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 같은 신뢰? 체인 같은 경제?

in #block-chain7 years ago (edited)

잠시 상상해 보자. 전화를 가진 이가 극소수인 세상을. 아니 페이스북 초창기 사용자들을 떠올려도 좋다. 지인들에게 없는 나의 전화(하드웨어)나 페이스북 계정(소프트웨어)은 무용지물이다. 돈과 암호화페 역시 마찬가지다.

암호화폐는 기업이나 주식이 아니다. 데이터베이스나 프로토콜에 가까운 암호화폐를 이해하려면 블록체인 기술과 ICO(Initial Coin Offering)를 빼놓을 수 없다.

신뢰경제.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된 조작 불가능한 ‘분산 장부’다. 블록체인은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통해 은행이나 정부 같은 제3자 없이 가치와 정보를 당사자간에 거래할 수 있게 한다. 블록체인은 중계업과 관리업무를 대폭 축소시키고, 이제까지 금융 혜택을 못 받던 지구상 20억 인구의 삶과 그들이 사는 개도국 경제를 확연히 바꿀 수 있다.

블록체인 시대에는 프라이버시가 강화된다. 모든 데이터는 의도와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중앙화된 권력을 가진 기업 또는 정부가 개인정보를 착취하기 어려워진다. 얼마 전 있었던 페이스북 캠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 같은 사건은 일어날 수 없게 된다. 지금의 페이스북처럼 사용자들이 창출한 가치와 이익을 주주들이 챙기고 남용하는 비지니스 모델은 사라지게 된다.

facebook-logo-in-circular-shape_318-60407.jpg

개인 데이터는 가치를 인정 받아 개인의 시간과 정보를 ‘헌납'하는 대신 ‘보상’을 받게 된다. 콘텐트를 제공하는 이들과 이를 소비하는 이들이 금전적 보상을 받는 체계는 이미 실현되고 있다. 몇몇 보완점을 안고 있지만 시범운영 중인 블록체인SNS 스팀잇은 주목할 만한 실험이다. 언론사들은 물론 일반 사용자들의 콘텐트를 착취하는 국내 대형 포털의 수익구조는 블록체인의 일반화로 퇴출될 것이다.

가치창출에 기여하지 않는 이들이 숟가락을 얹어 부당 수익을 떼어가는 관행 역시 보기 힘들어 진다. 블록체인으로 인해 기존 산업은 낯설 정도로 빠르게 진화할 것이고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수 많은 신규 산업들이 창출될 것이다.

타인을 속이는 동기가 사라지는 걸 넘어 정직이 기본값이 되는 세상에서는 기여한만큼 공정한 배분이 이뤄져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블록체인은 인류역사가 오래 동안 지향해 온 ‘신뢰경제’의 기반이 될 수 있는 혁명적인 기술이다.

블록체인과 자본의 만남.

ICO는 스타트업이나 특정 프로젝트가 고유 코인(암호화폐)을 발행해 자본을 조달하는 크라우드펀딩의 유형이다. 코인은 주로 발행자들의 프로그램 또는 서비스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되는 기능을 갖는다.

ICO가 비슷한 이름을 가진 IPO(Initial Public Offering)와 다른 점은 주식을 팔거나 지분을 넘기지 않아 스타트업 또는 프로젝트의 지배구조나 소유권의 변동을 막을 수 있다. (보편적인 관행과 달리 주식의 성격을 가진 코인도 종종 있다. 이들은 미국에서는 증권거래위원회 규약을 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ICO는 불특정 다수의 개인들이 세계 어디에서나 코인 구매에 참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코인 발행자들이 개발할(‘개발한’이 아닌 미래형) 프로그램 또는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서 코인을 구매하지만, 많은 경우 코인 수요 증가에 의한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투자한다. 스타트업 또는 프로젝트 구성원들 또한 코인의 가격 상승으로 보상 받는다.

ICO에서 투자위험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코인 구매자의 몫이다. 그래서 아직은 ICO 판에서 온갖 사기가 난무한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은 IPO가 활성화 되던 초기에도 있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 ICO 시장 역시 옥석을 가리는 안목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이들은 기존의 IPO가 아닌 ICO를 택하는가? 일단 고유의 블록체인 기반 기술 실현을 위해서는 코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ICO는 IPO보다 훨씬 더 간편하고 더 빠르게 더 많은 자본을 모을 수 있다.

암호의 실체, 화폐의 가치.

