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의 세상이 궁금하다면, 책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in #book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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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를 설명할 때면, 언제나 '비운의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지금은 전 세계적인 명성과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 화가이지만, 한때는 화가라는 호칭이 과분할 정도로 비루한 무명작가였기 때문이다. 작품 활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기는커녕 제대로 작품을 팔아본 적도 없는 이름뿐인 화가. 그 화가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였다.

하지만 빈센트의 그림 열정은 결코 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활활 타올랐다. 그 열정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그의 시그니처가 된 수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그 시절, 빈센트는 주변의 사람들과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책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는 3년여의 프로방스 생활에서 빈센트가 동생 테오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쓴 그 편지들을, 그의 아름다운 작품 및 스케치들과 함께 엮어내고 있다.

빈센트는 편지 속에서도 언제나 그림 생각뿐이었다. 지금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그림이 무엇인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자신이 무얼 보고 있으며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 그 색과 감각은 어떠한지 등 모든 이야기의 끝은 그림으로 귀결되었다. 때로는 글만으로는 표현의 한계를 느끼고 직접 편지 안에 스케치를 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편지을 읽는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스케치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그의 편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색을 묘사하는 지점이다. 빈센트는 자신이 본 색, 그리고 칠한 색을 묘사하는데 꽤 많은 공을 들인 것 같다. 그에겐 단지 예쁜 하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색을 가진 하늘이 아름다웠는지를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색 묘사가 매 편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일부로 애써 노력한 부분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심지어 어머니의 사진이 흑백이라는 점을 견딜 수 없어 직접 색을 입혔다는 문장에서, 이러한 타고난 예민함이 그를 자연스럽게 인상주의의 세계로 이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따라서 빈센트가 실은 화가를 꿈꾸지 않았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목회자를 꿈꾸었고 그 꿈을 추구했던 꽤 긴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은 책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숙부의 추천으로 화상으로 일했던 당시만 해도 예술에는 큰 감흥이 없었다던데, 어떤 연유로 붓을 쥐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하다. 비록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붓을 쥔 그 순간부터, 과거의 그는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사람처럼 그림에만 몰두했고 그림을 위한 여정을 계속했다. 이런 걸 보고 천명이라고 하는 것일까?

뒤늦게 그림의 길에 들어선 빈센트 반 고흐. 쉽지 않은 길 위에 선 그에게 편지는 자신의 그림 세계를 다져나가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가장 내밀한 문학인 편지는 저자가 가장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한다. 편지의 주인공이었던 빈센트는 자신의 감상과 고뇌, 그리고 마음을 편지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그 부분이 테오의 아내 요에게도 전해졌던 모양이다. 테오가 죽은 이후, 빈센트의 편지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요. 그녀 자신이 받은 위로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분명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수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 역시 빈센트의 편지를 보고 감명을 받고 있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쓰는 편지의 서문에서 종종 편지와 지원금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동생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을지도 모르는데, 피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오랜 시간 두 형제의 우애를 지탱해 온 가장 궁극적인 지지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같은 태도는 그의 생애 전반에 묻어난다. 쉽지 않은 생애를 살아낸 빈센트이지만 그의 삶에는 불평보다는 감사가 더 많았다. 그 점이 개인적으론 무척 경이로웠다. 빈센트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언젠가 그를 만날 수 있다면, 그와 삶에 대해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물론 그때도 결국은 기승전그림 이야기가 되겠지만.

사랑하는 테오에게

편지도, 함께 보내 준 50프랑도 무척이나 고맙다.
나는 미래가 캄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애로는 많으리라고 본다.
(중략)
나는 이번만큼은 새집과 함께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고 있어.
말했다시피 외벽은 노란색이고 내벽은 흰색이고, 사방에 해가 잘 들어오니 방이 밝아서 캔버스가 잘 보여.
바닥은 붉은 벽돌이란다...

1888년 5월 1일(아를에서 보낸 편지,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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