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06 트럼프의 배외주의적 대외정책, 패권상실의 징조인 이유
트럼프가 휘두는 관세의 칼에 전세계가 공포에 떨어야 정상인데 그런 것 같지 않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트럼프의 관세에 휘둘리지 않겠다며 강력한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은 브릭스를 앞세워 멕시코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 같고, 멕시코도 굳이 미국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
미국이 관세부과를 한달 유예한다고 했지만 캐나다와 멕시코가 트럼프의 미국을 신뢰할 것 같지가 않다.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앞으로 한국에 대해 어떤 정책을 제시할지는 알 수 없다. 트럼프가 한국을 저격하고 그 댓가로 알래스카의 가스개발에 투자하기를 바랐다면 그런 의도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이든 당시 미국에 투자한 삼성과 하이닉스 그리고 밧테리 업체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약속된 보조금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제일 중요한 조건은 설득력을 갖추는 것이다. 냉전당시 미국과 소련이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경우 정치적 자유와 인권등의 가치, 그리고 소련의 경우 제국주의적 착취에 대한 저항이었다. 패권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드웨어는 군사력이고 소프트웨어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설득력이라는 것이다.
미국 일극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정치적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 때문이었다. 이때 미국이 제시한 가치는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보편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 그런 보편적 가치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소련이라는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이 붕괴되자 미국은 스스로 주장해왔던 보편적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정권 당시 주장했던 규범에 의한 국제정치라는 개념은 그 이전에 주장했던 보편적 가치와 상당히 다르다. 아마도 정반대의 성격이라고 하겠다.
바이든이 주장했던 규범 또는 규칙이란 보편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은, 미국이 설정하고 강요한 규범과 규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이렇게 원칙을 바꾸게 된 것은 힘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자신들도 정치적 자유와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미국 당시 이미 그들은 설득에 의한 패권의 유지가 아니라 강요에 의한 패권유지로 정책기조를 바꾸었던 것이다.
트럼프가 멕시코와 캐나다, 유럽과 한국을 강타한 것은 트럼프만의 특별한 개성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은 서서히 배외주의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었고 현재의 트럼프에 들어서 그런 현상이 노골적으로 표면화되었다는 말이다.
트럼프의 배외주의적 경향은 한동한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대만 등 미국의 안보에 많이 의존하던 국가는 트럼프의 직접적인 사냥대상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물러난다고 해서 이런 경향이 바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의 상황이 이렇게 변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트럼프의 배외주의적 정책은 미국 내부모순과 한계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부의 양극화이다. 그리고 그런 부의 양극화는 미국의 거대기업들의 상당수가 미국에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자본은 이들 거대기업에 투자해서 수익을 거두고 있다. 미국의 대중과 미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금융자본은 전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배외주의적 감정을 쏟아내어 미국 대중이 무엇을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아주 교활하게 미국 대중이 상대할 적이 누군가를 모르게 만들고 있으며 그 대상이 바로 한국과 대만 캐나다와 멕시코 그리고 유럽이라고 할 것이다.
그동안 미국의 금융자본은 유럽, 캐나다와 멕시코, 한국과 일본, 대만 등을 통해서 막대한 자본과 금융 수입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과실들은 미국대중에게 떨어지지 않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낙수효과는 오로지 강력한 국가의 정치권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은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과 의회도 모두 자본에 포획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는 중국과 러시아 처럼 정치권력이 부를 분배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
한국에서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를 요구하는 개헌세력들도 마찬가지 부의 분배를 거부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개헌에 절대 반대한다.
트럼프의 배외주의는 미국 대중의 적대감을 무마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미국이 가지고 있는 모순이 해소될까? 미국은 상위 10%가 전체 소비의 50%를 넘게 지출한다. 이런 나라는 지속될 수 없다.
트럼프의 배외중의가 미국대중의 적대감을 무마하기 위한 목적이외에도 국제정치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국제정치적 역할 축소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아마도 그런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미리 배외주의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는 트럼프의 한국때리기는 한국 대중의 미국에 대한 환상을 깬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조금 지나면 거리의 태극기 부대에서 성조기가 점점 보이지 않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멕시코는 미국이외의 교역상대를 찾겠다고 했다. 한국도 그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이제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 콜비는 한국에 전작권 전환을 해야한다고 언급했다. 앞으로 한국에 불어닥칠 변화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여 미리 치고나가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을 것이다. 요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대외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데 있어서 국민의힘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들의 기생적 성격과 대외의존적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잡으려면 이 정도의 변화가 아니면 어렵다. 국민의힘에는 제2의 노태우와 제2의 박철언이 나와야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것이고,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을 빨리 버려야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