1659년 - 1900년 유럽과 아시아의 인구는 4배 증가,
반면 아프리카 인구는 정체되죠.
②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에 미친 영향은?
- 건장한 남자들이 노예로 팔려가고 여자들만 남아 일부다처제의 방식이 발전해
'인구' 수 면에서는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 그러나 인구 구조면에서 여자가 많으니 심각한 왜곡을 초래하죠.
- 아프리카에서의 남자 부족 현상은
여성에게 더 많은 노동을 부가해 여성들의 생활조건이 악화되고
여성 노예제 역시 확대 됩니다. 노예무역이 또 다른 노예제를 유발하죠.
-3. '흰' 설탕과 '검은' 노예노동
- 가장 중요한 노예수요처는 사탕수수(설탕 원료) 플렌테이션이였습니다.
cf) 스티븐 토픽(Steven Topik)
"사탕수수는 아시아의 작물, 유럽의 자본, 아프리카의 노동력, 그리고 아메리카의 대지가 결합된 진정한 국제적 산물"
① 유럽에게 설탕이란? : '미각의 해방 영웅'
- 만약 유럽인들에게 설탕이 제공되지 않았덜면?
커피, 차, 초콜릿은 대중 소비재가 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 사치품이였던 설탕이 필수품화 되면서
설탕을 이용한 노동계급 길들이기가 시작되죠. - 노동자들에게 다량의 설탕이 들어간 차, 커피, 초콜릿 등은 노동에 필요한 열량을 공급했죠.
- 신대륙(아메리카_ 흑인 노예들에 의해 생산된 설탕이
구대륙(유럽) 공장 노동자들을 '노예화' 하는데 일조합니다.
②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설탕이란? : 노예제의 산물
- 노예 노동의 비중이 컸던 사탕수수 재배에 아프리카 출신의 노예 중 3/4이상이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설탕으로 흑인 노예의 가치를 환산하면
17세기 초반 : 노예 1인은 설탕 1/2톤
18세기 중엽 : 노예 1인은 설탕 1톤
한수푼의 설탕은 흑인노예가 쇠사슬에 묶여 6일간 일한 것에 해당 됐습니다. - 유럽인들에게 '달고 흰 설탕'은
'검은 흑인 노예들의 강제노동의 결과물' 이였죠.
즉, '흰 설탕, 검은 비극' 이였던 것입니다.
(사탕수수 노예들)
-4. 노예 무역과 근대의 '역설'
- 근대 세계사는 '진보와 해방'의 역사 일까요?
- 유럽과 미국의 발전을 위해 천만명 이상의 흑인들이
대서양 너머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근대 세계사는 '야만과 억압'의 역사가 아닐까요?
Ourselves 캠페인
셀프보팅을 하지 않고 글을 올리시고
ourselves 테그를 달아 주시면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줄꺼에요
정성들인 글 감사히 잘 봤습니다. 예전에 딱딱한 교과서로 볼 때보다 좀 더 흥미롭군요. 인간의 가치에 값을 매기고 거래할 수 있었다는 것이 불과 몇백년 전 이야기라는 것에 인간의 역사는 참 빨리 걷고 있구나 생각을 합니다.
야만과 억압은 '근대' 세계사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이아몬드 같은 걸 생각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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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적으로 공부를 하셨나 봅니다. 재미있습니다. 앞으로 자주 찿아뵙겠습니다. 보팅하고 갑니다. 저도 ourselves지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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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끔찍하네요...
어떻게 사람의 가치를 설탕따위와....
역시 사람이 제일 잔인한 듯 합니다.
천만명이라니...수치로는 따질수 없는 비극적인 일이란걸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ㅜㅜ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로 ㅠㅠ역사는 배울수록 체감온도가 또 다르네요. 좋은 글 보고 갑니다.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때론 너무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