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의 시대정신’ ” - ‘2019년의 시대정신을 위하여’...

in #aaa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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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7월 영국 총선에서는 엄청난 이변이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의 압도적인 승리가 유력해보였으나, 영국 국내외의 예상을 뒤집고 ‘클레멘트 애틀리’가 이끄는 ‘노동당’이 오히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사상 처음으로 노동당 단독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노동당은 640석의 의석 중에 기존 154석에 불과했으나 과반을 훨씬 넘는 393석을 석권했다. 반면 처칠의 보수당은 기존 386석에서 197석으로 줄어든 처참한 참패를 당해야 했다.

1945년 2월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치칠과 보수당을 지지하는 여론은 83%나 달했다. 또한 처칠은 히틀러를 패망시켰으나 아직 아시아에서 일본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7월에 총선을 잡아 자신과 보수당에게 유리하게 일정을 짰으면서도 말이다.

무엇이 제2세계대전의 최대 승전영웅인 처칠보다 노동당을 압도적으로 선택하게 만들었나.

세계적 거장이자 대표적인 ‘좌파’ 영화감독인 ‘켄 로치’는 2013년이라는 시점에 ‘왜’ <1945년의 시대정신>이라는 그의 유일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그때의 ‘기억’들을 소환했는지는 흥미롭다.

켄 로치가 먼저 끄집어 낸 기억들은 전쟁 이전의 빈곤과 저임금, 실업의 참혹함이었다. 무수한 식민지를 거느린 당대 세계최강의 자본주의 중심국가에서 사는 대중들의 삶이라고하기에는 너무나 참혹한 수준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막대한 이윤은 창출됐지만 은행을 비롯한 자본의 몫이었을 뿐이다. 일반대중들은 저임금과 실업의 고통에 시달렸다. 노동자와 하층민들의 공동주택들과 단지들의 주거실정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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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도 잘 안 들어오는 허름한 집에는 온갖 해충들이 들끓으며 위생은 사치스러울 뿐이다. 각종 병에 무방비로 노출되지만 변변한 의료혜택도 없이 민간 대중요법에 의존한다. 저임금과 실업 상황이기에 제대로 먹지도 못해 영양 상태는 최악이다. 이런 지경이니 교육은 꿈에도 못 꾸고 어린 아이들은 생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생활전선에 내몰린다.

그러나 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게 달라지게 만들었다. 전쟁의 효과적, 효율적 수행을 위해 모든 국가인력과 물자, 자원, 인프라를 ‘공유제’하에서 운용하였기 때문이다. 히틀러에 점령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상황에서 ‘똑같이’ 참전해서 전장에서 싸웠고,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에서는 차출되어 ‘똑같이’ 일했다. ‘똑같이’ 배급식량에 의존하여 먹었고, ‘똑같이’ 공습에 지하방공호로 대피하여 공포에 떨었다. 그리고 ‘똑같이’ 전쟁의 고통을 겪었고, ‘똑같이’ 상처가 남았다.

그렇게 공동으로 일심으로 싸웠던 전쟁의 승리가 유력해지자 징집된 전장의 군인들이나, 노동력 차출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나 결코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졌다. 그들은 전장의 참호나, 공장에서 ‘미래’에 대해 생각했고, 토론했고, 공유했다. 고통과 아픔마저도 공유한 공동체의 기억과 경험은 전쟁 이후의 극적인 사회변화를 예고했다.

어쩌면 ‘민주적 사회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는 애틀리를 비롯한 노동당 수뇌부는 이런 사회변혁을 갈망하는 대중들의 의식과 의지를 정확히 간파했다. 그리고 대중들은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줌으로서 화답했다.

그리고 노동당 집권 아래 영국은 역사상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실현되었다. 노동당 단일내각정부는 민중의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여 1946년 영국은행(The Bank of England)을 필두로 같은 해 전신, 1947년 운하·도로·운송·교통·광산, 1948년 가스·철도, 1949년 철강·민간항공 등의 중요산업의 ‘국유화’를 진행한다.

그리고 임산부 보조, 장례비용 보조 등의 ‘국민의료법(National Health Service Act, 1946)’, 맹인, 광인, 극빈자 등의 최저층을 위한 ‘국민보조법(National Assistance Act, 1948)’이 추진되고, 의무교육의 확대, 지방정부 제공의 교육 무상화, 특수학교에 대한 국가보조금 확대, 중등학교의 문법학교, 기술학교, 근대학교의 분리 등 교육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람이 비로소 사람다워진’ 이 빛나는 순간들과 극명하게 대비하여 켄 로치는 1979년 보수당의 총선승리로 ‘마가렛 대처’정권의 등장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력한 시행으로 주요산업과 서비스들의 국영화를 다시 민영화시키는 과정을 생생히 그려낸다. 그 과정은 수익성과 효율성에만 매달려 공공서비스 공급이라는 본질을 잊어버린 정부의 무차별적인 추진으로, 빈익빈부익부의 계급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가난한 자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했다.

켄 로치 감독은 <1945년의 시대정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수가 다른 이들을 착취하며 부유해져서는 안 되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생산과 용역의 모두의 이익이 되는 공동소유의 개념이었다. 그것이 다수에 의해 지지된 고유한 이념이었다. 그것이 바로 1945년의 시대정신이었다. 이제는 그 정신을 다시 떠올릴 때가 되었다.”