아직도 많은 이들은 블록체인을 신성장산업으로 인식하지만 암호화폐는 도박으로 치부한다. 이런 기괴한 오해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분리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개별적으로 여기는 것은 마치 인터넷과 전자상거래를 따로 보는 것과 같다. 인터넷 프로토콜(TCP/IP)은 인트라넷(Intranet)으로 시작했지만 경제성 덕분에 이제는 전세계 누구나 사용하고 있다. 암호화폐로 운영되는 퍼블릭(공개형)블록체인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안전하고 똑똑한 블록체인이 ‘돈’에 가할 충격은 인터넷이 ‘정보’에 미친 영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혁신 기술이었던 인터넷과 달리 블록체인은 우리가 이제까지 상정하고 받아들인 사회경제의 토대를 혁명(혁신이 아니라 혁명)적으로 뒤흔드는 기술이다.

조만간 실현될 블록체인 세상을 미리 암시해주는 암호화폐시장을 경제학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암호화폐는 ‘버블’인가?
최근 하락세에서 늘어지는 암호화폐시장의 큰 화두다.

‘버블’론자들은 암호화폐가 교환 매개의 기능이 떨어지고 변동성(volatility)이 극심해 가치(富)저장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암호화폐는 본질적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가 없는 소장품에 불과하고 공급과 수요만으로 가격이 책정되는 전형적인 투기상품이라는 얘기다. 좀 더 나간 냉소적인 평론가들은 암호화폐를 폰지(Ponzi)사기 또는 다단계에 비유하며 비트코인을 비트칸(BitCon: 비트 사기)이라고 조롱한다.

기술적인 분석으로 현재의 암호화폐시장을 비관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현재 시총 1위인 비트코인이나 시총 2위의 이더리움보다 속도와 비용 그리고 확장성이 훨씬 효율적인 ‘차세대’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버블’론에 힘을 보탠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암호화폐시장을 ‘버블’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검증 된 가치평가(valuation)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호화폐시장에서는 온갖 단타와 ‘묻지마 투자’가 난립한다. 하지만 어느 시대 또 어느 시장에나 바보 투자자들은 있는 법이다.

‘신뢰경제’를 반영하는 암호화폐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한 대의 전화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주변 지인들이 전화를 쓰게 되면 자신이 가진 전화의 가치는 제곱으로 늘어난다. 네트워크의 가치는 네트워크 시스템에 연결된 사용자들의 숫자와 비례한다. 소위 말하는 ‘매트캐프 법칙(Metcalfe’s Law)’이다.

thumb_Bitcoin_and_goldbars1-e1518131162227-1024x376_1024.jpg

암호화폐의 경제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거시적인 요소들은 많다. 근대 이후 법정화폐(Fiat Money)의 평균 수명이 27년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21세기 많은 이들은 더 이상 정부와 은행을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체험한 미국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는 더더욱 그렇다. 이제 그들은 안정적인 투자를 하는 나이에 접어들었고, 디지털 세대인 밀레니얼들은 하드웨어인 금보다 소프트웨어인 비트코인을 선호한다. 1970년대 후반 금값을 폭등 시킨 베이비붐어들과 요즘 암호화폐시장에 참여하는 밀레니얼들은 유사한 투자 성향을 갖고 있다.

금과 비트코인은 둘 다 내재적 가치가 없다. 엄밀히 따지면 법정화폐도 내재적 가치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금에 투자한다. 암호화폐 특히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시대의 금으로 비유된다. 365일 24시간 전세계 어디에서나 거래 인출 가능하고, 0.00000001까지 나눠지는 해킹 불가능한 암호화폐 비트코인은 이동성, 유동성, 가분성, 내구성, 안정성 면에서 금보다 우월하다. 더군다나 비트코인은 금과 달리 2천100만개로 이미 한정된 상품이다.

근미래에는 거의 모든 사업이 디지털로 이뤄진다. 블록체인 경제에도 기축통화가 있을 것이다. 비트코인은 현재 거의 모든 ICO의 마스터 장부 화폐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대표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의 가치와 가격이 코인의 기술적인 요소만이 아닌 화폐로서의 기능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암호화폐는 오너가 있는 기업도 아니고 고수익을 미끼로 신규 투자를 낚지도 않는다. 선투자가 후투자를 착취하는 구도는 더더욱 아니다. 암호화폐는 폰지사기나 다단계가 아니다.

아직까지 변동성이 심해 보이는 암호화폐는 베타(β:체계적인 리스크)0이다. 달리 말해 자산관리 차원에서 암호화폐는 주식, 부동산, 금리, 환율과 같은 요소들과 상호관계가 전혀 없다. 암호화폐는 다른 기존 시장들의 폭락에 대비한 방지책으로 유용하다. 포트폴리오에서 적정 비율의 암호화페는 오히려 가장 안전한 알파 자산이기도 하다. 금융공학적으로 암호화폐의 변동성은 양날의 칼이다.

