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 칼럼]배우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우들은 출연료 얘기라면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물론이고, 공식적인 인터뷰는 더더욱 그렇다. 톱스타든, 조연 배우든, 신인 배우든 위치에 상관없이 말이다. “연극할 때부터 생각해온 게 있다. 연출가와 작품, 돈 중 하나만 충족돼도 출연하겠다고. 오태석, 이윤택 선생님 같은 좋은 연출가의 작품에 출연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 좋고, 셰익스피어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을 해도 가치가 있다. 가장으로서 생활을 해야 하니까 돈도 무시를 못한다.”(<한국일보> 류승룡 인터뷰 중)라는 류승룡의 말은 그나마 속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그처럼 출연료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배우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하정우처럼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시나리오 그리고 캐릭터의 매력, 이 세 가지가 전부”라고 말한다. 출연료를 지불하는 제작사도, 배우를 대신해 출연료를 협상하는 에이전시나 매니지먼트사도 마찬가지다. 배우가 어떤 작품에 캐스팅이 됐을 때 그들은 ‘누가 누구의 어떤 작품에서 이런 캐릭터를 맡았다’고 알릴 뿐이지, 프로 야구나 축구처럼 몸값 얘기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지 않는다.
실제로 배우들에게 출연료는 “많이 주면 좋지”만, “작품을 결정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조건은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출연료는 계약서에 도장찍기 직전에 논의하는 옵션이다. 물론 출연료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전작에서 5억원을 받았다고 해서 이번 작품에서 꼭 5억원 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배우들도, 매니지먼트사도 거의 없다. 배우들은 영화의 규모나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을 고려해 출연료는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도, 약간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톱스타가 저예산 독립영화에 거마비 정도만 받고 출연하는 미담이 탄생하는 것도 그래서다.
배우들이 출연료를 시나리오나 감독, 캐릭터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30대 중·후반이 되면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프로 스포츠 선수들과 달리 정년이 없는 배우들은 좋은 감독을 만나 좋은 작품에 출연해 대중들이 기억할만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오랫동안 연기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제작 규모가 작더라도 배역이 매력적이라면 출연료를 깎아서라도 좋은 배역을 따내는 것이 그들에게는 장기적으로 중요하다. 그런 융통성이 있어야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같은 업계 파트너들로부터 호감을 얻을 수 있고, 당장은 큰 돈을 받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더 큰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송강호, 김윤석, 하정우, 류승범, 유해진, 이성민 같은 연기 선수들은 배우로서 최고의 신선도를 유지하는데 많은 신경을 쓴다.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대체로 배우들은 직업 특성상 연기 변신에 대한 강박 관념이 있다. 특정 이미지에 고착되면 배우에게는 위험 신호다. 그래서 전작에서 해보지 못한 역할이거나 자신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역할이라면 꼭 도전한다. 드라마 <미생>(2014), <군도 : 민란의 시대>(2014)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한 배우 이성민은 데뷔한 뒤 지금까지 악역을 맡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게 그가 겉과 속이 달라 양면성을 지닌 <손님>의 촌장에 이끌린 이유다. “배우가 가진 천성, 얼굴이 있는데 나는 악역이 잘 안 된다. 그게 극단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온 핸디캡이다. 과거 악역 제안을 몇 번 받았는데, 내가 못할 것 같아 제안을 거절한 적도 있다”는 게 이성민의 얘기다. <극비수사>와 <소수의견>에 출연한 유해진은 전작 <해적 : 바다로 간 산적>(2013)이나 <타짜 - 신의 손>(2014)이나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보여준 웃음기를 얼굴에서 싹 지웠다. 곽경택 감독은 “유해진하면 코믹한 배우로만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는 무척 진지한 사람이다. 그가 정극 연기도 잘하는 선수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유해진에게 출연을 제안한 이유를 설명했다.