현실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켄 로치 감독의 ‘정반합’의 ‘변증법적’ 서사다. 영광과 악몽의 순간의 명징한 대립의 기억 무엇이 더 나은 삶인지에 대한 답을 도출해내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사실 켄 로치의 모든 영화는 불친절하다. 모순의 현실을 드러낼 뿐, 어디로 가야한다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가야할 방향을 판단하고 잡는 건 현실을 절감한 주체의 몫이다. 그래서 켄 로치는 영화감독 이전에 탁월한 전략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2013년, <1945년의 시대정신> 영국 개봉에 맞추어 켄 로치는 ‘새로운 좌파정치’를 호소하며 현실 정치에 직접 뛰어들었다. 이에 촉발되어 켄 로치가 발의자로 참가한 ‘노동자 계급의 복원’과 ‘국제주의’, ‘노동당의 우경화’와 ‘긴축 및 전쟁에 반대’를 기치로 영국의 새 좌파정당 ‘레프트유니티(Left Unity)’가 창당했다.

이들은 정책방향에서...

“레프트유니티는 평등과 정의를 지지한다. 이는 사회주의자, 페미니스트, 생태주의자를 말하며 차별의 모든 형태에 반대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전쟁, 인종주의, 이슬람포비아와 파시즘에 반대한다. 우리의 목표는 민중에 의한 그리고 민중을 위한 국가와 정치 제도, 사회와 경제의 ‘완전한 민주화’를 추구하고 사회를 변형시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우리의 즉각적인 과제는 수년 동안 민중이 성취한 사회경제적 이익을 파괴하기 위해 고안된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제기했다.

개인과 공동체의 일상적 삶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악몽을 선사한 보수당의 대처 정권의 집권이 끝나고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집권하며 그의 시대를 열었다. 블레어는 ‘대처의 왼손’에 불과했다. 오히려 블레어 정권은 대처정권보다 교묘하고 악랄한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들이었다.

2013년은 현실 삶에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던 노동당을 장악한 우파 블레어주의자들, 개량주의자들을 향한 격렬한 선전포고의 해였다. 켄 로치 감독이 주도하는 ‘레프트유니티(Left Unity)’은 2015년 노동당 당 대표 선거에 ‘민주적 사회주의자’ ‘제레미 코빈’을 지지하며 적극 참여했다. 그리고 1945년의 노동당이 이루어낸 기적에 버금가는 ‘코빈 당선’이라는 극적인 성과를 쟁취했다. ‘레프트유니티(Left Unity)’이 제기한 의제들은 노동당 코빈 당수에 의해 대부분 수용됐다. 켄 로치는 ‘1945년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그의 방식으로 구현해 낸 것이다.

그러나 노동당의 민주적 사회주의자 코빈 당수만으로는 가야할 길이 아직 멀었다. 1936년 생으로 올해 나이 여든 세 살인 켄 로치 감독은 2014년 작품인 대공황 시기 한 사회주의자가 펼쳐낸 조직과 연대의 기록 <지미스홀> 이후 작품 활동을 안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허나 자본주의 질곡이 여전히 가득 찬 현실이 그를 다시 현장으로 끌어냈고, 영화를 통한 그의 투쟁은 여전히 필요했다.

그래서 만든 작품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로 신자유주의 민영화를 통렬히 질타하며 ‘인간선언’을 했다. 2019년에는 여든 세 살 나이에 <쏘리 위 미스드 유(Sorry We Missed You)>라는 영화를 또 만들었다.

영화적인 치장이나 미학에 매달리지 않는 우직한 리얼리즘이야말로 켄 로치 영화의 실천적인 미학이다. 그의 영화들은 진보와 좌파의 관점에서 현실 범주 안에 들어있는 ‘비전’에 가깝다. 그의 리얼리즘은 그래서 ‘상류층’이나 ‘권력층’ 인물에 관심이 없다. 저임금 노동자들과 일용직과 실직자들과 강자와 불의에 의한 희생자들이 켄 로치 영화들의 단골 주인공들이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그는 죽는 날까지 영화를 통한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며,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차례나 거머 쥔 이 위대한 백전노장의 뚝심은 결코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1945년의 시대정신>...

‘그것은 무엇을 바탕으로 누구의 의거하여 형성되고 요구 되는가’라는 영화 시작 전 질문은 영화의 종료와 동시에 ‘대의에 기초를 둔 민중의 요구와 모든 사회구성원들을 위한 정의사회실현을 시대적 사명으로 내포해야 한다’는 실천명제로 탈바꿈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사회의 ‘2019년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아니 무엇이 되어야 하나. 누구나 고통을 받고 있지 않는가. 그럼 바로 그 지점이 출발점이다.

그래서 나는 시대정신을 감히 ‘민주적 사회주의’라 말할 것이다. ‘1945년의 시대정신’은 공공 소유가 무엇이며, 분배와 공동체가 무슨 뜻인지, 어떤 삶을 염원했는지, ‘누구나’ ‘똑같은’ ‘기억’과 ‘경험’이었다. 그런 기억과 경험이 전혀 부재했던 우리 사회에서 그 기억과 경험들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비전’이고 ‘전략’이다. 한국 현대사와 정치에서 누가 그런 걸 막연하게나마 말해 본 적이 있던가. 현재 ‘나’와 ‘우리’의 고통에서 출발한 꿈을 꾸고 있는데 ‘왜’ 가지 못한단 말인가.

그래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일개 정파논리로 한정 짓는 모든 행위들을 ‘기회주의’, ‘개량주의’로 단언한다. 온갖 네거티브 언어로 무시하고 까뭉개는 처신들이 아니라 민주적 사회주의를 토론의 공론장으로 끌어 올림이 정당했다. 그들은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꿈을 꿀 자유’조차 부정한다.

그러나 설령 당장의 좌절이 있다할지라도 변화를 향한 역사는 이미 시작됐다.

이젠 분명한 목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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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좋은 리뷰 많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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