암호화폐 특히 비트코인 소유자들 중 많은 이들은 호들(HODL: Hold-On-for-Dear-Life) 중이다. 이런 투자자들의 구성은 극심한 인프레에 시달리는 나라의 국민들에서부터 암호화폐의 보안성을 노리고 비트코인을 쥐고 있는 ‘큰 손’들까지 다양하다. 지구상에는 여전히 ‘정치적인 결정’으로 하루 아침에 엄청난 재산을 빼앗기는 사례가 많다. 만약에 누군가가 아마존 같은 기업의 대주주라면 브뤼셀 판사 한 >명에 의해 재산 대부분이 동결 또는 압수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지 않겠나?

최근 들어 암호화폐시장에는 청신호들이 하나 둘 켜지고 있다. 미국정부는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인정했고, 얼마 전 뉴욕증권거래소의 모기업 ICE(대륙간 거래소)는 암호화폐 기관수탁(custody) 문제를 조만간 법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맞춰 기관투자들도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골드만 삭스는 암호화폐의 선물 및 현물거래를 결정했고, 대형 기금과 연금들도 연내로 암호화폐 투자에 본격적으로 가세할 전망이다. 이런 호재들로 인해 현재 4천억 달러($400Billion) 안팎인 암호화폐시장은 올해 안에 1조 달러($1Trillion)를 훌쩍 넘길 것이다. 물이 들어오는 정도가 아니라 해안 지형이 바뀌고 있다.

latte-artttt.png

암호 라떼.

물론 현재 암호화폐시장은 ‘버블’일 수도 있다. 시대적 상황이나 사회적 인프라와 블록체인의 특성을 고려하면, 암호화폐시장은 17세기 튤립 광기나 21세기 서브프라임 사태보다는 1990년대 후반의 닷컴 버블과 유사하다. 설령 암호화페시장이 ‘버블’이라면, 그 형태는 커다란 풍선형이 아닌 미세한 포말형일 것이다. 대형 비누 방울 보다는 라떼 거품에 가까워 보인다. 암호화폐의 특성상 잘게 분산화(탈중앙화)돼 있고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의 본질을 들여다 보면 작은 정부를 유도하고 개인의 자유를 확장시킨다. 다른 한 편으로는 경제 민주화를 촉진시키고 시민 권력을 강화한다. 암호화폐 경제는 리버테리안(libertarian)부터 리버럴(liberal)까지 만족시키는 체제다. 향후 블록체인 시대에 야기될 수 많은 사회적 문제는 이 두 진영에서 민주적 합의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암호화폐는 기본소득의 개념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재정을 축 내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좀 더 창의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방안일 수 있다. 또 암호화폐는 인플레이션을 방지(hedge)하는 용도도 있지만, 반대로 ‘헬리콥터 머니’의 변종으로 진화해 인플레이션을 유도할 수도 있다. 한국은행은 암호화폐 경제에 걸맞는 통화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거버넌스.

한국은 시장경제 체제 민주국가 중 유일하게 ICO가 불법인 나라다. (2018년 5월말 현재까지)

경제정책에 자신이 없는 정부가 다가오는 암호화폐 경제라는 거대한 파도와 무관하게 우왕좌왕 정책 방향을 잡지 못하는 동안,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스위스나 싱가폴에서 ICO를 진행한다.

미래는 코앞까지 다가왔고 전세계는 ‘신뢰경제’ 대비로 한창이다. 24시간 쉬지 않고 전세계가 참여하는 암호화폐시장은 이미 한국정부가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정책과 정치를 혼돈하고, 정권의 인기를 정부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진짜 버블은 지금의 정부일 수도 있다. ‘네트워크 효과’를 이해하는 일반인들과 달리 정부는 블록체인 세상이 만드는 신뢰의 사슬에서 홀로 떨어져 따로 놀고 있다. 이 추세로 가면 다가 올 ‘신뢰경제’에서 대한민국이 보증하는 원화의 입지는 매우 좁아질 수 있다. 경제는 현란한 글자가 아닌 냉정한 숫자로 돌아간다.

정부가 암호화폐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는 잘못된 질문이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질문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암호화폐는 과연 정부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Sort:  

@victor.finder, I gave you an upvote on your first post! Please give me a follow and I will give you a follow in return!

Please also take a moment to read this post regarding bad behavior on Steemit.

Hi, thank you for contributing to Steemit!

I upvoted and followed you; follow back and we can help each other succeed :)

P.S.: My Recent Post

Coin Marketplace

STEEM 0.16
TRX 0.25
JST 0.034
BTC 94096.46
ETH 2637.10
USDT 1.00
SBD 0.68