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가 말하는 여행의 기술
태생이 베짱이다.
뭐 하나 진득이 하는 법이 없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4년 전 티스토리에 포토에세이 형식으로 사진 몇 장 올리다가 그것도 곧 그만두었다. 이제껏 딱히 마음에 드는 플랫폼이 없기도 하지 않았는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결국 시작하는 것조차도 주저하고 마는 게으른 자에게 꾸준한 블로깅은 역시 무리다. 그런 나에게 자극을 준 이가 있으니, 바로 아랫집 언니다. 그 언니도 나 못지않은 게으름뱅이인데, 이제까지 자신이 본 공연과 넷플릭스를 브런치에 끄적이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렇게 아랫집 베짱이를 보고 나도 '끄적일 의지'가 생겼더랬다. 의지가 생기면, 그다음 스텝으로는 무얼 끄적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어떤 이야기를 타인과 나누고 싶은가- 에 대한 고민.
"뉴욕에 가면 뭘 봐야 해?" "언니, 런던에서 어딜 가야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어요?" "케이프타운 치안은 어때요?" "코펜하겐 일정이 타이트한데 루이지애나미술관을 포기하면 후회할까?" 지인들이 내게 종종 묻는 질문들이다. 어느 도시에서는 1년 동안 일하며 살아보기도 했고, 어느 도시에서는 두 달 가까이 친구들 집에 신세지며 여행하기도 하고, 또 어떤 도시는 가고 또 가고 하다 보니 다섯 번 이상 방문하기도 했다. 일 년에 두세 달은 밖에 나가는지라 여행을 계획하며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은데, 나와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이들은 '봉봉투어'에 만족해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는 여행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베짱이의 여행은 그저 에어비앤비의 카피와 같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번갯불 콩 구워 먹듯 관광지 찍고 인증샷을 남기는 것보다, 낯선 도시를 나의 도시처럼 느긋이 걸으며 둘러보는 것. 거기에 낮술과 미식은 언제나 필수다. 그렇게 이곳저곳 다니며 발견한 특별한 가치를 지인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라 하는데, 입으로 털기(?)만 하고 글로 쓰지 않으니 남아 있는 것이라곤 여행 중간중간 올리는 인스타그램 사진이 전부다. 그래서 나도 이제부터 세계 곳곳을 쏘다니며 보고, 먹고, 경험한 것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여행을 하던 중 문제가 생기면, 나보다 먼저 그런 상황을 마주했던 이들의 대처 방법이 소상히 적힌 블로그를 찾곤 하지 않는가. 그처럼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실질적인 정보는 여기에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나와 같은 베짱이라면, 내가 앞으로 나눌 소소한 이야기들을 마음에 들어할 수도 있겠다 싶다. 아님 말고.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