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장편소설 '투명인간' / 작가 성석제

in #book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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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만수는 웃는다. 힘들어도 웃고, 기뻐도 웃고, 슬퍼도 웃는다. 유일한 관심사는 가족의 행복 그리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람을 지키는 일이다. 그를 보며 누군가는 답답할 수도 누군가는 숭고함마저 느낄 수도 있다. 그를 어떤 사람이라고 평가해야 할까. 속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명 투명인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만수는 단순하게 속없이 착한 사람은 아니다. 끊임없는 가족과의 상호작용과 그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굳어져 버린 그 사람의 특성일 뿐이다. 아마도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투명인간 몸 뒤로 비추는 풍경처럼 대한민국의 근세기를 투영한다. 특히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가족 내에서 형성되는 권위의 분배가 한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화전으로 숨어들어 아들을 키워내는 만수의 할아버지, 그는 일제 강점기 핍박 속에서 산골로 들어왔지만, 동네에서 유지로 지내던 시절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꼿꼿할 필요도 지적인 활동이 주목받지도 못하는 화전 안에서도 나름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아들을 가르치려한다. 아들은 화전에서 자라 농사를 짓고, 그 곳에서 결혼한다. 아버지가 말하는 사람의 도리니 하는 것들은 그에겐 사치다. 당장 자식을 먹여 키워야 한다. 나는 그런 꿈을 꿀 수 없다고 내재화한다. 아버지는 그런 그를 무시한다. 아버지와 자식을 부양하는 입장, 최선을 다해 살지만 그런 그를 무시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는 언제나 화가 넘친다. 유일한 위안은 큰 아들. 제 씨앗에서 나왔거니와 동네에서 제일 똑똑한 큰 아들은 그의 열등감의 유일한 중화제이자 희망이다. 그런 아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고엽제에 맞아 바스러진 잎처럼 썩어버리면서 모든 것은 바닥으로 향한다.

남은 희생양은 가족 안 조연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할퀴며 무너져간다. 아들을 부정하며 자신의 분신이라 여기던 손자를 잃은 할아버지는 손쉽게 무너져갈 가족을 지켜낼 희생양을 점찍는다. 똑똑하진 않지만 성실하고 속없는 만수.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마음에 불어넣으며 무거운 굴레를 목에 맨 고삐에 엮어 단단하게 고정한다. 그리고 만수는 그 역할을 누구보다 잘해낸다. 누구를 미워할 성품도 없고, 열등감을 가질 만큼 욕심이 많지도 않은 그는 그저 동생과 가족을 위해 매일 일하고 희생한다. 두 동생을 명문대에 입학시키고도 동생의 자식까지 받아 키우고, 연탄가스를 마셔 정신이 나간 여동생까지 데리고 산다. 심지어 아들로 받아들인 동생의 아들은 자폐아로 자신의 아내까지 좀 먹어 간다.

시골로 내려간 부모님은 어느 순간 소설에서 사라지고, 내리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본인의 속은 비워 낸 채, 억지로 가족이라는 책임감을 채워 넣는 만수만 소설 가득 채워진다. 아련한 기억으로 추억하는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산업화를 거치며 무너져가는 모습이라고 누군가는 볼 수 있겠지만, 개인이 가족이란 소사회의 부속품으로 살다가 망가진 톱니바퀴에 어그러져가는 잔상으로 보일 뿐이다. 장남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 딸은 시집이나 가면 그만이다. 농사는 천하고 지식은 귀하다.

이 모든 관습 앞에 장남은 피를 팔아 공부하다, 돈을 위해 전쟁터에서 고엽제에 눌러 붙었다. 큰 딸은 미싱 하나로 가족을 부양하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반대에 사랑을 포기하고 제 아비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명문여대를 나온 작은 딸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동지란 자의 성폭행에 자존감이 무너진 채 결혼한다. 명문대를 나온 동생은 큰형을 지나 작은형에게 씌워지는 굴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다가 사라진다. 내가 아닌 타인을 내안에 넣고 살아갈 때 나란 사람은 옅어진다. 그렇게 투명해진 사람의 뒤로는 어떤 짐이 얹혀 있을까.

한강을 달리는 자전거 위에 온몸을 가린 투명인간들이 바쁘게 페달을 돌린다. 튀어나온 아랫배는 검은 싸이클복을 피부인양 도드라지게 눈에 띈다. 저들의 투명한 속에는 무엇이 채워져있을까. 오늘을 사는 투명인간들을 바라보는 불투명인간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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