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번역]영화를 무릅쓰고 보다 말하다 생각하다 3

in #aaa5 years ago

철학에서 “비우기”란 대상과 대면해서 돌출된 위치 전부를 금기시하면서 그것(비우기)이 다른 것들 가운데 생각함에 대해 단순한 경우를 구성하는 것 같이 이러한 조우의 “구속”에 스스로를 전시한다; 철학은 우연한 어떤 만남과 그 속에서 둘러싸인 문제들의 대기한 상태에서 방해하지 않는다. 영화에 대해서 들뢰즈가 흥미를 갖도록 안내하는 근거들 가운데 하나를 들어올리는 구절을 들을 수 있는 지점이란 바로 이와 같은 의미에서이다:

그는 “나는 영화 철학을 하기 원한다는 점에서 결코 어리석지 않았다”고 확언하는데 “그런데 어떤 우연한 만남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나는 사유 속에서 우리가 움직임을 기입하기를 요청하는 [철학의] 작가들을 선호했다. (...) 어떻게 “진짜” 움직임을 이미지 속에 기입하도록 하는 영화를 우연히 만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와 반복』의 3장에서 다루는 우연한 만남의 테마는 더 깊숙하게 파고 들어가야만 한다. 그것은 얻어 내려고 붙잡으려 할 때까지 그 의중을 떠보기 때문에 슬로건, 혹은 질서있는 말로 변형될 정도로 위험 부담이 컸다. 거기에서 분석에 대해서 이러한 유일한 수준에만 머물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이 우리에게 사유하기를 강요할 때 사유한다”─, 무엇으로부터 유래하는 사유의 개념이 결과적으로 재현의 세계를 빠져나갈 수 있는지를 알아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이러한 통과가 특별히 주목을 끈 지점은『차이와 반복』의 이러한 핵심 장의 연구에서였다. 그것은 우연한 만남이라고 하는 테마가 검토될 때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불길한 관점으로 동일시 해야만 했던 이성의 심장부에 있기에 더욱 난감한 것 같았다. 그것은 들뢰즈가 주로 칸트 철학에서 “지성들의 독트린”을 질문하고 전제된 것들을 현행화하기 위해서 모색하는 파사주에 대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에 의해서 유죄 판결을 이끈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지성들의 독트린에 대한 것이 아닌 문제를 제기한다 할 것이다. 그것은 더욱이 들뢰즈가 “이 독트린 형식을 철학 시스템속에서 매우 필요한 (...) 조각”으로 주목하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날 [그것(독트린)이] 추락한 신뢰” DR, p.186.
조차 유감스러워 하기 때문에 우리의 초기의 놀라움을 중복하는 “사유 이미지” 조각의 또 다른 극점이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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