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기억 #4. 생사의 갈림길_두더지
개인적으로 두더지라고 하면 즐겁고 유쾌한 생각이 떠오른다. 최근에 첫째 아이에게 보여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두더지인데 조금 모자라 보이고 하루종일 말썽만 일으키지만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아이다. 그의 친구들 역시 두더지와 함께 모험을 떠나고 유쾌한 경험을 함께 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아이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니 둘리 이후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케릭터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 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기억 속에는 언제까지나 귀여운 이미지로 남아있지만 할아버지에게 두더지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625전쟁 시기에 두더지라고 하면 국군의 시체를 오가며 확인 사살을 하던 적군을 가르키던 은어였기 때문이다. 두더지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자주 들은 축에 속하는데 막내삼촌 역시 자주 들으셨는지 할아버지 상 중에 한 시간 가량을 두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실 정도였다. 오늘은 할아버지께서 두더지를 만났던 일을 짧게나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세는 크게 기울어졌다. 대구를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고 있었던 국군은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함께 크게 북진할 수 있었다. 부상에서 회복한 소하는 서둘러 소총을 둘러메고 부대로 복귀하여 전장으로 향했다. 회복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서 빨리 전쟁을 끝내고 본인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순례에게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세좋게 서울을 탈환하고 북쪽으로 전진하던 국군의 사기는 높았다. 금새라도 북쪽의 영토마져 차지하고 통일된 조국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적군은 중공군까지 가세하여 남으로 넘어들어왔다. 통일의 고지가 눈앞에 보였던 소하는 밀어치는 중공군을 피해 남으로 후퇴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아마 모든 병사들의 심정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있는대로 총알을 퍼부어도 끝도없이 밀어닥치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소총이 작동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북한지역에서 UN군이 먼저 철수하기 시작했고 국군 역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사기가 떨어질 때로 떨어진 국군의 등뒤로 적군이 바짝 추격해 왔다. 어찌나 악착같이 달려드는지 이대로 가다간 후퇴하는 인원이 모두 전멸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군이 무사히 퇴로를 확보할 때까지 누군가는 전선에서 버티며 적군의 진로를 차단해야했다. 결국 소규모이긴 하지만 주요 지역에 매복이 결정되었고 소하는 매복조로 편성되어 적군의 진로를 막게 되었다.
의외로 매복의 성과는 상당했다. 소규모로 편성되어 기동성이 높았고 매복의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전진만을 해오던 적군 선봉대의 허를 찌르기에 충분했다. 적군이 당황하여 주춤한 사이 국군은 그만큼의 퇴각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 곧 우리의 동태를 파악하고 다시 밀어칠 거다. 충분히 시간을 벌었으니 우리도 서둘러 후퇴하자.”
지금이 아니면 매복조의 후퇴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중대장의 말에 대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실 매복조로 편성되었을 때부터 살아돌아갈 생각은 버리는게 나았다. 하지만 상황이 예상보다 좋아서 매복조 역시 큰 피해없이 전장에서 이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한 번에 빠져나가기는 어려울 겁니다... 누군가는 또 남아서 매복조의 뒤를 지켜야 합니다.”
소대장의 말에 일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잠시마나 희망을 맛보았으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이왕 시작한 거 내가 끝까지 있겠심더. 난리통에 가족들 다 잃어가 갈 곳도 없는데 뭐."
저격수로 있던 송하사가 침묵을 깨고 남기를 자처했다. 순간 대원들이 너도 나도 남겠다고 희망했다. 소하 역시 잠시 순례를 생각하며 갈등을 하였지만 동료들과 함께하기를 희망했다. 얼마 남지 않았던 매복조의 반이 줄었다. 이제는 살아 돌아가기 보다는 동료들의 생존을 위해 한 명의 적군이라도 더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였다.
본대가 도착한 적군은 선봉대를 정비한 후 어둠을 틈타 다시 남하를 시작했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적군의 수와 기습에 달리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대원들이 하나 둘 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혼전이 지속되는 와중에 머리를 울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소하 역시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린 소하는 머리의 통증을 참으며 힘겹게 고개를 돌려보았다. 철모가 심하게 찌그러진 것을 보니 포탄에 튄 돌맹이가 머리를 때리는 바람에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기절한 덕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음에 안도하던 찰나 지척에서 들리는 소리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적군으로 보이는 두 명의 병사가 조금씩 다가오는데 그들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푹! 푹!
말로만 듣던 두더지 들이다. 그들은 널부러진 시체들 위를 지나다니며 착검 상태의 소총으로 확인 사실을 하고 있었다. 시체를 관통하는 대검의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공포는 더욱 심해졌다. 지금이라도 일어나 달아나야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죽은 척을 하고 누워있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일어나 도망을 친다면 십중팔구 사살될게 분명해 보였다. 더욱이 머리부터 전해지는 통증 때문에 달아날 자신도 없었다. 그저 적군의 피인지 아군의 피인지 구분이 안되는 것들을 온몸에 덕지 덕지 바른 채 눈앞에 보이는 시체 밑으르 기어들어가 두더지들이 지나쳐가기만을 기도할 뿐이였다.
지척으로 다가온 두더지. 날카로운 대검이 허벅지를 스쳐 지나갔지만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두더지들이 지나간 후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일어나 상처를 살필 수 있었다. 감염의 위험이 없다면 큰 상처가 아니라 천만다행이였다. 산속으로 몸을 옮긴 후 개울물에 몸을 대충 씻고선 곧바로 남쪽으로 향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와중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먼저 가신 부모님과 형님, 그리고 전우들의 가호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늘에 있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더욱더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6월 내에 글을 마무리하고자 했지만 저의 게으름으로 글이 많이 늦어졌네요. 어영부영하는 사이 달은 7월로 넘어갔지만 항상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지내야겠습니다.
이번 한 달도 건강하고 평온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기억 #1, 만주 마적단
할아버지 기억 #2, 피난길
할아버지 기억 #3. 생사의 갈림길_소리 없이 강을 건너다
6.25때 두더지가 저런뜻의 은어로 사용되었군요!!
자유롭고 여유로운 스팀짱입니다^^
그래서 어릴적 반강제로 보았던 반공 애니메이션에는 두더지가 자주 출연했던 거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