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비트코인을 샀었다면...
[월든]으로 유명한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더 초기 저작인 [시민의 불복종] 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월든 호숫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자연주의자, 세속을 초월한 자연인 등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그의 행동에는 깊은 가치 철학이 내재해 있었다.
그 가치는 [시민의 불복종]에 더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요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부터 불복종할 자유와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 표현 방식을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후에 간디, 마틴 루터 등이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결국에 미국 정부로 부터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다가 투옥되었고, 이런 맥락에서 정부의 간섭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고자 호숫가로 들어가 산 계기가 된 것 같다.
필자 추측엔 자연을 찬양한 것은 정말로 좋아해서 했다기보다 소로는 정말 그 당시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정부, 법의 막강한 권력 앞에서 개인이 불복종 할 수 있는 모습은 여러가지겠지만, 소로는 자연인이 된 것 뿐이다.
현재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소로 시대 이후로도 정부는 점점 더 커져갔고, 온갖 기술들을 이용해서 개인들의 감시는 심해졌다. 우리도 이렇게 큰 거대 정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어보인다. 그 좋은 '기술' 덕택에 아마 호숫가로 들어가서 살아도 결국에 찾아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탈중앙화의 네트워크에 노드로 참여하는 비트코인 등을 소유한다는 것은 중앙화(정부)에 저항하는 하나의 좋은 수단이다.
가격의 급등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트코인을 소유함으로써 당신의 자본의 일부라도 정부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만약 블록체인이 인류의 성공적인 네트워크가 된다면 비트코인을 소유한 만큼 당신은 미래에 자유를 보증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운이 좋은 세상에 태어났는가?
소로는 방법이 없어서 호숫가로 도피했지만, 우리는 블록체인 기술 덕택에 자본의 자유를 향해서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자유는 곧 '자유'를 의미한다. 게다가 지금 비트코인 1개의 가격이 많이 급등하긴 했지만 아직까진 현실적인? 가격이라는 것이 너무 큰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을 단순히 트레이딩의 관점에서 본다면 본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진성 홀더가 되기로 결정했다면 단순히 가격이 1억이니 3억이니에 대해서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서 본인이 이 네트워크에 참여자가 된다는 사회적 임팩트와 그것을 떠받치는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 생각했으면 한다.
만약 취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절대로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재의 일시적 달콤함을 위해 미래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다).
나는 소로가 당시에 비트코인이 있었다면, 오두막에 들어갈 자본으로 비트코인을 샀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자연이 아닌 가상세계로 도피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