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거의 시대가 끝났다.
고통스럽지만 아르센 뱅거의 시대가 끝났다.
방금 전 2부리그 승격팀인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과의 경기에서 2:1로 패배했다.
지난주에는 올시즌 전례없을 정도로 막강한 맨시티에게 3:0으로 패배했다. 그것도 1주일 사이에 두번이나.
3연패. 프리미어리그 특히 요즘 전반적으로 모든 팀의 실력이 많이 줄어든 프리미어리그에서 그럴 수도 있다. 물론 아스날로서는 3연패란 견디기 힘든 결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3연패라는 결과보다 충격적이고 슬픈 것은 이 3경기 혹은 조금 오래 되었지만 몇년 전부터 아스날의 경기에 ‘뱅거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뱅거 감독은 낭만주의자이다. 승패에 상관없이 필드 위의 모든 선수들이 창의력과 정교함을 극대화 시켜야만 가능한, 그가 말하는 ‘아름다운 축구’, 것을 단 몇 분이라도 필드에서 구현한다면 그 위대함을 자랑스러워하고 찬양하는 감독이다.
아름답고 아름다웠다. ‘뱅거볼’의 이름으로 필드에서 구현되는 몇몇 경기들과 몇몇 순간들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감히 그것을 축구라고 말하기에도 저어되었다. 물론 뱅거볼과 유사한 형태들이 있다.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는 뱅거볼 보다 더 화려하고, 독일의 전차군단의 패스는 뱅거볼 보다 더 정교했다.
티키타가와 전차군단과 뱅거볼을 비교하자면...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뱅거볼은 조금 더 인간적이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티키타가가, 기계적인 움직임에서는 전차군단이 앞서 있었지만 뱅거볼은 그 모자란 부분을 선수들의 창의성과 즉흥성으로 채웠었다.
예측불가능성 그리고 그 예측불가능한 순간순간을 연결시키는 선수들의 번뜩임. 그것을 믿고 신봉하는 것이 뱅거 감독의 최대 미덕이었다. 선수에게 하나하나 전술적 움직임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이러한 상황이 벌어질텐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선수 개인과 그 주변에 있는 선수들의 창의력이라는 식으로 팀을 이끌었을 것이다. 실제로 뱅거와 함께 했던 선수들은 그를 떠나고 난 뒤에도 감독이 아니라 거의 훌륭한 아버지로 여기고 있다. 전술을 제시하고, 선수의 롤을 지시하는 축구 감독이 아니라... “너는 이런 사람 아니 이런 선수가 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아버지.
하지만 이런 아버지는 가부장제의 신화 속에 존재해야하고, 이미 오일머니로 타락해버린 현 상황에서는 이미 그 빛을 잃었다. 뱅거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슬프지만, 영감님이 이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뱅거를 떠나보내는 것도 떠나보내는 것이지만, 더욱 슬픈 것은 뱅거볼에 내재되어있었던 축구에 대한 낭만주의, 그리고 인간적인 것을 포기해야한다는 점이다. 축구의 전술과 기술들은 점점 발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인간의 그것을 하나의 축으로 인정하는 축구가 더 이상은 불가능 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란한 밤이다.
얼마 후에는 축구를 더 이상 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