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BEX BLOCKBUSTERS][서울대 Decipher : 김재윤] Faction 1 : 블록체인 무용론에 대하여
“블록체인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스며들어 사용될 것입니다. 또한 중개인(middle man)을 없애 탈중앙성(decentralization)을 확보하여 무신뢰(trustless)의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정보와 자산의 거래가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줄 수 있으므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기술이 블록체인 기술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술이 발전하지 못해서 실생활에 쓰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블록체인에는 합의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전 세계에 있는 참여자들이 합의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매우 느리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샤딩(sharding), 사이드체인(sidechain), 지분 증명(Proof-of-Stake), 웹어셈블리(WebAssembly) 등의 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블록체인이 등장해서 높은 처리속도, 즉 높은 TPS(Transaction Per Second)를 달성하면 비로소 우리 생활에서 널리 쓰이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정보 기술 연구 및 자문 회사인 가트너(Gartner)에서 개발하여 발표한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1]에 의하면, 새로운 기술이 탄생할 때는 과장된 기대(peak of inflated expectations)를 받고 과잉 투자가 발생합니다. 그러다 생각보다 실험 및 구현 결과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사람들이 환멸(disillusion)을 느끼게 되고, 사람들의 관심과 투자 수요가 폭락하여(거품이 꺼져서) 많은 사업화 주체들이 사업을 포기하거나 실패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부 좋은 사업 주체들은 살아남아 좋은 제품들을 내놓고, 기술에 대한 이해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기술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더욱더 좋은 제품들이 많이 나오는 계몽기(enlightment)에 접어듭니다. 현재 블록체인 기술은 초기에 높은 기대와 투자를 받았다가 환멸기를 지나 계몽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코인의 시세보다는 블록체인 기술에 집중한다면 앞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블록체인의 대중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인공지능이 긴 암흑기를 거쳐 지금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는 대중적 기술이 된 것처럼요.”
어제 대중에게 한 강연의 일부이다. 오늘은 사무실에 출근하여 자리에 앉아 내가 하고 있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들여다보면서 생각한다.
‘아무래도 중개인이 있는 모델이 블록체인보다 효율적인데... 이게 효율적으로 구현되려면 샤딩이 먼저 되어야 하고, 웹어셈블리 가상머신이 먼저 도입되어야 하고...’
오늘은 외부에서 블록체인 사업을 하고 싶다는 팀과의 미팅이 있는 날이기 때문에 해당 팀의 사업 계획이 담긴 덱을 다운받아 읽어본다. 갑자기 코인 알람이 울린다. 비트코인이 4천 불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
“아, 코인판 망하는 거 아냐? 가트너의 그래프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거지? 아직도 계몽기는 오지 않은 건가?”라고 생각하는 도중에 미팅을 하기로 한 팀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공유드린대로 저희는 블록체인으로 공유경제 플랫폼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블록체인을 도입해서 이 부분을 탈중앙화시키고, … 코인을 발행해서 플랫폼 사업자가 아니라 이용자들이 수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뻔한 스토리에 뻔한 사업 모델이다. 덱을 한번 읽어봤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첫 부분만 들어도 뒤 내용이 모두 예상된다.
‘그래서 이걸 플랫폼 사업자인 당신들이 왜 합니까?’ ‘이건 굳이 블록체인으로 만들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요.’ ‘솔직히 말해요 그냥, ICO해서 큰 돈을 쉽게 벌고 싶다고...’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지만 꾹 참는다. 이걸 얘기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와 다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딜을 성공시켜야 언제 폭락할지 모르고 어디다 쓸 수 있는지도 감이 안 오는 코인이 아니라 안전하고 유용한 ‘현금’을 벌 수 있다. 락인(lock-in)되어 팔지도 못하고, 밥벌이도 못하는 코인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마라샹궈와 꿔바로우를 사 먹을 수 있는 ‘법정화폐’ 말이다!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또 사라지고 있다. 대기업들도 하나 둘 블록체인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기술이 점점 대중화되어가는 것 같다.
나는 기술 발전의 초기에 빨리 들어와서 사업화 기회를 찾고, 플랫폼을 선점하고 싶었는데 이놈의 블록체인은 기술적인 깊이는 없으면서 뭐가 그렇게 헷갈리는 개념도 많고 제약 조건도 많은지 아주 얄궂다.
내가 이걸 아직도 붙잡고 있지만, 누가 와서 “이거 굳이 왜 블록체인으로 만들어요?”라고 물어보면 자괴감이 들고, 지금이라도 손절하고 인공지능으로 넘어가는 게 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혹은 아주 섹시한 이유를 찾아내서 그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지만 떠오르는 것도 없고, 처음부터 잘못된 것만 같다.
또 코인 알람이 울린다. 비트코인이 4천 불 아래로 떨어졌다.
블록체인, 정말 쓸모가 있는 것일까?
[1] https://www.gartner.com/en/research/methodologies/gartner-hype-cycle Jan. 14. 2019.
오 재미있는 글이네요 자주 구경올께요
고맙습니다~ 더 재미있는 글로 찾아뵐게요!
재윤님이 블록체인의 쓸모를 만들어주세요 :D
블록체인 기술의 쓸모가 다양한 분야에서 증명될거에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