대중적인 인기는 많지만, 배우로서 확실한 인정을 받기 위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경우도 흔하다. 장률 감독의 <경주>에 출연했던 신민아가 딱 그랬다. 상업영화에서 언제나 밝고 명랑하고 당돌한 청춘 아이콘이었던 그녀가 예술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장률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건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경주> 뿐만 아니라 부지영 감독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2008)에 출연한 것은 “배우로서 롱런하라”는 마케팅 출신인 그녀의 매니저가 조언한 결과였다고 한다. 잘 알려진대로 과거 청춘 스타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친구>(2001)나 <해안선>(2002)에 출연한 장동건처럼 신민아에게 <경주>는 배우로서 오랫동안 연기를 하기 위해 거쳐야 할 통과 의례였다. 그래서 한 매니저는 “어떤 배우는 한국영화에 출연할 때는 출연료보다는 배우로서의 교양과 품격을 유지하려고 하고, 돈은 중국에서 벌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배우로서 인정을 받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전작과 비슷한 캐릭터라도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나가는 시나리오도 배우들의 촉수를 강하게 잡아당긴다. <추격자>(2008)와 <거북이 달린다>(2009) 같은 전작에서 이미 형사 연기를 한 적 있는 김윤석은 <극비수사>에서 또 다시 형사를 연기했다. 출연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는 어떤 우려와 기대가 교차했다고 한다. “솔직히 조심스러웠다. 내가 수사물이나 수사물에 기대는 영화를 몇 번 해보지 않았나. 스릴러에 수사물을 결합하는 장르적 시도라든지, 이상한 반전을 집어넣는 식의 드라마에서 배우가 소비되는 걸 경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극비수사>를 선택한 건 “수사도 수사지만 자식이 유괴된 집안, 공 형사의 가족, 김중산 도사의 가족까지 가족이 극의 중심에 있어 정말 사람 사는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아서”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새로운 이미지의 역할이나 매력적인 시나리오, 감독에 대한 신뢰감 모두 갖춘 작품이라면 배우들에게 적은 제작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작품당 5억원을 받는 연기 선수들은 2~3억원만 받고 배역에 도전한다. 그 금액만으로 만족하는 배우들도 있고, 원래 몸값에서 부족한 2, 3억원은 다른 방식으로 충당하기도 하는 배우들도 있다. 충당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계약서에 러닝 개런티 조항을 삽입하는 방식이다. 형편이 어려우니 원래보다 적게 받고 출연하지만, 영화가 몇 백만 이상 불러모았을 때 수익의 몇 %를 챙겨가겠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제작자나 프로듀서가 부족한 2, 3억원을 다른 파트의 스탭들과의 계약에서 충당하는 방식이다. 쉽게 설명하면, 장비 대여 비용이 3억원이면, 장비 업체와 4억원에 계약한다. 한 프로듀서는 “장비 업체에게 4억원 세금 계산서를 발행해달라고 부탁한다. 세금 계산서를 발행해주면 다음 작품을 할 때도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투자사로부터 4억원을 받으면 장비 업체에게 원래 장비 대여 비용인 3억원을 주고, 나머지 1억원을 배우에게 현금으로 꽂아준다. 현금은 계약서에 기록으로 남지 않아 배우들이 이런 식의 계약도 싫어하진 않는 편”이라고 말한다.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오는 경력 많은 배우들과 달리 신인들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들에게 출연료보다 중요한 건 무슨 캐릭터라도 맡아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한 매니지먼트사 대표는 “5억원을 받는 한 톱스타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 배우의 매니지먼트사는 톱스타의 출연료를 3억원으로 줄이는 대신 같은 소속사에 소속된 조연급 배우나 신인 배우를 끼우는, 패키지 제안을 제작사에 하기도 한다. 같은 소속사 배우 여럿이 함께 출연한 작품은 대체로 그런 식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그때 소속사는 출연료를 양보한 톱스타가 섭섭해하지 않도록 재계약할 때 현금이나 외제차를 따로 챙겨주기도 한다.
연기가 좀 되는 신인들은 패키지 캐스팅으로라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문제는 외모는 예쁘장하거나 훤칠하지만 연기력이 그저 그런 신인이다. 그들을 위해 배역을 따내기란 최고의 실력을 가진 매니저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매니지먼트사가 신인 배우를 알리기 위해 출연료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방법을 쓰는 것도 어떻게서든 얼굴을 알릴 기회를 잡기 위해서다. 한 매니저는 작품 경력이 많지 않은 자신의 배우를 미니 시리즈에 출연시키려고 회차당 250만원이라는 출연료를 포기했다. 현상 유지를 위해 헤어·메이크업 비용, 최소한의 거마비만 받는 조건으로 말이다. 회차 당 250만원이면 몸값이 20부작에 총 5천만원이다. 배우의 매니저는 말한다. “5천 만원은 배우 인생을 좌지우지 할 만큼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캐스팅만 된다면 미래를 위해 그 돈을 포기할 수 있다. 공짜로 출연하는 대신 제작사에 가짜 계약서를 써달라고 요청한다. 원래 몸값보다 100만원 높은 350만원으로 말이다. 그러면 그 배우는 다음 작품에 출연할 때 회차당 350만원 몸값으로 계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면 계약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일 수도 있도, 윤리적으로 올바른 방식의 캐스팅이 아니다. 하지만 제작사 입장에서는 작품에 크게 해가 되지 않는 조연을 비용을 들이지 않고 캐스팅할 수 있고, 배우 입장에서는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종종 시도되는 비지니스다.
누군가에게는 믿을만한 감독과 함께 작업해야 할 때가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감독보다는 새로운 시나리오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맡아 배우로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 때가 있다. 그건 배우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제각각이다. 분명한 건 오랫동안 배우로서 존재감을 인정 받기 위해서는 돈보다 고려해야할 게 많다는 사실이다.
김성훈
*이 글은 GQ KOREA 2015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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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부차적인거죠...
일단 얼굴을 알려야 돈도 들어오는 거니까...
번외로 저는 목화극단 출신의 선생님들에게 연기를 배웠으니 참 자랑할 만합니다.
이미지 고착화는 배우게에 참 독인거 같아요 ㅎ
계속 그런 역할만 들어올 테니까요 ㅎㅎ
연기의 변신도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도 장비 대여료를 돌린다는지 하는 이면 계약이 난무하는 것 같아 좀 그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